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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로드카페 주인 이경자2018-06-04

이름없는 로드카페 주인 이경자

이름없는 로드카페 주인 이경자


新綠의 정원이 찬란한 위봉카페로 오세요

-천원으로 만날 수 있는 커피와 풍경과 그리운 사람들-

 


 

 위봉폭포 앞 위봉카페에서 손님들이 앉아 쉬고 있다.



오월에서 유월로 넘어가는 지금 계절의 신록은 그 청량한 색깔이며 풍부한 질감으로 아름답다. 완주에서는 차로 십여 분이면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신록을 만날 수 있다. 북쪽으로는 천등산과 대둔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만덕산과 모악산이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그 이름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산들이 연봉으로 펼쳐져 있다. 나는 모든 산들의 신록을 사랑하지만 이 계절에 특별히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신록예찬 드라이브 코스가 한 군데 있다. 고산에서 출발해 대아저수지를 지나 수목원 갈림길에서 동상면 소재지 방향으로 우회전, 그리고 단풍나무 가로수 터널을 지나 오른편 호수의 폭이 좁아질 무렵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위봉사 방향으로 우회전 하고 십여 분을 더 달려 위봉산성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들이 양 옆으로 펼쳐지고 그 산들의 풍경이 가장 절정에 이르는 길 가에 위봉폭포와 위봉카페가 있다.


 

위봉카페 주인장 이경자 씨가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처음엔 동네 청년들이 먼저 하고 있었는데 형수가 해보라고 해서 시작한 것이 23년 됐어. 트럭 한 대는 사놨지만 엄두가 안 나서 처음 15일은 안 나와 버렸어. 차 펴놓고 장사할 일 생각하니까 창피하기도 하고 심란했지. 23년 전에 315일부터 장사를 시작했을 거야. 얘들은 넷이나 되지. 먹고는 살아야 되지, 가진 것은 없지. 그런 게 아줌마, 엄마의 힘이지. 암튼 심란하기는 했어도 트럭 세워놓고 탁 펼치니까 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시네. 사람이 계속 왔어. 내가 사람들을 좋아해. 좋아하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지. 여기는 짜증내는 사람들 없어. 내가 23년 장사하면서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러니까 여기 오는 사람들이 너무 좋은 거야.”

 

온갖 세상사람 다 만나는 곳


이경자씨가 운영하는 위봉카페는 길 가 트럭 위에 펼쳐진 카페로 경치 좋은 국도변이나 산세 좋은 길 가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말하자면 길 다방인 셈이다. 전주가 고향이지만 30여년 전에 소양으로 이주해 왔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엄두도 나지 않았던 이 일을 23년 동안 쉼 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주로 들어주는 사람이야. 손님들이 오면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나는 그러지 그러지하며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사람이지. 이름 물을 것도 없고 얼굴만 아는 거지. 길에서 만난 사람들 커피 한잔 마시며 자연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거야. 산 좋아하고 자연 좋아하는 사람들 치고 나쁜 사람들 없어. 그러니 이 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지. 여기 산골짜기에서 세상사람 다 만나고 온갖 세상이야기 다 들어. 서울, 강원도, 부산, 대구에서 다 와. 이 폭포가 있으니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드나들었을까. 위봉폭포에 보러 왔다가 들른 사람들, 고갯길에 쉬어가느라 잠시 머문 사람들, 지나가다 풍경에 홀려 찾아든 사람들, 참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오갔고 위봉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23년이 지나는 동안 적지 않은 단골들이 있었고 지금도 생각나는 특별한 단골 어르신들도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할아버지들이 진짜 많이 다니셨어. 나한테 참 잘해 주셨는데 거의 다 돌아가셨어. 같이 오던 친구 분들이 와서 떠났어 하면 알고 또 누가 떠났어 하면 알고 그러지. 생각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네. 작년부터 안보이시더라고. 근데 그 아들이 찾아와서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시더라고. 또 봉동에서 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은 오토바이 타고 여기를 참 많이도 오셨어. 한참 안 오실 땐 이제 가셨는가 보다 생각하고 있으면 참 고맙게도 자녀분들이 우리 카페까지 찾아와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려주더라고. 봉동 할아버지는 진짜 여기를 좋아하셨거든. 파도 뽑아다 주고, 콩도 따다 주고. 근데 그 아들이 여기 와서는 웃기느라고 그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남기셨는데, 너는 커피를 마시려면 꼭 폭포 가서 마셔라. 라고 했다고. 내가 그 소리 듣고 어찌나 웃었는지 몰라.”

 

변하는 세월 동안 언제나 그 자리에




언제부터 그렇게 불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주군 동산면은 전국 8대 오지 중의 한 곳이었다고 한다. 댐이 만들어지고 도로와 다리가 제대로 놓아지기 전까지는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산골 오지의 길 가에서 이경자씨는 오랜 세월 동안 길이 만들어지고 다리가 놓아지고 터널이 뚫리는 모습을 실감나게 기억하고 있었다.

 

“23년 전에도 도로가 있긴 했는데 이 팔각정까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있었어. 팔각정 넘어 동상면 방향으로는 비포장 도로였어. 그리고 그때는 동산면으로 넘어가는 다리도 없었어. 십 몇년 전에 다리(음수교)가 개통되어서 이 도로가 쭉 연결된 거지. 여기서 동산면사무소 가려면 다시 화심으로 나가서 돌아가야 했어. 다리가 없을 때는 여기가 종점 같은 곳이었지. 내가 여기 길가에서 장사하면서 참 많은 게 변했고 그걸 다 지켜봤네. 장사하면서 여기 터널 생겼지. 원래 길이 있긴 했는데 여기서 낙석사고가 났었어. 그래서 인공터널을 만든 거지. 참 여기 공사 많이 했네. 그런 난리통에도 꼬박꼬박 여기서 장사를 했어.”

 

처음 장사할 때는 맥심커피만 팔았지만 손님들의 기호에 맞게 메뉴도 많이 늘어났다. 커피값 700원을 받았지만 거스름돈 귀찮다고 천원으로 올리자는 손님들 제안으로 천원으로 올리고 나선 지금까지도 계속 천원을 고집하고 계신다. 앞으로도 올릴 생각이 없다고 하신다. 커피 한잔을 주문해서 위봉폭포를 바라보는 동안 오래된 승용차 한 대가 위봉카페로 들어섰다. 십년 넘게 찾아오시는 단골 할아버지다. 사장님이 익숙하게 커피, 설탕, 프림을 알맞게 조제해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오래된 차는 사장님의 트럭 카페 옆에 선다. 모든 것이 오랫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처럼 익숙하다. 커피잔을 들고 멈춰선 차로 다가가 열린 창문 사이로 건넨다.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차 안에 앉아 달큰한 커피를 마시며 담배 한 대를 피우신다. 그 담배 한 대와 커피 한 잔을 마실 때까지의 시간. 그 시간은 아마도 할아버지의 황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길 위의 위봉카페 이경자 사장님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잠깐 동안이지만 커피색처럼 아름다운 황금의 시간을 조제하는 연금술사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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