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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리에 담은 여든 셋의 인생2018-04-30

광주리에 담은 여든 셋의 인생




광주리에 담은 여든 셋의 인생

덕암마을 유옥순 광주리 할머니



지천에 널린 싸리나무

늦가을에 베어서 갈무리해두면

1년 내내 광아리, 채반으로 변신


고산장에 내다 팔려고 호롱불 친구삼아 밤 11시까지 몸살

여름에도 싸리나무 마를가 문닫고 만들다 담으로 멱을 감았을 지경


장에 나가기만 하면 순식간에 죄다 팔렸을 정도

공궁하던 그 시절 광아리 팔아 힘 펴고 살았지



 

정갈한 집. 새로 지은 집과 100년도 더 된 행랑채.



삼례 와리 넓은 들판에서 태어나 고산 남봉리 덕암마을로 스물 둘에 시집 온 올해 여든 셋의 유옥순 할머니는 수도꼭지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고 세탁기가 빨래를 돌리고 TV 앞에 앉으면 아무 때고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는 지금 시절이 꿈만 같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지나온 삶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버렸지만 할머니가 수도 없이 엮어낸 싸리나무 광주리(덕암마을 어르신들은 광주리를 꽝아리라고 부른다)처럼 할머니의 지나온 삶은 짱짱하고 애틋했다. 오래된 낡은 집을 부수고 새로 지은 집에 살고 계시지만 그 옆 행랑채는 옛 모습 그대로다. 이십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두가 안나 집을 부수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고 있다는 행랑채 앞에서 할머니는 광주리 짜서 살아온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려주셨다.


시집와서 봉게 시어른들이 죄다 광주리를 만들더라고. 나는 뭘 알들 했간이. 삼례에서 태어나서 여기 산골 와서 산 것이 다여. 시부모님 밑에서 꽝아리 일 거들다가 분가해서는 억시게 만들었지.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징글징글하게 했어. 그것 만들어서 돈 모이면 논 다랑이 쪼그만거 사고. 몸땡이는 골았어도 꽝아리 만들어서 좀 핀 거야. 시골에서 뭐 돈 나올디가 있었간디. 그래도 이 동네 사람들은 싸리나무 꽝아리로 힘 좀 폈어. 그 전에는 참 곤란하게 살았지. 우리 집 양반은 동상면 단지동까지 지게이고 걸어가서 싸리나무 해오고 그랬어. 이제 좀 살만하니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네. 그 양반이 67세에 돌아가셨지. 나는 63세에 혼자되었고. 그래도 자식 다 여위고 돌아가셨어. 막내딸 봄에 시집보내고 그 해 7월에 돌아가셨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제 살만하니까 돌아가셨어.”

 


이 동네 사람들은 죄다 꽝아리로 힘 폈어

큰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덕암마을은 고산의 끄트머리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곤궁하던 시절이었으니 집집마다 사정은 비슷했다. 지천에 널린 싸리나무가 그들의 삶 속에 들어왔다. 덕암마을 사람들 중에 광주리 안 만들어 본 사람은 없다고 마을 어르신들마다 말씀하셨다. 먹고 살 것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광주리 만들어 팔아 힘 좀 펴고 살았다고 한다. 광주리 만드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허리가 돌아가고 육천마디가 쑤신다는 할머니. 이제는 쳐다보기 싫다며 낡고 오래된 것들을 다 버리셨다. 그래도 할머니 집에는 채반 두 개와 반짇광아리 하나가 남아있다. 채반은 30년이 넘도록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삶은 나물 널어 말릴 때도 좋고 명절 때 노릇하게 부쳐낸 전을 올려두면 고실고실하게 잘 식는다.



시아버지가 시집올 때 만들어주신 반짇광아리



가벼운 프라스틱 채반도 써봤지만 이 광주리 채반만 못하다고 하신다. 반짇광아리는 광주리보다 작은 크기로 할머니 시집왔을 때 시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 그곳에 바늘이며 실, 가위를 넣어두고 식구들 옷 해 입히고 이불을 만들었을 것이다. 60년도 넘은 반짇광아리는 새아기 주려고 만들었던 것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수줍고 예뻤다.


할머니에게 광주리 다시 만드실 수 있겠냐고 넌지시 물으니 손사래를 치신다. 그래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 하실 때는 오늘 아침에도 만들다 나온 사람처럼 말들이 생생하다.

