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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까짓거, 우리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시잡소'2016-01-13

어느날 까짓거, 우리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시잡소'

시잡소를 펴낸 고산고등학교 소녀들이 고산미소시장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심소희, 임예빈, 문은혜, 권오영, 전주에서 놀러온 친구 조혜민양.

 

 

어느날 까짓거, 우리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늙수그레한 30대 여선생과 천방지축 소녀 4명이서

시간을 잡는 소녀. 줄여서 시잡소라고 부르기로 하자. 왠지 입에 착착 감기고 당찬 느낌이어서 마음에 드는 줄임말이다. 이쯤 되면 시잡소가 무엇인지 무지 궁금할 거라 지레 짐작해 본다. 시잡소는 고산고등학교에 다니는 네 명의 소녀들이 뭉쳐서 만든 잡지의 제목이다.

잡지에 대한 설명은 뒤이어 소녀들의 언어로 직접 전하기로 하고, 먼저 소녀들과 나의 질긴 인연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소녀들과 몇 년 동안 함께 놀던 가락이 없었더라면 이 잡지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소녀들아. 나랑 놀자

 

소녀들을 처음 만난 건 2012. 15살 고산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 청소년 직업체험프로그램에서 강사와 학생으로 만났다. 완주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청소년들이 직접 인터뷰해보고 기사를 쓰고 책자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보통 프로그램이 끝나면 강사와 학생들은 작별하기 마련인데 이 친구들과는 계속 만날 일이 생겼다. 나에게 나이 어리고 당돌한 친구들이 생기고, 소녀들에겐 늙스구레한 친구 하나가 생긴 셈이다.

 

해를 넘기고 2013년 고산미소 시장에 널리널리 홍홍이라는 작은 점포를 시작했고 갈 곳 없던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가게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벌써 3년이 흘렀다. 소녀들과 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쑥스러워 동네주민 이정은(연두엄마)씨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홍은 너희들에게 무엇이 길래 왜 자꾸 오냐는 질문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말았다. 연말 드라마 시상식에서나 나올 법한 감동적인 말들이 터져 나왔고 나는 눈물을 쥐어짜는 과도한 연기로 오글거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들의 말은 참으로 예뻤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전학을 많이 다녀서 모르는 사람한테는 인사를 안했거든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제가 친화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홍홍 샘 주변 분들을 알게 되고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거 같아요.”

 

학교에서는 성적에 치이고 선생님, 친구관계에 치이고. 여러 문제 때문에 학교가 편하지 않았어요. 친구와도 힘든 것들을 나누지만 서로가 힘든걸 아니까 편히 이야기 하지 못했죠. 여기 와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느낌. 그래서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꼈죠. 나에게 좋은 곳이에요.”

 

추억. 애들이랑 추억 쌓은 게 많아요. ~~~~~~~~~~~~~근데 너무 오글거려요.”

 

나한테 홍홍이란 학교 끝나고 오는 곳. 여기 없었으면 저희 오갈 데도 없고 매일 차 시간 안 되면 벌벌 떨면서 기다렸을 테고, 그리고 여기 오면 먹을 게 많거든요.”

 

그래서 가게 한 쪽에는 본격적으로 어른들의 주머니를 털고자(?) 후원함이 마련되어 있다. 주머니에 잔돈들이 생기면 후원함에 털어 놓고 가시는 고마운 주민들 덕에, 먹성 좋은 나의 어린 친구들은 나날이 키도 크고 살도 포동포동 오르고 있다.

 

 

. 이제 들려줘 너희들의 이야기를

 

고등학교 진학으로 4명의 친구들은 다른 지역으로 진학을 하고 남은 네 명이 고정 멤버가 된 거다.

권오영, 문은혜, 심소희, 임은혜. 이 들이 시잡소를 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팀이다.

 

201510월부터 시작해 기획회의, 아이템 선정, 필름카메라로 사진촬영, 인터뷰, 기사작성, 삽화그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편집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소화하는 프로젝트였다.

소녀들의 손과 발과 머리와 마음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바삐 움직였다. 해가 지나고 1. 방학은 했지만 잡지는 발간되어야 하기에 편집 작업에 한창인 소녀들과 엄청난 간식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 묻겠다. 시잡소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처음에 생각한 제목은 시간을 잡는 잡지였는데.. 저희가 소녀 잖아요. 그래서 소녀로 바꿨죠. 기획회의를 할 때 많은 아이템들이 나왔는데 그게 대부분 현재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자는 컨셉. 현재의 우리들이 빨리 흐르는 시간을 잡고 과거를 들여다본다는 그런 느낌이랄 까요.”

 

   

 

농촌에는 세대 간의 격차가 큰 법. 청소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대화가 점점 줄어들며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소녀들은 그 원인을 언어라고 생각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조사한다. , 은어사용설명서.

요즘 아이들이 쓰는 알 수 없는 줄임말을 신중하게 듣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다. 거의 외계어 수준이므로. 그래서 자신들이 무심하게 쓰던 은어들을 수집하고 어른들이 이해하기 좋게 설명해주는 작업을 했다.

또한 그들 자신도 때론 어른들의 말들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그래서 함께 사는 할머니가 자주 사용하시는 사투리를 중심으로 어른들의 언어도 조사해서 이해하기 좋게 풀어 썼다.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사진을 찍던 소녀들은 과감하게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필름카메라 들고 고산읍내 돌아다닌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무심히 지나치던 곳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선했어요. 셀카는 찍고 안 예쁘면 바로 지우는데. 필름카메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찍을 때 신중하게 찍게 되는 것 같아요.”

 

잡지 2호도 만들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손사레를 치다가 그래도 이렇게까지 한게 아까워서라도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시잡소 1호는 1월 중순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 소녀들의 잡지다. 한 권에 2,000. 완판 되어야만 2호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널리널리 홍홍에서 판매할 계획이니 언제든 찾아오시라.

 

소녀들과 완판의 김칫국을 마시며 잡지 2호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100분토론 분위기로 흘러가서 소녀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 교육현실, 자연스럽게 청년들의 실업문제로 이어졌다.

소녀들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 만큼 다양한 꿈을 꾸고 싶어 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무섭게 알고 있었다. 현실은 꿈을 꿀 만큼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소녀들이 한 말이 오래도록 떠올랐다, 잠겼다를 반복한다. 아마 내 마음 속의 소녀가 동 하였기 때문일 수도.

 

진로가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가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꼭 진로여야 하는 건가. 우리한테 있는 뇌는 그냥 있는 건 아니잖아. 가치관이나 다양성.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크게 만드는 것. 문제집 푸는 공부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짜 공부. 그런 것들을 지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양성을 존중해주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 그런 세계였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잡는 소녀 소개

완주진로교육센터의 지원과 미디어공동체완두콩의 후원으로 고산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이 만든 잡지.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든 300부 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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