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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6] 너멍굴의 5대 기획2017-03-07

[남현이의 청년일기-6] 너멍굴의 5대 기획

  이제 터를 잡았으니, 맘껏 일을 저질러야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너멍굴에서 새로운 작당을 모의한다. 이번 기획은 이전의 수많은 계획들과는 다르게 지속적이며 원대하다. 왜냐하면 조금하다 떠나고, 부수고, 빼앗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고로 작은 꿈도 말을 뱉어야 이뤄지는 법. 너멍굴이라는 골짜기를 경륜할 5가지 기획은 아래와 같다.


첫째, 농사를 짓는다. 이름하여 너멍굴 진수성찬’. 작년 겨울, 꽁꽁 언 땅을 뒤로하고 서울의 지인들에게 찾아갔더랬다. 그리고 내년에 농사지어서 줄터이니 농산물의 가격을 미리 달라고 하였다. 선조들은 그것을 미리 값을 받는다하여 선대제라 하였다. 4일간의 약탈로 거둔 400여 만 원의 종자돈은 지난 농사의 빚을 탕감하고, 나라에 취득세를 갖다 바치며 탕진되었다. 이제 다시 빈손으로 농업을 시작할 때이다. 너멍굴 농업은 청정지역을 빙자하여 매년 그렇게 지인의 호주머니를 털어갈 영농정책을 수립하였다.


둘째, 너멍굴 영화제를 개최한다. 2016, 연말의 낭만을 술로 달래는 중이었다. 옆에 있던 과 후배는 독립영화 감독이란 멋진 직함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든 영화의 상영이 쉽지 않다했다. 독립영화제 대상까지 받은 감독의 상황이 이러하구나. 마침 나의 골짜기엔 가로등하나 없으니, 영화를 상영하면 어떤지 그에게 물었다. 그 한마디가 윤지은이란 영화제준비위원장이 선임되고, 사비 130만원을 출연하는 초대형 영화제를 만들게 된 시초이니, 역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셋째, 집을 짓는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국은 약자에게 준엄함과 강자에게 너그러움을 가진 훌륭한 법체계를 소유하였다. 추웠던 골짜기 집은 무허가였는데,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 네이버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내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허언을 여러 차례 반복해오던 차에 잘되었다. 농군의 집을 짓겠단 허언을 우리의 엄정한 법이 등 떠밀어주니 결전의 시간이다. 50만원의 넉넉한 자본과 건장한 일꾼을 보유한 너멍굴은 농막을 짓기로 결행한다. 까짓 거 짓고 금세 허물어지면 1년마다 다시 지으면 그뿐이다.


넷째, 도자기를 만든다. 귀농 초반 막사발미술관은 도예학습의 은혜를 베풀어주었다. 덕분에 자그마한 재주의 싹이 커가고 있다. 앞서 말한 원대한 기획들이 산적해있으니 당장 올해 멋진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만들어내 너멍굴 제 2의 산업역군으로 키워낼 욕망을 키우고 있다.


다섯째, 장학회를 만든다. 배움은 혼탁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희망과도 같은 것. 가난의 군내를 풍기던 나에게 학교에 다니던 선배님들께서는 넉넉히 술과 고기를 준비해 주었고, 그 대가로 독서를 요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배움의 마수를 나만 즐기고 말 수는 없지. 나도 책이라도 한 권 사주며 독서를 강제하는 훌륭한 장학회를 만들어야지. 그렇게 너멍굴은 매달 5만원의 주인 없는 돈을 모으고 있다


역시 기획은 무모해야 제 맛이다. 일단 질러놓고, 말한 것에 7할만 되면 대성공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산세, 강물도 젊은이였던 우리의 선조들이 한 삽씩 퍼서 만들어놓은 게 아니던가. 말해놓고 못하면 내가 어려서 무모했노라 사과하면 그뿐이다.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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