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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 감언정식(甘言定食)2017-03-07

[완주행보] 감언정식(甘言定食)

(언젠가 할지도 모르는) 나의 작은 가게 광고

13-감언정식(甘言定食)



오늘은 한낱의 햇볕이 너무나 따사로워서 집안에 있는 게 아까웠어요. 할 일을 제쳐두고 만경강 따라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겨울엔 강물이 꽁꽁 얼어 오리들이 물을 찾아 요리조리 다니더니 이제 너른 강물 속을 아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꽃들도 활짝 피어날 테지요. 봄볕은 가만히 머리끝에서 얼굴, 온몸을 어루만져주니 잘 마른 빨래처럼 뽀송뽀송한 기분이 듭니다. 걱정거리 때문에 가슴이 답답한 날 볕을 쬐고만 있어도 마음이 풀리잖아요.

 

평범한 대화가 그런 햇볕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뭐 먹었어? 오늘 뭐했어? 어제 꿈에 누가 나왔는지 알아? 오는 길에 꽃이 피었더라. 강아지 한 마리가 따라와서 한참을 같이 놀았어. 오늘 기분 나쁜 전화를 받았지 뭐야. 일을 너무 많이 했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매일매일 해가 뜨면 당연히 볕이 드는 것처럼 특별하지 않은 말을 듣고 아무말이나 하면 그 온기로 마음이 녹고 말랑말랑해집니다.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밥상머리에서 대화를 하고, 각종 인터넷 SNS 활동에, 다양하게 작은 마음들을 나누고 알아서 잘 살고 계시리라 믿지만 그래도 가끔은 들을 준비가 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거나 따뜻한 축복의 말만 편파적으로 해줄 내 편이 필요한 날이 있습니다. 혼자 지내는 조금 쓸쓸한 1인 가구 친구들, 고리타분한 말은 듣기 싫은 소녀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들어 괴로운 생활인,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지내도 마음 저 구석은 끝내 볕이 들지 않는 외로운 영혼들을 위한 감언정식. 달콤한 말을 풀코스로 제공합니다. 듣기에 거슬리지만 도움이 되는 고언은 훌륭한 분들께 가서 들으시고 듣기에 좋고 기분도 유쾌해지는 무해한 소리들을 실컷 떠듭시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푸념을 들어주는 가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인장이 말하기를 워낙 좋아해서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실컷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가게로 바꿨습니다. 저는 상담자도 아니고 선생님도 점쟁이도 아니니까 그냥 듣기 좋은 아무말이나 할 겁니다.

 

쓸모 없는 것의 아름다움, 쓸 데 없는 일의 즐거움, 의미 없는 아무말을 하면서 낄낄거리는 기쁨을 만나보세요. 정식코스가 어떤 구성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단품구성은 어렵고 가격정책도 제 마음입니다. 감언정식은 어쨌든 비쌉니다. 지금까지 아무말이었습니다.

 

/바닥(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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