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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트럭, 내 인생트럭, 내 낭만트럭..용진읍 하이마을 신점순씨2016-07-04

내 청춘트럭, 내 인생트럭, 내 낭만트럭..용진읍 하이마을 신점순씨

내 청춘트럭

내 인생트럭

내 낭만트럭

 

정성을 다하면 길이 보인다네
용진면 하이마을 신점순씨

 


벌써 5년째 전주에서 고산까지 17번 국도를 달리고 있지만 장마철이 만들어내는 만경강가의  풍경은 볼 때 마다 참 근사하다. 해마다 이 즈음이면 남쪽의 습하고 따듯한 공기와 북쪽의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만나는 곳에서 장마전선이 만들어지고 그 장마전선이 만경강과 주변의 넓은 들판이 뿜어내는 기운을 만나면 용진에서 고산까지의 17번 국도변은 아침저녁으로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지난밤에도 밤새 장맛비가 내렸다. 아침 일찍 차를 몰아 용진면 하이리에 살고 있는 신점순씨를 만났다. 점순씨는 농사도 짓고 마을일도 하고 있지만 용진에서 생산되는 참나물을 3.5톤 트럭에 싣고 서울 가락시장으로 광주로 전주로 유통하는 일이 주업이다. 여리여리한 소녀처럼 보이는 점순씨가 무거운 나물 상자를 가득 싣고 팔도를 유람하는 인생유전을 들어보자.

 

용진 하이마을로 시집와서 상추 키워 살아가다


“나이는 쉰여섯,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고 고향은 임실 운암이에요. 여기서 스물둘에 첫 애를 낳았으니까 용진에서 산 세월이 더 길지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시집보내려고 해서 서울로 도망갔는데 서울까지 찾아오셨어요. 우리 아버지가 참 온화하시거든요. 우리 키우실 때도 매 한번을 안 들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가방을 던지시더라고요. 그렇게 나 시집가고 한 달도 안돼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자식들 하나라도 더 시집장가보낼 라고 그렇게 서두르셨던가 봐요.”

 

점순씨는 친정 아버지를 여의고 함께 사는 시부모님께 더 잘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두 분을 모두 집에서 모셨고 시어머님은 몸이 편찮으셨는데 13년을 더 사셨고 시아버지는 91세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스물 갓 넘어 타지로 시집온 점순씨의 눈에 비친 용진의 풍경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엽채류를 많이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양파, 토마토, 주키니호박을 많이 했지요. 이 집은 93년도에 지어서 이사 왔어요. 우리 집은 초창기에는 엽채류 농사 지어서 남부시장에 위탁판매를 맡겼어요. 농사를 그렇게 짓다가 98년도에는 근처에서 나는 엽채류를 수송하는 일을 하게 된 거죠. 유통하는 일을 시작한 거예요. 1톤 차하고 2.5톤 차 가지고 하다가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유통을 하니까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신점순 씨는 채소를 직접 운반하기 위해 대형면허를 땄다.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하다


점순씨는 평범한 농사꾼 혹은 장사꾼이 아니었다. 농업과 농산물유통에 대한 점순씨의 생각은 직관적이면서도 합리적이었다. 과거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며 결국 자신과 마을의 미래를 위해 더 합리적이고 새로운 방식의 농업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차곡차곡 실천에 옮겼다.

 

“처음엔 농사 잘 지은 것도 이천원씩 받고 못 지은 것도 이천원씩 받으니까 발전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를 잘 생각 안해요. 아무렇게나 해서 우리한테 맡기는 거죠. 다른 지역에선 작목반을 구성해서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수확하는데 힘을 쓰는데 우리 지역은 그렇지 않은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작목반 구성을 했어요. 상추만 해서는 남는 게 없으니까 참나물 작목반 구성을 했어요. ‘샛별 참나물 작목회’라고 벌써 11년 됐어요. 현재 회원은 45명. 마을 분들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어요.”

 

점순씨의 남편(양기철)은 작목반의 간사를 맡고 있고 부부는 작목반에서 생산하는 참나물 등을 수송하는 일을 맡고 있다. 초기에는 전주와 광주 중심으로 유통을 집중했지만 참나물 생산이 집중되는 삼사월에는 도저히 좋은 가격을 기대할 수 없어 서울로 판로를 확대했다고 한다.

 

“참나물이 삼사월에는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전주, 광주, 완주로는 다 소비를 못해요. 그럼 시세가 죽거든요. 안되겠다 싶어서 아기 아빠하고 서울 가락동을 돌아다녔어요. 시장조사를 한 거죠. 당시에는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해서 가락시장 경매사한테 진심으로 부탁을 했더니 길이 열리더라고요. 여기저기서 배운 농사기술을 동네 분들에게 알려드리고 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서는 최고의 시세를 받았어요. 시세 잘나온다는 남양주치를 이겼어요. 주위사람들이 많이 놀랐죠. 저는 확신이 있었어요. 이렇게 하게 되면 나한테만 이득이 오는 게 아니라 농가들에게도 이득이 온다고요. 그래도 이 마을에 와서 우리 아이들 낳아서 잘 가르치고 이렇게 터 잡고 살아온 고마움이 있어요.”

 

점순씨는 남편 양기철씨와 함께 작목반에서 생산하는 참나물 등을 수송하는 일을 한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면 된다


완주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아직도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다. 전문적인 여성농업인은 신점순씨가 처음이었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할 일을 찾아서 인내심을 가지고 쭉 해나가는 것.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살아간다.

 

“자격증 딴다고 할 때 남편이 많이 격려해줬어요. ‘자네는 운전을 진짜 잘해. 충분히 하고도 남아.’ 그래서 같이 공부해서 대형화물 면허증을 땄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기발한 생각과 아이디어는 있는데 인내심이 없어요. 그래서 중간에 포기를 많이 해요. 안하다가 하니까 몸이 아프잖아요. 그럴 때는 좀 쉬었다가 다시 천천히 시작해야 돼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다보면 길이 보이고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영화 <역린>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조역으로 나온 현빈의 독백이다. 점순씨는 중용의 가르침처럼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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