 

꽝아리는 큰 것이여. 요즘 쓰는 다라이 같은 거지. 김장할 때 김치 거리도 씻어서 건져놓고 물 뺄 때 쓰고. 논밭일 할 때 새참거리 내갈 때 꽝아리에 밥 담아서 머리에 이고 내가기도 하고. 지천에 널린 싸리나무로 만들었어. 싸리나무는 늦가을에 비어서 삶아 놓고 비 안 맞는데다가 보관해놓으면 일 년 내내 만들 수 있어. 일단 싸리나무 잔가지를 싹 잘라. 그럼 크기대로 큰 놈, 작은 놈을 나눠서 한 단씩 묶어. 이제 그걸 삶아. 도라무통에다가 싸리나무를 쟁이고 물을 한 가득 부어서 불을 하루 종일 떼. 익어서 동그라져. 그럼 푹 익은 싸리나무를 건져내서 매갱이(방망이)로 또 두드린단 말이여. 막 두드리면 나무가 막 능갈라져. 그럼 손으로 껍데기를 벗기는 거야. 껍데기는 땔감하고 알맹이는 이제 널어서 말려야 해. 말려서 햇빛 안 드는 곳에다가 저장해놓고 그때그때 꺼내서 만드는 거야. 그걸 또 깎아야 해. 자잘한 놈들은 개려내서 바닥을 짜는 거고 굵은 놈은 날을 질러서 만드는 거지. 그렇게 만든 것을 한 죽씩 놓아. 한 죽이 열 개거든. 석 죽 반을 해야 그것이 한 동가리야. 한 동가리는 서른다섯 개지. 한 동가리를 지게에 메서 장에 팔아야 하니까 그 놈을 내외간에 앉아서 짱짱하게 묶어. 여자들은 힘이 없잖아. 그것을 세 동가리씩 착착착 포개가지고 묶느라 내 엉덩이가 다 틀어졌어. 한 동가리 합쳐놓으면 어른 키보다 크니까 짱짱하게 묶어야 혀. 그것이 여간 대간혀. 남자가 지게에 짊어지고 고산장날 나가서 파는 거지. 장날마다 세 동가리씩 만들어서 나갔어.”


 

밑장 만드는 과정을 설명 중이다.



그 시절 광주리 하나를 엮어서 팔면 얼마를 받았는지 궁금했지만 할머니는 알 수가 없었다. 만드는 것은 같이 만들어도 장날 내다 파는 것은 아저씨들 소관이었으니까. 아저씨들은 장날 광주리 팔고 손에 쥔 돈으로 주막이란 주막은 다 들러서 막걸리 마시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번 돈으로 작은 논도 사고 자식들도 가르치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먹고 살았다고 하니 내게는 할머니의 광주리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몸이 기억하는 말들

할머니가 들려준 광주리 만드는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처럼 충실하고 아름다웠다. 곧 끝날 것 같아 아쉬웠던 광주리 이야기는 몇 장의 사진과 몇 컷의 영상으로 다시 이어졌다

 

 

행랑채 앞에서 채반과 반짇광아리와 함께. 예전에 이 방안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광아리를 만들었다.



남자들은 밑장을 만들고 나는 날을 질러주는 걸 했지. 그럼 질러준 날 대로 힘 좋은 바깥양반이 싸리를 우겨서 엮어 만드는 거야. 손이 몇 백번은 가야 만들어 지는 거야. 매일 밤 열 한 시까지 호롱불 피워놓고 만들었지. 이거 만드는 것은 모여서 못해. 여럿이 모여서 하면 재미있기라도 하지. 방도 좁으니까 딱 둘이 들어가면 꽉 차. 사람 꼴을 못 봐. 싸리나무가 마르면 억세지거든. 그러니까 여름에도 방에서 문 딱 쳐 닫고 해야 혀. 땀으로 멱을 감으면서 만드는 거야. 그 좁은 방에서 꽝아리 만들면서 돈 벌 생각만 했지. 닷새 만에 세 동가리(105)를 만들지. 오일동안 만들라면 잠을 못자. 그래도 가져가기만하면 죄다 다 팔렸어.”

 

광주리 한 동가리를 지게에 진 동네 남자들이 냇가 돌다리를 건너 고산 장날로 향하던 그 뒷모습은 진풍경이었을 테다. 남자들이 광주리 팔러 간 사이 동네 아낙들은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광주리 만드느라 살피지 못한 집안일을 하고 밭일을 한다. 돌도 안 지난 아기를 밭 두덩에 눕혀놓고 일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몇 천원이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라이, 소쿠리, 채반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나는 그저 할머니가 몸으로 기억하는 말들을 기록한다. 한 죽, 한 동가리, 메갱이, 동그라진다, 능갈라진다, 고롭싸리(조록싸리) 등 할머니는 내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들로 광주리를 엮어 냈다. 그 말들은 광주리 만들던 시어른의 어깨너머에서 유옥순 할머니에게 온 것이다.


누군가의 너머 너머에서부터 흘러온 몸의 말들이 끊기지 않기를.


유옥순 할머니의 광주리 예찬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쓰셨던 지게. 고산장날 광주리 나르던 지게였다.




마당한 켠에는 할머니의 비밀정원이 있다. 금낭화, 작약이 한창이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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