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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 완주행보를 마치며2018-03-05

[완주행보] 완주행보를 마치며


25 완주행보를 마치며

완주행보 마치고 뚜벅뚜벅 걸어서


완주에서 산 지 2년 반이다. 먹고, 걷고, 구경하고, 놀고,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며 완주라고 다르지 않은, 완주라서 특별한 나날을 보냈다. 완주행보는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으로서 새 삶터를 살펴보고 둘러보며 기록했던 이야기다. 그 사이 직장도 다녔고, 그만두었고, 이사를 했고, 프리랜서로 일을 했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책을 냈고,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계속 글을 쓴다.


4년 정도 여행하고 일하고 기웃거리며 여러 곳에서 몇 달씩 살았는데 그때 만난 친구들은 연고도 없이 완주에 취직해서 집을 구하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여기도 긴 여행이겠거니,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겠거니 하면서 지낸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뜨개질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혼자 놀기도 잘하고 돈 벌고 돈 쓰면서 살기도 바쁘지만 여전히 가끔은 쓸쓸하고 답답하다. 어디라고 다르랴, 그래도 카페 동료들, 동네에서 같이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오다가다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 가끔 멀리서 놀러오는 친구들과 같이 사는 고양이가 있으니 그럭저럭 지낸다.


임대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창업보육센터에 사업계획서를 내면서 ‘어, 이러다 완주 계속 살겠는데’ 하는 마음이 덜컥. 아니 안 산다는 건 아닌데, 2년의 탐색기를 지났으니까 뭐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스마트폰 어플이나 컴퓨터로 지역에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인터넷 라디오인데, 어느 지역으로 갈까요, 어떻게 먹고 사나요, 혼자가나요 아니면 같이 가나요? 처럼 귀촌하고 싶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간다. 제목은 ‘귀촌녀의 세계란’.여성들에게 최적화된 귀촌정보를 제공하고 시골에 살고 있는 여성들을 연결해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자는 취지로 여자 친구들과 함께 만든다. 농사와 시골 살이를 경험하는 귀농학교나 팜투어,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 등 찾아보면 지역정보가 없지는 않지만 뭔가 부족했다. 나는 여성 1인 가구이고 청년이라고 하기에 나이가 많고 농사에 큰 관심은 없는데 내가 재미있어할 이야기를 해주는 곳은 없었다. 내 주변에는 나처럼 귀촌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도 많은데 그 친구들이 선뜻 움직이기 어려운 이유도 막막해서가 아닐까. 누군가는 알고 있는 것들, 내가 궁금했던 것들, 소개시켜줄 사람들, 귀촌해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도 궁금했던 이야기라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방송을 듣고 귀촌을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우리 동네로 멋진 여자들이 모이면 신나겠다. 우리 동네가 아니라도 ‘귀촌녀의 세계란’을 통해 좋은 친구들과 다른 세계를 만날 기회가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이다. 그러다 정말 여자들을 위한 편한 공간을 하나 마련해도 좋겠다.


서울 언니집에는 만화책이 정말 많다. 그 집 식구가 전부 여행을 떠나거나 명절 쇠러 가서 집이 비면 놀러가서 종일 뒹굴거렸다. 그때 본 만화책들은 안 가본 나라를 꿈꾸게 했고 사랑과 우정, 우아한 인생, 직업인의 자세, 생활인의 근력 같은 좋은 가치를 심어줬다.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에 가까워졌으리라. 전형적이고 지루한 가르침이지만 책 속에 세계가 있고 느끼고 생각하며 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말인데 완주행보 마치고 <걸어서.>을 시작하려고 한다. 같이 보고 싶은 책과 영화, 만화 등 다양한 세계를 소개하는 이야기다. 나중에는 어디엔가 진짜 공간을 마련해서 함께 귤을 까먹으면서 만화책을 봅시다.


/바닥(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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