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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씨의 화양연화(花樣年華)2016-06-08

이슬씨의 화양연화(花樣年華)

마침내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스물다섯 그녀의 아름다운 시절

 

이슬씨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이슬씨는 스물다섯이다. 그녀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운주면 수청리에서 수청농장을 운영하며 닭을 키우는 일을 한다. 그녀에겐 아이가 둘 있다. 첫째의 이름은 진우, 둘째는 하람. 평범하지 않았을 그녀의 갈림길들이 궁금했다. 운주가 고향이고 중학교는 전주에서 다녔지만 학교 공부는 하나의 길만을 말해주었기에 그녀는 여러 갈래의 길을 안내해준 간디학교를 찾았다고 한다. 간디학교에서의 생활은 충분히 행복했지만 졸업할 무렵 다시 나타난 갈림길에선 망설임과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20살 때. 그때 굉장히 힘들었죠. 간디학교에선 타인과 공동체의 삶을 알게 해줬어요.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찾는 거였는데, 저는 다른 것은 열심히 했는데 그것만 못한 거 같아요. 사람한테 관심이 많다 보니까 친구들 문제나 관계에 집중한 거죠. 내 자신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어렸을 때부터 독립심이 강했고 남들 눈치를 보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더 편하고 좋았던 그녀였지만 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그녀는 갈림길 앞에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서성이고 방황했다고 한다. 그 시절의 두려움은 삭발, 여행, 칩거생활로 이어졌지만 애니어그램 지도자과정 공부와 영성공부로 마음을 다스렸고 우연히 찾아온 남편과의 만남이 결국 그녀에게 망설임 없이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용기를 줬다고 했다.

 

“2년 정도 나를 찾아가는 방황의 과정이었어요. 거짓 나에 속지 말자. 나를 찾는 훈련을 많이 했죠. 거의 다 됐다고 느꼈을 때 남편을 만난 거죠. 만약 이런 훈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을 만났다면 똑같이 상처받고 서툴렀을 거예요. 근데 그 이후에 만났기 때문에 잘 관계를 맺게 된 거죠. 나의 중심이 서니 흔들리지 않았어요.”

    

남편 송치재씨와 이슬씨, 첫째 진우와 둘째 하림이.

아버지 이석재씨가 첫째 진우를 데리고 마실을 나갔다가 돌아오셨다.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왜 그렇게 빨리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는지 궁금했다.

 남편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렸지만 저랑 잘 맞았죠. 제가 가장 원하는 걸 해줬어요.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을 때, 보통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방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근데 남편은 수용해줬죠. 안아주고 받아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저는 22살 남편은 21살이었어요. 그리고 1년 뒤에 결혼을 했어요.”

 

남편은 아이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것이 달랐다고 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를 낳자고 했고, 양가 부모님 모두 그런 이들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고 했다. 갑자기 나타난 두 갈래의 길에서 주저함 없이 하나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 길은 쉽지 않은 길, 어떻게 먹고 살며 아이를 키우는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부터 닭 키우는 일을 많이 도왔어요. 닭 차들이 와서 싣고 가요. 살아 있는 닭들 다섯 마리씩 잡아서 옮기는 작업을 해요. 여름철에는 직접 닭을 잡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닭을 잡았는데 나중에는 나름 한 몫을 했죠. 닭 잡는 게 흥미로워 보였어요. 처음에는 똥집 까는 일을 했죠. 닭 내장 빼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해요. 닭털 돌려서 빼는 게 제일 힘든데, 큰 칼로 배 가르고, 목이랑, 닭 발을 탁 쳐내는데 한 번에 가르고 쳐야 해요. 그래야 고기가 안 상하거든요. 전 그거 연습하다가 손을 다쳐서 몇 바늘 꿰맨 적도 있어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방송댄스를 배운다는 이슬씨.

 

 

닭 잡는 이야기를 듣고 나선 그녀가 스물다섯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그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이 아니고선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디테일이 담겨 있었고 삶에 대한 진지하고 담담한 태도가 묻어 있었다. 먹고사는 일과 아이 키우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일주일 두 세 번은 전주 시내에 나가 방송 댄스를 춘다고 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게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그 동안은 특별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사실 좀 힘들었어요. 평범하게 살며 가치관에 맞게 사는 것, 더불어 사는 것, 혼자 보다는 같이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죠. 아이도 셋째 까지는 확실히 낳을 거구요. 넷까지는 생각중이에요. 나랑 다른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험이 참 감사해요. 아직 젊으니까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지금은 이 아이가 가장 중요해요. 태어나서 천일까지의 시간은 다신 오지 않잖아요. 그리고 남편이 졸업할 때쯤 결혼식도 올리고 함께 못간 신혼여행도 다녀오려구요. 프랑스의 떼제공동체와 산티아고 길을 가고 싶어요.”

 

소설가 보르헤스는 세상을 끝없이 갈라지는 두 개의 길들이 있는 정원이라고 했다. 인생은 결국, 반복되는 수많은 갈림길 위에서 어느 하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길로 들어서든 결국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므로 기억할 만한 질주이고 용기인 것이다. 나는 오늘 화산면 소청리에서 닭을 잡고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 마주칠 또 하나의 갈림길로 다가서는 기억할 만한 질주 혹은 용기 있는 스물다섯의 이슬씨를 만났다. 어쩌면 지금이 이슬씨 인생의 화양연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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