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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4] 우공이산 2017-01-09

[남현이의 청년일기-4] 우공이산

 

옛날 중국에 아흔 살 정도 잡수신 우공이란 어르신이 계셨다. 어르신의 집에서 읍내까지 나가는데 태형과 왕옥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어, 갈 때마다 산을 넘어가는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우공은 산을 몽땅 파버리기로 결심한다. 그 날 이후 우공은 자식들과 산의 흙을 파내 멀리에 있는 강가에 버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를 어리석은 늙은이라 비웃었다. 그러나 산은 높아지지 않고, 우공의 의지는 꺾이지 않으니 결국 태형과 왕옥을 옮긴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하겠다. 이 어리석은 늙은이가 산을 옮긴 것을 두고 사람들은 ‘우공이산’이라 하였다.


2017년 너멍굴에는 논밭을 부쳐 먹으며 소일하는 젊은이가 살았다. 사람들은 그 자의 거처 주변이 모두 논이라 이곳이 습한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젊은이는 논을 배수가 좋은 밭으로 바꾸기로 결심한다. 그 날 이후 젊은이는 자신의 외발수레와 낫을 들고 주변의 낙엽과 산 흙을 긁어 논에 붓기 시작했다. 하루에 5수레씩. 매일같이 말이다.

 

 


농사에 통달한 분들은 그에게 포크레인을 부르라 말했다. 그러나 너멍굴 젊은이의 알량한 경제이론에 따르면, 농사꾼이 가난해지는 것은 생산한 산물이 보잘 것 없는데 그것을 이놈저놈에게 차떼고 포떼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생산에서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소농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화폐가 대단위로 소모되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폐망의 선봉이라. 대신 하루에 한 시간씩 논에 낙엽을 붓는 것이 최선의 수였다. 그것은 가히 가랑잎에 논이 젖어가는 과정이었다. 혹자는 이것이 되겠냐? 하겠지만 땅이 움직이는 게 아니고, 젊은이의 의지가 꺾이지 않으니 결국 이 땅은 밭이 될 것이다. 그것도 한 방울의 석유도 들이지 아니하고 만들어진 밭 말이다. 사람들은 포크레인이 만든 밭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외발수레와 낫이 만든 밭은 회자되고 구전되어 후세에 남겨질 테다.


이곳 너멍굴의 논은 겨울이 지나면 이렇게 바뀔 것이다. 논은 3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그곳에 낙엽을 붓고 논의 물이 빠지는 수로와 물을 모아둘 웅덩이를 만든다. 봄이 오면 한 쪽에는 닭과 염소가 풀을 뜯고 똥을 싸 거름을 제공할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밭에는 봄 작물이 심어질 것이고, 또 하나에는 가을 작물이 심어질 참이다. 그 3개의 밭 가운데에는 젊은이가 가정을 이룬다면 살고 싶은 자그마한 흙집을 지을 것이다. 집과 밭의 가에는 과실수가 심어져 사철 신선한 과일을 먹을 거고, 한 3년쯤 더 흐르면 뜻을 함께한 이들이 소소하게 모여 살지 않을까?


크고 위대한 것은 언제나 시간을 먹고 자란다. 너멍굴의 우공이 방년 29이니, 앞으로 20여년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게다. 20년은 태형과 왕옥을 옮기지는 못할지라도, 작은 밭 한 뙈기 아름답게 가꾸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2017년, 진남현은 너멍굴에 밭과 논을 조금 일궈먹게 되었는데, 우직했던 어르신을 본받아 그의 논밭을 각각 태형과 왕옥이라 불렀다.

 

 

/진남현(지난해 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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