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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 양조장행 釀造場行2017-12-07

[완주행보] 양조장행 釀造場行

22. 양조장행 釀造場行

마시자, 한 잔의 맥주.

 


용진읍 신지리 하이트진로 공장에 다녀왔다. 오다가다 연기 나는 굴뚝을 보며 그저, 저기 맥주 공장이 있구나 하고 생각만 했다. 술을 즐기지 않는 터라 갓 만든 신선한 맥주를 공장에서 마시면 정말 맛있다더라, 하는 말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내가 회사 홈페이지에서 굳이 회원가입을 하고, 최소 2주 전에 인터넷 신청을 한 뒤, 담당자의 확인 전화를 받고 날짜를 확정해야만 갈 수 있는 공장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해외여행 중에 패키지프로그램에 포함된 와이너리투어나 맥주공장 방문을 해본 적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직접 가볼 생각은 못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용진 공장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견학을 마치면 맥주를 시음할 기회를 준다는 얘기는 건너건너 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놀러온 친구에게 공장을 가리키며 언제 한번 가자고 했던 것도 같다.

 

율곡리 황 씨 아저씨는 맥주를 살 때 용진공장에서 만들었는지 확인하신다고 한다. 나도 친구들이 맥주를 마실 때 깨알 같이 적힌 우리동네 이름을 찾아 보여주곤 했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로컬푸드구나. 이유없이 뿌듯하고 반가워서 마치 내가 그 맥주의 생산에 털끝만큼의 영향이라도 미치는 양 자랑하곤 했다. 큰 상관은 없어도 거의매일 하이트진로의 상표를 단 트럭이나, 표지판, 광고판, 그 앞을 지날 때는 공장 자체를 보니 친근할만도 하다. 봉동읍내 만경강변 둥구나무에 다른 주민들의 소원 휘장과 나란히 걸린 하이트진로의 사업번창 휘장을 보고 나도 그네들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기도 했다. 대기업의 생산공장이지만 우리집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친구네집 놀러가듯 가볼만한 마음이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견학 마치면 맥주 준다길래 시간이 많은 나와 나만큼 시간이 많은 동네 백수 친구들과 갔다.

 

시음 맥주를 마시고 음주운전을 할 수 없어 나는 차를 두고 집에서부터 걸어갔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어 만경강물은 벌써 얼었고 단단히 차려입고 나섰는데도 차마 가리지못한 코끝이 시렸다. 그나마 열심히 걸으니 몸은 금방 더워졌다. 자가용을 운전해서 다니기 시작한 후로 걸을 기회가 현저히 줄었는데 오랜만에 만경강을 걸어서 건너니 기분이 좋았다. 기웃기웃 마을길을 걸어 공장 정문에 도착했다. 뚜벅뚜벅 혼자 걸어서 산밑 한적한 시골마을 맥주공장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웃기다고 생각했다. 정문을 지키는 공장 직원분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혼자 오셨어요?” “아뇨, 친구들도 곧 올 거예요” “그분들도 걸어오시나요?” “한 명은 걸어오고 한 명은 차로 올 거에요” (나중에 보니 둘 다 차로 왔다.)

 

겨울은 비수기라 생산라인이 계속 돌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늘 견학도 원래 오후시간이었는데 그때는 기계가 다 멈춘다고 해서 아침시간으로 변경했다. 그래도 캔맥주, 생맥주 라인은 쉬고 병맥주만 돌고 있었다. 공정이 거의 컴퓨터로 자동화, 기계화되어 엄청난 양을 생산해도 인간 노동자는 별로 일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실제로 350여명의 직원 중에 생산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은 100명 정도이고 겨울에는 생산량이 적어 기계를 청소하고 보수하는 업무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그럼 일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꺾기(할 일이 없다고 일할 시간을 고용주 마음대로 줄이는 아르바이트 업계의 용어)’를 하는 건 아닌지, 일이 없으면 노동자들의 급여에는 차이가 있는지 등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한창 바쁜 여름성수기처럼 잔업이 없으니 아쉬워들 한다고. 바쁠 때 아르바이트생 필요하지 않냐고, 저희 다 이 동네 사니까 올 수 있다고 공고나면 어디서 확인하냐고 물었더니 이미 계속 해오시던 분들이 매우 많단다.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견학을 마치고 시음장에서 어제 갓 만들었다는 맥주를 한 잔씩 받아 마셨다. 나는 맥주맛을 몰라서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경치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꿀꺽꿀꺽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는 취해버렸다. 우리는 방문객 신분을 잊고 마치 맥주집에 놀러온 사람들 마냥 기약없이 떠들고 놀다가 시음프로그램 종료를 알리는 안내에 머쓱하게 일어섰다. 맥주맛 좀 아는 동행인이 말하기를 정말 맛이 다르고 맛있다고 한다. 공장의 안내에 따르면 한 명이라도 일정만 맞으면 견학은 할 수 있다고 하니 지역의 기업을 둘러보고 신선한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은 분들은 한 번 다녀와도 좋겠다. 우리를 배웅하던 분들이 또 오세요라고 했으니 부끄러워말고 또 가야지.




/바닥(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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