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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 피서일지避暑日誌 <6>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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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옛말은 ‘녀름’이고, 녀름은 태양을 뜻하는 ‘날’에서 왔다. 녀름은 ‘너름’, 너름은 ‘날’에서 온 말이다. 날은 해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하루, 태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뜻도 있다. 열두 달, 일 년 할 때 쓰는 우리말도 ‘해’다. 한 해가 지나면 한 살을 먹는다.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이라 출처가 정확하진 않지만 이 시간에 국립국어원에 전화해서 물어볼 수 없으니 그냥 믿기로 한다. 녀름의 다른 뜻은 농사다.


 


그래서 여름의 어원은 ‘열음’이고, 농사짓고 열매가 열리는 계절이라 여름이라는 말도 많이 보인다. 국어국문학이 전공이지만 당연히 수십 년 전 배운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낯선 말들의 어근이니 어원인지가 복잡해 보이지만 태양-하루-하루가 모인 여러 날의 시간-한 해-삶-열매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자연스럽다. 틀리면 또 어쩌겠는가. 어쨌뜬 여름은 해가 뜨거운 계절이다. 덥다.


 


밤에도 뜨거운 기운이 가시지 않아 잠을 못자고 뒤척이게 된다. 매해 지난 여름을 어찌 났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길어진다. 지금 사는 집에는 작년 9월 말에 이사와 올 해가 첫 여름이다. 이 집이 유독 더운 건지도 모르겠다. 겨울엔 수도가 얼어 고생이더니 여름엔 무더위라, 추위엔 옷을 껴입고 수도를 얼리지 않으려면 어찌어찌 대비할 방도라도 있는데 더위는 피할 방도가 없다. 원래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우려니 하고 적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시절의 여름은 덥고 춥고를 반복했던 듯.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사무실이나 가게집에 있을 땐 에어컨 때문에 오히려 추웠던 것 같다. 떨다가 밖으로 나오면 따뜻하다 갑자기 더워졌겠지. 직장 그만두고 아무거나 하고 돌아다닐 땐 한창 더운 휴가철에 게스트하우스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두 해나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지만 (손님을 위한) 냉방 시설이 훌륭해서 (일하는 사람들도) 더위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지금 사는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여전히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고 (버스는 시간 맞추기가 귀찮다.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리면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는 도착할 수 있다) 사무실에도 에어컨이 없다.


 


여름휴가철이다. 직장인에게 휴식과 휴일은 귀하디 귀한 것. 출근할 때 퇴근하고 싶고, 월요일부터 주말을 기다리기는 하는데 휴가 계획을 따로 세워본 적이 없어서 어리둥절한 채 그 날을 맞았다.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는, 무려 놀고 싶지 않을 때도 놀아야만 하는 무직자 생활을 너무 오래한 탓이다. 가족들과 함께 가는 휴가는 일부러 피하는 편이라 먼 옛날 직장인 시절에도 가족과 휴가를 다니지는 않았다. 그래도 돈도 없고 의욕도 의지도 없을 땐 가족이 제일 만만한 법. 일단 언니네로 갔다.


 


오! 에어컨 있는 집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에어컨을 틀면 지구가 더 뜨거워질테고 더 힘든 상황이 닥치지는 않을까, 이렇게 에어컨을 틀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나처럼 에어컨 없는 사람은 더 더울텐데 하고 걱정할 겨를도 없이 시원하니 행복할 뿐이다. (남의) 집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수십 권 보고, (남의) 냉장고를 털어 끼니를 해결하고, 자매애는 깊어간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휴가 막바지, 마지막 날은 완주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출근을 대비해야 한다. 비통한 심정이지만 계곡에 가기로 했다. 고산 소향리 대아저수지 인근에 그늘막을 치고 통닭과 수박을 먹었다. 첨벙첨벙 물에 몸을 담갔다. 물 위에 누워 나뭇잎에 반쯤 가린 하늘을 보며 둥둥 떠다녔다. 낮잠을 한숨 자고 잠깐 책을 보고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하하호호 깔깔깔.


 


아니, 이거 너무 좋잖아. 그래서 다들 바다로, 계곡으로 물놀이를, 휴가를 가는군요. 가장 더울 때 휴가를 가야하는 이유가 있군요. 여름의 맛. 다시 출근이라니 에어컨 없는 집에서 겨우겨우 잠들었다. 그래도 하루만 지나면 주말이다. 목요일까지 휴가를 낸 과거의 나에게 칭찬을. 다행이다. 더울 날은 얼마 안 남았다.


 


* 글쓴이 바닥(badac) 이보현은 새내기 귀촌인이자 완주의 직장인으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줍거나 얻어) 쓰는 자급생활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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