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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번째 생일맞은 한마을 친구 장복례-신덕희 2016-03-07

아흔번째 생일맞은 한마을 친구 장복례-신덕희

고단한 일고개, 영감잃은 눈물고개도 함께 넘었으니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청려장(명아주 지팡이)이 되었구나

아흔번째 생일맞은 한마을 친구 장복례-신덕희

 

 

1927. 정지용이 시 향수를 발표하고, 전국노래자랑의 영원한 오빠 송해 할아버지가 태어나던 해, 장복례 할머니와 신덕희 할머니도 태어나셨다. 두 분은 우리 나이로 올해 90.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도 90세의 어르신을 만나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완주군 화정리 명석마을에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90세 어르신을 모시게 되었다. 그 것도 두 분이나. 명석마을 사람들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마을회관에 모여 조촐한 생일잔치를 했다고 한다. 신덕희 할머니는 나이 먹은 것이 무슨 자랑이라며 쑥스러워 하신다.

 

그래도 며느리가 꽃다발 사와서 나 하나 주고, 저 친구(장복례 할머니)도 주드만. 나는 보답으로 노래 한 소절 부르고 저 친구는 춤추고 그랬지

 

조선시대에 임금이 80살이 되는 노인에게 선물을 했다는 청려장이 생각났다. 청려장은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명아주 지팡이인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고, 신경통에 좋다고 기술돼 있으며, 나무보다 가볍고 강해 최고의 명품 지팡이로 알려져 있다. 청려장은 효자들이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자, 노인이 살아온 풍부한 삶에 대한 경의이자 예우였다.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우린 어르신들에게 소홀해져 간다. 우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테지만 삶이 복잡해지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도 없는데 누군가를 살필 겨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일수록 주변의 어르신에게 청려장을 선물했던 전통과 마음을 생각한다. 명석마을 사람들이 90세가 되신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고기반찬을 해서 생일상을 차려드린 마음이 따뜻하고 곱다.

신덕희 할머니와 장복례 할머니는 나이가 무슨 자랑이냐며 연신 손사래를 치신다.

 

신덕희 할머니의 이정희 넷째 며느리가 찍은 사진. 명석마을 회관에서 구순이 되신 할머니 두분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어려운 시절 함께 보내야 친구지

 

화정리가 고향인 장복례 할머니는 16살에 이 마을로 시집오셨고 화산면이 고향인 신덕희 할머니는 18살에 화산 용수마을로 시집가셨다. 두 할머니는 비슷한 점이 많다. 장 할머니는 6남매를 두셨고 신 할머니는 8남매를 두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기도 비슷하다.

 

장복례- “64살 때, 할아버지는 66살에 갔지. 지비는 언제 갔어?”

신덕희- “우리 집 양반은 69살에 갔어. 나는 그때 68살이었네.”

장복례- “우리 집 양반이랑 이 집 양반도 친한 친구였어. 그러니까 이 집 양반이 우리 집 양반 묘소에 꼭 담배를 꽂아 놓고 가셨지. 논에 갔다오시다가도 꼭 우리 집 양반 묘소에 들러 담배를 꽂아 놓고 가곤 했지. 나도 밭일 하다가 연기가 폴폴 나서 가보면 담배가 타고 있어. 그럼 묘소에 대고 이야기 하지. ‘당신 친구가 담배 잘 피워 놓고 갔네.’ 하고.”

 

지금에야 장례식장에서 모든 절차를 알아서 해주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이 마을의 일이였다.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평생을 살다가 떠나는 삶은 어떠했을까. 열일 제쳐 두고 달려온 이웃들이 장례음식을 차리고, 상여를 매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으로 오르던 이들도 이웃들이었다. 그 가깝고 내밀한 관계를 젊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할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할머니 두 분은 이 모든 걸 함께 했다.

 

 

시간은 서로를 닮게 한다. 이 마을에서 만나 나이듦을 함께 하는 두 할머니는 닮지 않은 듯, 닮으셨다.

 

 

동갑내기 마을 친구, 우리 이제 망구땡 하.

 

신덕희 할머니는 나이 50세가 지나서 이 마을로 이사를 오셨다고 한다.

친척한테 보증을 잘못 해줘서 논도 잡혀버리고 집도 팔아버리고, 그러니 재산이 뭐가 있었 간디. 소 한 마리 있는 놈 끌고 어우리로 처음 이사를 왔지. 어우리에서 살적에 힘들게 살았지. 자식은 많고 몸은 아프고. 그래도 여기 명석마을 와서 잘 살았지. 집도 짓고, 시방은 자식이 많으니까 좋아.”

 

낯선 마을에 터를 잡고 적응해 가는데 큰 위안이 되었을 친구. 동갑내기 장복례 할머니와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아 이물 없이 지낸지가 40년이 되어간다.

 

둘이 무슨 계기로 친구가 되었는지, 놀 때는 무얼 하며 놀았는지, 요즘 젊은이들이 친구를 사귀고 노는 기준으로 질문한 내가 많이 어리석었다는 걸 금새 깨닫는다. 마을에서 길쌈을 제일 잘 하셨다는 장복례 할머니의 우문현답. 놀고 즐기면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밤낮없이 일만 하던 시절이 가고 서방도 보내고 나니 친구가 남더라는.

 

그때는 길쌈매고 삼 삶고 뭐 그러느라 놀 시간이 있었간디. 지금처럼 물이 나와? 저기 한지 시암 가서 물 길어다가 밥 짓고. 전기밥솥이 있어? 아궁이에 불 떼서 가마솥 올리고. 식구라고는 어찌 많은가 15명 삼시세끼 밥 해먹이고 수랑뜰 시암 가서 빨래하고. 아낙들은 놀 겨를이 없었어. 근데 지금은 망구 땡이여.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밥은 전기밥솥이 해주고. 세상 망구 땡이지. 뭔 걱정이여.”

 

망구땡. 참 적절한 말 아닌가. 평생을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마을의 큰 어르신이 되어 마을회관에서 식사대접도 받고 뜨듯한 아랫목에서 오침을 청하기도 하고 가끔은 화투짝도 쥐고, 할머니 두 분은 이렇게 호강하는 요즘이 그야말로 망구땡이라고 하신다.

 

완주에는 어르신들이 많다. 70~80세 어르신들은 여전히 논밭으로 나가 일을 하시고 90세 되신 어르신들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신다. 거목 같은 손과 굽은 허리로 그 분들의 삶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마을회관은 두 할머니의 놀이터가 된다.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두 할머니의 뒷모습도 닮았다.

 

올 듯 안 올 듯, 하지만 기어이 봄은 올 테다. 요즘 들녁을 자세히 살피면 구부정하게 앉아 고물고물 일을 하고 계신 어르신들을 분명 만날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 기억보관창고인 어르신들과 볕 좋은 어느 곳에 앉아 새참거리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어르신들의 묵은 이야기들이 젊은이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젊은이가 별스럽게 군다고, 옛이야기를 물어 뭐하냐며 군소리는 좀 듣겠지. 하지만 못이기는 척 어르신들은 오랜 기억들을 젊은이에게 나눠 줄 것이다.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청려장 지팡이를 짚고 마을의 젊은이에게 둘러싸여 옛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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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삭제 2975일 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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