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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걸어서] 내 언어로 표현해야 애매모호한 마음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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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걸어서] 내 언어로 표현해야 애매모호한 마음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 언어로 표현해야 애매모호한 마음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금요일마다 전주 삼천동에 있는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으로 글쓰기 강좌에 다닌다. 하러 아니고 들으러. 아는 동생이 글쓰기 수업을 해달라 부탁해서 한두 번 만나 첨삭 비슷한 걸 해줬는데 할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 그래서 못하겠다고 했다. 글쓰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건 감이 오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글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있는 대로 빌려다가 읽어봤다.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는 책이 대부분인데 도대체 글쓰기 수업은 어떻게 하는 걸까. 글쓰기 수업이 작가들의 수입원이 되기도 한다니 이번 기회에 글쓰기 수업에 대해 배워오겠다는 마음으로 그 먼 길을 매주 나선다.

 

첫 시간의 주제는 나는 왜 글을 쓰는가였다. 은유 작가가 쓴 <쓰기의 말들>을 읽고 각자의 이유를 찾아보자고 했다.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린 내 글쓰기 수업에서도 첫 시간의 주제는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였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동생이 써온 글을 가지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이야기의 구조를 먼저 짜고 솔직하게 쓰되 흐름이 자연스럽게 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읽는 이가 알아차리도록 친절하게 쓰되 글에는 적절한 긴장을 주어 매력적으로 써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 해야한다. 이런 당연한 말을 하면 너무 사기꾼 같아서 그렇게 쓰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너의 문장의 이런 부분은 어떻게 고쳐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조심스럽다. 내가 쓴 글이 아니니 당연히 내 생각과 다르고 내 식대로 고치고 싶지만 또 그렇게 하면 안 되고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하니 잘 할 리가 없지. 글쓰기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의 글쓰기 선생님은 과제로 써온 글에서 더 적절한 단어로 표현되면 좋았을 부분이나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문장을 지적한다. 맥락에서 비껴가거나 막다른 길에서 뒤돌아 나와버리는 사유의 흐름 같은 걸 글쓴이보다 더 잘 알아챈다. 쓸 때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심경은 글에서도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어떤 주제로 글을 써도 결국은 나의 풀리지 않는 그 문제, 복잡해서 덮어버린 지점으로 돌아간다. 글쓴이가 자기도 모르게 의도적으로 피해온 질문을 조심스레 건넨다.


첫 번 째 과제인 나는 왜 글을 쓰는가가에 대한 글은 쓰다보니 나는 지금 왜 이렇게 못 쓰고 있는가에서 시작해서 엄청 잘 쓰고 싶다로 끝나는 글이 되었다. 못 쓰는 이유는 괴로워서인데 그 감정의 정체는 잘 모르겠고 알고싶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봐봤자 엉킨 실타래 같아서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어떤 때는 그렇게 직면하지 못한 채로 글이 끝나기도 하고 시작은 해보는데 더욱 어지러워져서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 몰라 얼렁뚱땅 끝나버리기도 한다. 집요하게 그 문제를 깊이 파고 들 필요는 없다. 각 강좌마다 다른 글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도 어느새 요즘 나를 붙들고 있는 생각과 닿아있는 문제의 단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쓴다는 것은 내 언어로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내려는 노력의 시작이다. 결국 내 힘으로 직면하고 밀어내고 넘어서야 한다. 내 언어를 갖고 표현하기 시작해야 막막하고 거대한 불안과 공포의 산이 윤곽을 드러낸다. 실체를 확인하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글쓰기로 나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산이 드리운 그늘 밑에 있을 뿐인데 이곳은 춥고 어두워서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바라보거나 넘어서거나 돌아설지는 본인의 몫이다.

 

자기소개서, 사업계획서, 업무보고서, 편지, 메모 등 세상에 써야할 글은 많다. 잘 쓰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해야 타인과 오해없이 대화하고 잘 관계 맺을 수 있다. 말하기든 글쓰기든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잘 구성해야 한다. 모두가 특별하게 잘 하지 않아도 되지만 누구든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고, 잘 하고 싶다면 연습하면 된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내 글을 자꾸 쓰자.

 

<쓰기의 말들>은 글을 쓰기로 한 사람이 잘 쓰기 위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지 저자가 읽은 문장에 생각을 덧붙여 쓴 짧은 글들의 묶음이다.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안 쓰는 사람보다는 일단 쓰기 시작한 사람이 계속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에 가깝다. 쓰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는 <글쓰기의 최전선>이 제격인데 저자가 감응의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중심으로 글쓰기가 왜 필요한가를 계속 설명하는 책에 가깝다.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어떤 글쓰기가 좋은지도 알려준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 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 글쓰기의 최전선 131

 

 

/바닥(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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