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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게 웃는 농부로 늙어가고 싶다2017-03-06

순박하게 웃는 농부로 늙어가고 싶다

순박하게 웃는 농부로 늙어가고 싶다.

완주시니어클럽 친환경영농사업단 팀장 김성진씨

 


농사짓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뭐가 있을까. 밭에 나가는 어르신의 뒷짐 진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다못해 농사에 자도 모르는 우리 집에도 있는 것이다. 바로 호미.’ 호미 하나로 자식들 굶기지는 않았다는 할머니부터 굽은 허리지만 호미만 들었다하면 밭의 여전사가 되는 할머니까지. 호미에 얽힌 살아있는 전설은 무궁무진하다.


호미질을 할 때 흙과 부딪치는 쇳소리의 진수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이른 시간 고요한 밭에 나가 돌을 고르고 풀을 매는 호미소리에 반해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이가 있다.


완주시니어클럽에서 십년 째 일하고 있는 김성진(44). 현재 친환경영농사업단 팀장으로 완주지역의 어르신들과 쌈채소, 양파, 황토고구마, 감자, 건고추, 김장배추 등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초기에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이서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고구마농사를 지었는데, 그때 호미소리가 참 좋더라구요. 풀을 매는 슥슥슥 호미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같이 듣기 좋았어요. 이것이 자연의 소리고 살아가는 소리구나, 그때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소리였지만 깨닫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호맹이 소리에 농사를 결심하다

박완서 작가는 말년에 호미라는 책을 통해 젊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작고 소박한 호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청년들에게는 아무래도 삽이나 곡괭이가 더 잘 어울린다. 힘껏 내리치고 퍼내는 것, 자신의 글쓰기도 그러했다고 회고한다. 깊이 파고 들어가는 글쓰기를 지나 노인이 된 작가의 글쓰기는 호미와도 같았다. 삽이나 곡괭이보다 많을 일을 하기 어렵고 속도는 느리지만 허리를 숙이고 땅을 가까이 하는 호미로 농사짓는 즐거움. 성진씨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땅에서 농사짓는 즐거움을 알게 된 행운아일지도 모르겠다.


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농사지은 10년의 경험도 있지만 그는 5대째 상관에서 살고 있는 완주 토박이다.

 

상관 정좌마을에 살고 있어요. 선대 때부터 산판으로 해서 먹고 살았대요. 나무해서 땔감장사를 하셨던 거죠. 논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짓고 대대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셨던 거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농업에 관심이 많았죠. 일손도우면서 자랐으니까요.”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짐작하건데, 조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농촌과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께서 사회복지 일을 하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일제 때 해방되고 전쟁나면서 마을에서 어려운 사람들 돕는 일을 하셨다고 해요. 물론 복지 개념이 없을 때이지요. 선대 때부터 하던 일을 어려서부터 배웠던 거죠.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사회복지를 전공하기도 했구요. 대학원에서 농촌복지를 공부했지요.”


 

이성진 씨가 시니어클럽 작업장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젊은이와 어르신이 함께 살아가는 것

집에서 농사일 돕다가 바로 농촌복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해보고 싶었던 것 다 해본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했더니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냈다. 이십대에 대한주택공사에 취직해 사무일부터 시설관리 일을 했지만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장에서 탱처리 하는 속옷들을 가지고 전국을 떠돌며 노점상으로 살기도 했다. 삼십대에는 웨스턴 바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제가 바텐더를 왜 좋아했냐면 손님들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 매력적이더라구요. 바텐더도 일종의 카운슬러고 그것이 사회복지 일 아닌가요?^^”

 

사회복지 전공으로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는 책과 현장을 함께 병행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을 원했다. 지인의 소개로 시니어클럽에서 일하면서 야간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현장의 오랜 경험으로 농촌 복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견고했다.

 

떠나는 농촌이 아니라 젊은이들도 같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농촌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고령화되는 농촌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상생하는 농촌이 되었으면 하는데, 그걸 지금 계획하고 있어요. ‘집합영농이라는 것으로 말이죠. 뭐든지 혼자 하기는 힘들어요. 함께 농사를 짓는 거죠. 지금 봉산마을에서 집합영농 모델을 만들려고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 어르신으로 4~5명 팀을 만들었어요. 그럼 젊은이들이 함께 돕고 판로를 책임지는 거죠.”


젊은이끼리, 어른신끼리, 귀농인끼리, 토착민끼리가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이며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르신의 평생농사 노하우를 젊은이가 배워 나가고 토착민들이 잘 아는 지역 고유의 자연성질에 대해 귀농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젖어 들어가 듯 함께 물드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계속 해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해서 말했다. 김성진씨 역시 십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젖어들 듯 깨닫게 된 것들이라고 한다.

 

올해는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집단영농으로 잡곡류 농사를 준비 중이다. 요즘은 돈 되는 특용작물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왜 벼농사를 고집하는 것인지 나는 물었고 돌아오는 그의 답에 부끄러워졌다.

 

앞으로도 벼농사는 계속 할거에요. 없어지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쌀은 우리의 가장 큰 주식인데 그것을 수입해서 먹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요. 남는 것 없지만 끝까지 고수하고 싶어요. 좋은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기서 농사짓는 선배들처럼 늙어가고 싶어요. 주름살도 많고 손도 투박한데 웃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아요. 찌푸린 사람 없이. 그런 농부로 늙어가고 싶어요.”


 



여전히 젊은 그는 젖어들 듯 농사선배들에게 다가가 친환경 농사 이야기를 슬쩍 해볼 것이다. 미친놈이라 욕해도 웃어넘기고, 잊을 만하면 친환경농사 해보니까 됩디다.’라며 너스레를 떨 것이다. 그 선배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순박하게 늙어 갈 것이다. 트랙터와 곡괭이와 삽에 익숙하던 젊은이는 웃는 모습이 보기 좋은 노인이 되어, 뒷짐 쥔 손에 호미 하나 들고 밭으로 나가 호미소리를 내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글사진 =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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