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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0] 앞서가는 봉동읍 낙평리 2016-02-11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0] 앞서가는 봉동읍 낙평리


완주중학교(낙평리 813) 낙평리에 있고, 낙평리는 전의이씨 전주이씨 천안전씨 집성촌이다.

 

1960년 7월 29일 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평리145번지 봉동면 의원(완주 기네스 187면)출신 민주당 이정원(41, 서울대예과 중퇴)씨가 5,630표(차점 이존화 5,143:표차 487)로 당선되었으며, 옥중 출마자와의 경쟁관계에서 오랫동안 개표의혹이 나돌았다.

동생 이봉식(1928∼2010)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나온 식자로 마을에서 ‘비닐 하우스’를 설치해 앞서가는 농사법을 보급하여 부촌 꿈을 이루었다. 군에서는 그 공로를 인정 상을 줬으며 2015년 12월에 나온『완주 기네스』30∼31면에도 소개되었다.

 

완주군엔 해방 당시까지 중학교가 없어 졸업하면 도시로 진학했다. 유지들은 이를 뼈아프게 여겨 1948년 6월 5일 신기리 생강조합 20평 회관에서 완주중학교를 개교했고 계속 노력하여 낙평리831번지 새 터(교지면적 31,534㎡, 운동장 18,797㎡)에 정규 교실을 지어 일취월장 1987년 무렵엔 남녀공학 1,390인었다.

 

이 일대는 사질양토(沙質壤土)로 어느 작물이나 잘 자란다. 땅 2m만 파도 모래 자갈 물이 나오는 특별한 지질이다. 이리하여 지명이 낙평리(洛平里, 樂平里)이며, 논밭 건너 자연부락 보상, 낙정, 쌍정, 신기, 신교, 낙평은 의좋게 살아 나온다.

 

봉동교 물을 ‘마그내’라 하며 옛날 사람들은 “동포천리 푸른 물/ 고깃배 띄우고 빗속에 줄지어 돌아 오네(東浦千尋碧 漁帆帶雨歸)”이런 시를 읊었다.

원낙평 마을 안 천안전씨 사적비는 알리는 게 많다. 화산면 종리 천곡사 묘정비문(廟庭碑文)은 이 고장 전해권의 글씨이다.『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외집(外集 )64권 '명오지(名塢志)'에 이런 글이 있다.

“전주 율담 물 주줄산 서쪽 여러 골에서 내려와 논에 대니 이로우며, 땅은 아주 기름져 메벼, 물고기, 소금, 생강, 토란, 대, 감이 넉넉한데 ‘양전포’와 ‘오백주’는 모두 생업이 풍족하다<全州之栗潭(전주지율담)。受珠崒山以西諸谷之水(수주졸산이서제곡지수)。利於灌漑(이어관개)。地爲上腴(지위상유)。有稉稻魚塩薑芋竹柿之利(유경도어염강우죽시지리)。良田浦(양전포),五百洲(오백주)。개요생업(皆饒生業)>”.

 

완주경찰서가 가까워 도둑이 없고 민원 처리가 편리하다. 모텔도 이웃이라 손님 대접 걱정 없다. 교통이 아주 편리하다. 전주 걸어 다니던 옛길은 전주 부중을 나서➞명지동➞초포 방죽안➞소양천을 건너➞계상리➞구만리➞마근리➞고산천[만경강] 건너서➞낙평리에 이르렀다.

 

한 때 좋은 시절에는 물 가까운 곳에서 소싸움대회를 열었다. 정부에서는 만경강이 돋보이도록 양편에 나무를 심었고 자전거 길을 냈으며 징검다리를 놓고 꽃밭을 만들어 강살리기에 힘을 썼다. 1960년대 말까지 봉동교 아래 물가는 여름철 으뜸 피서지였다. 맥주와 물을 연결시켜 사람 끌어모아 봉동 명운을 되일으켜보자. 

 

/이승철 국사편찬위사료조사위원(esc2691@naver.com)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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