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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걸어서] 내 몸에서 흐르는 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2018-04-04

[바닥의 걸어서] 내 몸에서 흐르는 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내 몸에서 흐르는 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생리 다큐 <피의 연대기>와 감독이 쓴 책 <생리공감>

 

걸어서.은 걸girl 그러니까 여자들을 어서오라고 부른다. 서점이어도 좋고 떡볶이집이어도 좋고 뭐라도 좋다. 다시 말해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하다보면 뭐가 되겠지 그래서 시작한다. 내 여자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할 수 있는 만큼.


 

영화 <피의 연대기> 포스터



<피의 연대기>라는 이름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생리컵, 천생리대, 탐폰 등 다양한 생리용품이 늘어선 포스터도 산만해서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성감독이 만든 생리 다큐멘터리라고 하니 찾아가서 봐야할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 피로 태어나 피를 흘리며 사는 여성들의 연대連帶, 역사적으로 그 여성들이 피를 흘리고 처리해온 연대年代를 다루는 이야기라 그런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검은 봉지에 싸거나 귀여운 파우치에 담아서 생리대를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하는 생리에 대한 금기를 깨고자 화려한 색감의 생리용품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었고 그걸 귀엽게 느낀다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나에게 영화를 둘러싼 그런 사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거의 매달 생리통, 생리전증후군, 배란통에 시달린다. 생리하는 일주일 내내 아프거나 신경 쓰이고 배란이 되는 2주 전부터 생리직전 생리전증후군까지 한 달 중 3주 가까이 정상컨디션이 아니다. 한창 생리통이 심할 때는 길가다 주저앉아 울면서 약국에 기어들어가 진통제를 사먹은 적도 있었고, 호르몬 조절을 위해 약도 오래 먹었다. 그럴 때마다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매일매일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하면서 생리일기를 써보기도 하고, 생리 때문에 고생하는 여자가 이렇게 많은데 생리통 약이나 생리용품을 서로 추천하면서 이 숙명 같은 고통을 잘 이겨나가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 생리를 다룬 이 다큐가 반가울 수밖에.

 

영화는 재밌다. <피의 연대기>라는 무겁고 딱딱한 느낌에 반해 내내 경쾌하고 발랄하다. 등장인물들은 생리에 관한 기억부터 감상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인터뷰 대상도 일부러 여성주의 활동가나 전문가보다는 주변의 일반인들을 섭외했다고 한다. 생리를 참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리하지 않는 사람들의 무지한 오해부터 탐폰이나 생리컵을 청소년이 사용하면 좀 그런거 아닌가, 생리 얘기를 공공연히 하는 건 부끄럽지 않은가 등 생리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다룬다. 일회용 생리대를 대신할 다양한 생리용품도 소개한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육용으로 함께 봐도 좋다. 생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행동을 선택하며 주눅들지 않기 위해, 생리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생리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 잘 살기 위해. 좋은 영화를 함께 보자고 414일에 고산에서 공동체 상영회를 열기로 했으니 남녀노소 모두 손잡고 오셔서 즐겁고 유익한 경험을 모두 하시기 바란다.

 

영화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감독이 쓴 책 <생리공감>에 있다. 영화를 찍는 동안의 에피소드, 자기 몸을 사랑하게 된 감독의 고백,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는 금기의 문화에서 생리대를 무상 제공하는 기본권 운동까지 폭넓게 다룬다.


/바닥 이보현은 새내기 귀촌인이자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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