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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5] 노동의 삼위일체2017-02-14

[남현이의 청년일기-5] 노동의 삼위일체


노동의 삼위일체

- 너멍굴 진 지주의 탄생


 

노동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지표나 그 근처에 있는 어떠한 재화를 한 곳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기는 것. 둘째, 그것을 남에게 시키는 것. 셋째, 자신이 재화를 소유함으로써 첫째와 둘째 노동이 가능하도록 온정을 베푸는 것.


너멍굴 진가는 이 세 가지의 노동을 모두 일신에 받아들여, 노동의 삼위일체를 완성하니 궁극의 행복이 밀려왔다. 무릇 행복이란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목적인 바, 노동의 삼위일체가 주는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종류의 노동은 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오던 것이기에 아주 익숙하다. 아마 인간이 두 발로 서서 걷는 것도 이 첫 번째 노동을 쉽게 하기 위해서 였으리라. 산에 있는 낙엽을 논으로 옮기고, 풀을 베 퇴비더미를 쌓고, 굳이 크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이곳에서 저곳으로 물건을 옮기는 중노동을 행하고 있다.


두 번째 노동은 농사를 짓고 나서 본격적으로 행하게 된 노동양식이다. 처음에는 충신 밭거름이 나에게 올 것을 명령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던 것이 먼 곳에서 온 벗들에게 노동의 기쁨을 선사하기로 결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벗들의 배를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 채운 뒤, 삽과 낫을 쥐어준다. 그 뒤로 나는 손가락과 입으로 세상의 풀과 흙을 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고을의 영주가 자신의 농노들에게 부리는 마술을 내가 직접 행하였다. 이래서 친구들이 관리자로 취업을 하려는 것이구나.


세 번째 노동양식, 나의 재화를 소유함으로써 모두에게 일할 수 있는 온정을 베푸는 것. 이것은 기실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돈이 세상을 지배하며 이 새로운 노동이 탄생됐다. 농사꾼들은 세 번째 노동을 행하는 자를 일컬어 ‘지주’라 불렀다. 너멍굴 진가는 최근 지주된 자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햇살에 눈을 뜨고 땅을 둘러보며 산책을 할 때의 일이다. 골짜기 안을 홀로 돌다보면 손은 허리에 가 뒷짐을 지고, 고개는 하늘을 향해 뻣뻣이 선다. 하늘 아래 발 닿는 모든 것이 나의 온정에 의해 소생하는구나. 그 날은 겨울의 어느 맑은 날이었는데, 노동의 삼위가 일체되니 궁극의 행복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농사꾼은 육체노동을 즐기고, 다른 이를 부리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으며 그 경작하는 땅과 집을 소유하면 궁극의 행복이 오는구나. 노동의 삼위를 모두 행하니 찾아온 즐거움 앞에 진가는 땅을 바라보며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추운 겨울, 집에서 두문불출을 일삼으니, 남는 것은 시간이요. 느는 것은 뱃살이라. 이제 친구를 불러 노는 것도 지쳐 집에서 책이나 몇 자 보고, 농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입춘이 지나니 매서운 겨울바람 사이로 드는 햇살이 보인다. 봄이 오는구나. 이제 노동의 삼위일체를 달성하였으니, 온전한 노동을 맛보며 밀려오는 행복감에 몸서리 칠 뿐이다.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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