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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 남자의 갖가지 비밀2016-05-02

특별한 이 남자의 갖가지 비밀

 

 

특별한 이 남자의 갖가지 비밀

덕천하이트 아파트의 최성영씨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

모르는 일도 없고

못하는 일도 없는

40대 후반의 남자, 최성영

 

    

이 남자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 모르는 일도 없고, 못하는 일도 없는 40대 후반의 남자 최성영. 여기까지는 영화 <홍반장>의 주인공 캐릭터를 설명하는 문장을 이름만 바꿔서 그대로 따라 썼다. 최성영 아저씨를 묘사하는데 딱 맞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최성영 아저씨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는 영화처럼 파란만장했다. 목포에서 태어났고 서울로 올라가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상을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와 백화점 영업사원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능력을 인정받아 광주의 어느 백화점으로 스카우트되어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고 이월상품 판매일을 하며 전국 각지를 떠돌았다. 무슨 일이든 모르는 척하며 지나치는 법이 없어 자연히 많은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 위험한 일도 많았지만 그 와중에 지금 아내를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떠도는 것도 좋았지만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을 위해 10여 년 전 완주군 용진면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17번 국도변 덕천하이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최성영 아저씨가 두 시간 가까이 설명한 살아온 이야기의 큰 줄거리다.

 

누구나 한번쯤 다 왕년이 있는 법

 

전라남도 목포가 고향이고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심신연마를 좀 했죠. 그 당시 빨간바지 입고 빨간신발 좀 신었어요. 다 과거가 있고 다 왕년이 있는 거죠. 처음엔 서울에서 백화점 영업사원 일을 했었죠. 너무 잘 해서 광주로 스카우트 돼서 그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근데 일년 있다가 아이엠페프가 터졌어요. 그때 스물여덟이었으니 너무 일찍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 거죠. 근데 인생이 스카웃이야. 그러곤 스포츠용품 나이키 대리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영업일에 대해 재주가 많았으니까요. 이월상품을 80프로씩 세일해서 판매하는 건데 전국에 있는 제품을 다 모아서 각지를 돌며 판매하는 거죠. 건달이든 공무원이든 다 상대했어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마음씨 좋은 맥가이버 아저씨가 있으니 인터뷰 해보라는 소개를 받았는데, 아저씨의 인상은 상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랐고 하시는 이야기도 다소 거친 느낌이라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계속되는 아저씨의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한편의 느와르이자 통속드라마였고 로드무비이자 착한 사람들의 다큐멘터리였다.

 

별명이 맥가이버였어요. 여기로 이사 온 지는 13년 됐고,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게 된지도 벌써 10년이 됐어요. 아파트가 부도나고 입주자대표 비상대책위원에서 활동하다가 어떻게 지금 일을 하게 됐죠.”

 

워낙 오지랖 넓으신 성품 덕에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 등등 하시는 일도 참 많았다. 그 덕에 좋은 일이 많았고 서운한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10년 째 일을 하다보니까 관리사무소 직원 처우문제든지 갑을문제라든지 사실 상처받는 일도 종종 있지요. 그래도 오래 근무하다보니까 여러 사람들의 사연을 알게 되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정이 가는 거죠. 집을 수리해도 무료봉사해주고 싶은거에요. 주민들이 다 형, 동생, 누님이 되고, 이모가 되고 그렇게 되죠.”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아저씨는 아파트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다. 아저씨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고 어느 집에 무슨 문제가 있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훤히 꿰고 있었다. 아저씨가 정말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저씨가 키우는 유기견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됐다.

 

누구에게나 '왕년'은 있다. 왕년의 최성용씨.

 

 

유기견 돌보는 정 많은 남자

 

사람들이 이사 가면서 키우던 개들을 많이 버리고 가요. 지금 여덟 마리를 키우고 있고 입양 보낸 개만 해도 대여섯 마리는 되요. 입양도 그냥은 안보내고 입양할 사람이랑 대화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보내죠. 사람이랑 대화를 해보면 순박한 사람인가 알수 있거든요. 그리고 아파트 상가사람들이 공간도 내주고 도와줘서 개들을 키울 수 있었죠. 냄새 안나게 해줄 테니 키울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상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해서 결정을 했죠. 바닥 공구리까지 쳐줬어요.”

 

처음엔 버려진 개들이 안쓰러워 거둬 키우던 일이 이제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아저씨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눈치안보고 개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것. 훗날 완주의 어느 곳에 아저씨가 운영하는 유기견보호소를 상상해본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아파트 주민들과 관리사무소의 관계는 갑을관계이거나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처럼 보였지만 아저씨와 주민들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아파트는 아저씨의 거주지이고 또한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주민들에게 아니, 이웃들에게 꼭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다.

 

완주군 아파트 르레상스 사업도 중요하지만 아파트에는 쓰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지원사업이 있어야 해요. 시골이다 보니까 분리수거하는 인식이 좀 부족하거든요. 아파트 설비, 방범에 신경 써야 하는데 매일 이 일 때문에 잡혀서 다른 일을 못해요.”

    

최성영씨의 휴대전화에는 키우고 있는 유기갠 사진이 가득하다.

 

오바하지 말라는 집사람 말을 철칙으로 삼다

 

우리 와이프 하는 말이 오바하지 마라.’ 그 말을 명심하며 살아야죠. 집사람이 고마워요. 파란만장할 때 같이 살아준 게 고맙고 나를 견뎌줘서 고맙죠. 지금은 제가 빨래하고 청소도 하고 다 해요. 위계질서가 바뀌었죠. 자존심은 하찮은 거 같아요. 내가 져주고 낮아지는 게 아름다운 거죠. 그렇다고 좋은 아빠, 남편은 못 되요. 아직도 성질이 남아있어서. 그래도 노력을 해야 하는 거죠.”

 

최성영 아저씨를 만나고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어디서든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는, 홍반장>과 중절모를 쓰고 우리 사이에 굳이 통성명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라는 멋진 대사를 날렸던 <다찌마와리>. 어쩔 수 없이 다듬고 지워냈지만 내가 들은 아저씨의 살아온 이야기는 여기 쓰여 진 것보다 훨씬 더 통속적이면서도 멋있었고, 거칠면서도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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