[이승철의 완주이야기 49] 소양면(所陽面) 황운리(黃雲里)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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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면(所陽面) 황운리(黃雲里)
황운리는 완주군 소양면 자치센터 소재지이다. 전주시내에서 20리. 전에는 5일장(3·8)이 섰다. 황은리는 우선 지나는 사람이 많았다. △진안-장수-무주-영남 가는 사람 △송광사 위봉사를 찾아드는 보살과 탁발승 △성묘 나선 전주최씨, 전주유씨, 전주이씨 △위봉산성 역사(役事)에 동원된 백성들 △동학혁명 당시 이 태조 어진이 관감재(曠感齋)서 자고 여기를 지나 위봉산성 행궁에 갔다. △성경 보따리 짊어지고 곰티재를 넘나드는 선교사 △난리 피해 숨어드는 도망자 △땔나무 하러 새벽에 나선 나무꾼[초부:樵夫]들… 하여간 독특한 지역이다. △특히 ‘임진 정유왜란 때 웅치(熊峙)를 넘은 왜군이 전주성을 향해 구름처럼 밀려들자 우리 군사와 맞붙어 싸울 당시 말굽에서 피어오른 누런 먼지가 마치 구름 같았다’해서 황운리(黃雲里)이란다.
정재윤 소양면장이 면사무소를 새로 지으며 2017년 8월 13일 황운로에서 만나자마자 “다 된 정자 이름 ‘황운정(黃雲亭)’ 어때요?” 이 물음에 “글자야 훌륭하지만…” 위의 얘기를 줄여 하니 “그럼 다른 좋은 이름 없어요?” 되묻기에 “‘소양정(所陽亭)’ 괜찮지요” 정 면장은 별말 없이 받아드려 명필 현액(懸額)을 드높이 걸었다. 정재윤 면장은 왜 ‘소양정’을 쉬 받아드렸을까?
예나 지금이나 ‘소양(所陽)’은 매력이 넘친다. 조선시대 전주부에서 소양을 보면 ‘해[태양:太陽]가 돋는 장소(場所)’ 곧 동쪽이다. 우리 민족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늘[천:天]과 해[태양:太陽]을 존엄하게 여겼다. 누구나 만일 하늘(천주, 하나님, 하느님, 여호와)이나 태양신을 노엽게 하면 천벌(天罰)을 받는다는 생각이 뼈 속까지 새겨져 있다. 전주 감영에서 볼 때 소양은 ‘하느님’과 ‘태양’ 마을로 뵈는 것이었다. 정재윤 면장은 이 말이 와 닿은 게다. 아비규환 피비린내는 전장에서 피어오르는 ‘누런 먼지 구름’보다야 ‘태양’이 훨씬 고상하므로 수장으로서 밝은 쪽을 얼른 선택했고 ‘소양정’을 수용한 면민도 위대하다. 나그네는 소양교 옆 주덕재(周德齋) 표석을 보고 현장에 갈만하며, 대승리 만육 최양 묘소도 가깝다. 초등학교 뒤편 거사비(去事碑, 去思碑)는 면사무소 너른 마당으로 와야 한다.
황운리에 익산↔장수고속도로 IC가 있어 진주 점심 나들이를 하는 사람이 있단다. 중학교, 농협, 우체국, 보건진료소가 있고, 시내버스 ‘8○○’번은 황운리를 거친다. 이런 사유로 배산임수(背山臨水) 높은 자리까지 깎아 집을 짓는다. 소양교회 오래 됐고 여기 시무하던 이○○ 목사 쌀을 갖다 쓰고 갚지 않은 신도 아무개는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사는지! 이런 사람이 마을 인심을 사납게 했다.
‘소양면 개청100주년 기념비’는 오래 간다. 누구나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 일기예보에서 미세 먼지 이야기를 하는데 임란 때의 ‘황운(黃雲)’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