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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15] 너의 것이 아니다2017-12-07

[남현이의 청년일기-15] 너의 것이 아니다

너의 것이 아니다



학교가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로 들끓던 시절 한 장의 대자보를 보았다. 손으로 쓰는 대자보는 워낙 오랜만이라 유심히 보았다. 정성을 다한 글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 글을 읽으면 부끄러운 일은 그 일을 하는 자신이 가장 늦게 깨닫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늘은 나의 것이 아니었던 나의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농사만 지어선 먹고 살 수 없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말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모두가 지나가며 말하자 곧 나도 세뇌되었다. 농사론 안 된다. 다른 돈벌이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나를 찾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말이다.


그렇게 이 일 저 일을 하다 완주군 블로그 관리를 맡게 되었다. 그 곳에 사람들은 나를 진과장이라고 불렀다. 진과장. 이것은 대학시절부터 붙어있던 별명이었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산골에 집을 짓고 무릉도원을 건설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웃으며 나를 진과장이라 불러주었다. 완주에서 다시 그 별호를 마주치자 신선했다. 벌이도 쏠쏠했다. 여기서 번 돈으로 농자재를 사고, 친구들이 오면 맛있는 것 사주고, 영화제를 열었다. 그런데 날이 서늘해져가자 농사는 시늉이었고, 진과장이라는 호칭만이 남아있었다.


육체로 이룩한 노동은 신성하다 배웠다. 가끔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흙 뭍은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면 괜스레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 흙 뭍은 신발을 신고 가지 못할 곳을 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복색을 신기하게 보았다. 시선이 반복되자 마음에서 흙에 대한 부끄러움이 일었다. 몸으로 노동하는 자가 노동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된 것이다. 자기부정의 결과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왜 아무도 모르는 완주로 왔던가. 양복을 입고, 혀를 놀리며 살려고 이 머나먼 타향으로 왔는가.


생존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오래전부터의 학습이 있었다. 주변에선 이것을 현실감각이라 불렀다. 진남현의 귀농은 말은 이상적이었지만 행동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농사를 위해서라 말하며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씨를 뿌렸지만, 돈을 버느라 풀을 잡지 못했고,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농민이 농사를 짓기 위해 다른 일을 업으로 삼다 발생한 일이었다. 문전옥답을 꿈꾸고 너멍굴로 들어갔지만, 너멍굴에 있는 시간은 하루에 4시간을 넘기 힘들었다. 이 현실감각으로 말미암아 진남현의 자본은 불었지만, 욕망의 크기도 같이 늘었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한가? 왜 농민이 농사로 돈을 벌지 못하는가? 자괴감과 욕망이 뒤섞인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초등학교 때 바둑학원을 다녔었다. 바둑은 나에게 너무 신사적인 게임이었다. 바둑은 지고나면 상대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 승복의 몸짓은 상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규칙에 승복하는 것이라 느꼈다. 인생에 패색이 드리워도 규칙에 승복 할 수는 없다. 패색이 짙은 판은 엎고 다시 해야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이 규칙은 엎어버리고 다시 규칙을 세우겠다.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닌 진 과장이란 호칭과 흙 없는 공간을 벗어나겠다. 너멍굴 골짜기 대장 진남현은 농사 이외의 소득은 모두 정리할 것이며, 이 곳에 펜으로 한 달간의 안부를 전하는 것도 그만하겠다. 나의 것이 아닌 것들은 모두 정리하고 오로지 나의 것으로만 채워 골짜기를 내려오려 한다. 그 때 당당하고 반갑게 다시 만나길 희망한다.<끝>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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