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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가 해야만할 일...고산119 안전센터의 시골 소방관2016-02-11

이건 우리가 해야만할 일...고산119 안전센터의 시골 소방관

너 아직도 불 끄러다니냐?

불 끄지마라, 불 끄지마



어머니 만류에도 이건 우리가 해야만할 일

고산119안전센터 소방대원들

 

 

머뭇거림 없이 고산 119안전센터를 찾아간 이유는 두 가지다. 탁상달력과 소설가 김훈의 글 한편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지인에게서 작은 탁상달력을 선물 받았다. 제목은 <몸짱소방관 달력>.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화상환자들을 돕기 위해 유명 사진작가와 실제 소방관들이 재능기부로 함께 만든 2,500부 한정판 달력을 선물 받은 것이다. 그 달력을 가게 책상위에 세워놨더니 보는 사람들 마다(특히 중년 여성들) 탄성을 내지르며 종이가 닳도록 넘겨보곤 했다. 고산에도 소방서가 있던데 찾아가보라고 등 떠미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찰나 김훈의 산문집에 실린 소방관에 대한 글을 읽었다.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은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다.”

 

우리 곁의 고산119안전센터

 

완주군에는 별도의 소방서가 없다. 전주 완산소방서와 덕진소방서가 인접한 완주군 지역을 각각 관할한다. 하지만 완주군 북부권의 6개면은 덕진소방서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별도의 거점을 뒀다. 우리가 아는 고산소방서의 공식적인 명칭은 <고산 119 안전센터>다. 이곳의 김형수(52)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운주나 화산 같은 원거리에서 화재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위급한 상황을 처리해야 하잖아요. 그런 곳에는지역대가 있어요. 우리 직원이 파견 나가 있죠. 모두 29명의 소방관과 2명의 의무소방원이 고산119센터와 운주, 화산 지역대에 상주해 있죠. 그리고 완주지역 주민들로 이루어진 의용소방대분들도 계십니다. 소방관들이 불만 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화재 진압하는 화재요원, 환자를 응급조치하고 이송하는 구급요원, 재난현장이나 화재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요원, 크게 세 파트로 분류 되어 있죠.”

 

 

두려움은 묻어 두고 어디든 뛰어간다

 

 


어린 시절 같은 반 남자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대부분이 소방관이었다. 거대한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은 어린아이 눈에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으로 보였을 것이다. 소방관 25년 경력의 김형수 센터장은 화재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참을 침묵했다.

 

“굉장히 무서워요. 내가 여기 들어가면 죽을 수 있겠구나. 25년을 했는데도 아직도 무서워요.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할 때는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를 머릿속에서 수십 번을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현장에 나가면 순간 패닉상태가 되요.”

 

소방관 평균 수명이 67세라고 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트레스다. 긴장과 압박 속에 늘 대기상태여야 한다. 사고 현장의 참혹한 광경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남아 그들 머릿속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 몸과 마음이 다쳐도 그들은 치유할 시간이 없다. 사이렌이 울리면 바로 뛰어 나가야 한다.

 

“최근에 모 제약회사 공장에서 불이 났었는데 2박 3일 동안 불을 끄고, 점화 정리하는데 2박 3일 정도 걸렸어요. 우선 급한 불만 잡아 놓고 보니 새벽 4시 쯤 비가 오더라고. 직원들은 완전 녹초가 되었죠. 비실비실 걸어 나와서 30분 정도 전체 휴식을 취하는데 어디 쉴 데가 없잖아요. 화재현장에 들어가서 비를 피할 수도 없고. 누가 말도 안했는데 공장 앞 도로 위에 내리는 비를 맞고 다 누워 있는 거야. 온 몸은 시커멓고 비는 내리고. 그걸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김형수 센터장의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아들에게 자주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너 아직도 불 끄러 다니냐? 불 끄지 마라. 불 끄지 마. 내가 직업이 소방관인데 불 끄지 말라고 밤마다 전화를 하셨지.”

 

 

젊음과 연륜이 함께

 

 

안전센터 내에 딸린 아담한 부엌에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여성의용대 총무를 맡고 있는 국수현님이 늘 따뜻한 집밥을 해주신다고 한다. 빨리 먹는데 익숙한 소방관들 사이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씹지 않고 삼켰다. 힘들게 반절을 먹었는데 그들은 이미 사무실에 앉아 다시 근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출동이 없을 때는 행정업무 처리로 쉴 새가 없다. 그들과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류재천 팀장.

 

소방관 경력 28년차 류재천 팀장은 88년도에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90년대는 화재가 주류였는데 지금은 화재가 줄어든 대신에 구급이나 구조 쪽으로 사고가 많아졌다고 한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험악한 상황들이 많아져서 우리 현장도 영향을 받는 거죠.”

 

한지원 대장.

 

맑은 얼굴의 한지원 대장은 소방관 경력 3년차, 고산센터의 막대다.
“체력적으로 젊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장 나가면 20~30년 되신 선배님들의 경험들은 저희와 비교가 안 되죠.”

 

김민 대장.

 

신참과 고참, 중간에서 든든한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10년차 김 민 대장은 긴장을 풀기 위해 쉬는 시간에는 운동을 한다고 한다.
“오히려 신참 때는 별로 안 놀랐어요. 뭘 모르니까. 10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 출동 관련해서는 아직도 두근두근해요. 근무할수록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지날수록 무던해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죠.”

 

 

내가 해야만 하는 일


그들은 우스갯소리로, 정말 소방관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5%밖에 없을 거라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찾다보니 소방관이 된 95% 사람들.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고, 덩치만 컸지 누군가에게는 그저 철없는 아들이었을 그들이다.
“뭣도 모르고 소방관이 됐는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요. 사람을 구하니까. 이건 정말 남한테 미룰 수가 없는 일이야. 내가 해야 되는 일이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직장일이라는 것이 아프면 조퇴를 할 수도 있고, 일하기 싫을 땐 동료 뒤에 잠시 숨어 쉴 수도 있다. 하지만 소방관은 안 된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난다.


고산119안전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덩치 좋고 인상 좋은 소방관 아저씨들이 있다. 그들이 있어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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