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장미경의 삶의풍경

백인자 할머니의 손두부집 한백상회2015-10-12

백인자 할머니의 손두부집 한백상회

산골짜기 할머니의 손두부집
백인자 할머니의 손두부집 한백상회

 

논밭과 부엌사이 그 어디메쯤...
순하고 용감한 할머니의 순두부

 

 

 연석산 아래 백인자(77세) 할머니의 손두부집은 이미 유명한 곳이다. 옛날 방식으로 가마솥에 콩을 삶아 거칠게 만든 손두부는 등산객들 사이에선 큰 위로가 되었을 거다. 그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알려진 할머니의 손두부는 4~5년 전 대중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알려졌다. 전화 예약을 안 하고 가면 두부가 없어 헛걸음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작은 입간판 하나 뿐인 이 시골 순두부 가게는 올 여름 잠시 문을 닫았다가 가을이 돼서야 다시 조심스럽게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리를 다쳐 여름 내내 병원신세를 졌던 백인자 할머니. 이제는 힘에 부쳐 순두부찌개는 못하고 주말에 손두부만 파신다고 한다. 여름부터 줄기차게 전화를 하고 몇 번을 찾아갔다가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야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다 이 산골로 시집을 왔을까


“나의 고향은 마이산 밑에 마령. 거그도 산골인데 여기보다는 나서. 시집올 때 동상 골짜기로 들어오는디 강원도 가도 이런 골짜기는 없겠더라고.”

 

할머니의 아랫목에서 시작된 인생이야기는 동상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길처럼 참으로 거칠고 깊다. 할머니는 그 고생스런 일들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그 중의 최고는 시집살이였다. 시집와서 봤더니 시부모님, 시동생들과 작은 집 식구들까지 13명이나 되는 시댁식구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고 한다.

 

작고 마른 몸으로 물 기러 다가 밥 짓고 논밭 일을 하셨다고 하니 그 고생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시댁은 유난히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예전부터 진안사람 전주사람들이 밤티재를 넘어 완주를 드나들었는데, 그 길목에 할머니의 시댁이 있어서 비단장수, 어물전 장수, 새우젓 장수 등 지나가다 들러서 밥도 먹고 가고 해가 지면 잠도 자고 갔다고 한다. 그 나그네들 밥도 다 차려 주셨다고 하니, 어찌 보면 할머니의 두부장사인생이 그때부터 시작 된 것이다. 오가다 들르는 비단장수가 고생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장사 제의도 했다고 한다.

 

“비단장수가 전주 남문거리에서 메리야스 50개를 사다 주는 거야.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지 말고 이런 거라도 들고 다니면서 팔아보라고. 그 당시 메리야스는 광목으로 만든 거라서 무거웠어. 아기 들쳐 업고 메리야스를 팔러 집집마다 돌아다니는데 남자들 있으며 못 들어가고, 개 짖으면 못 들어가고 하나도 못 팔고 그대로 짊어지고 돌아왔었네. 그때는 각시 때니까 부끄러워서 못 하것더라고. 그래서 산으로 다니면서 너물을 뜯었지. 그래도 솔찬히 많이 해서 팔았지. 고사리 끊어다 시장 나가서 팔면 꼭 돈을 주운 것 같았지.”

 

머리카락도 끊어서 팔고 숯장사도 하고 나물장사도 하다가 본격적으로 손 두부집을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등산객들이 부추겨서 시작한 두부장사일


지금은 뜸한 편이지만 예전에는 연석산 찾는 등산객들이 줄을 서서 찾아왔다고 한다.

 

“등산객들이 문 두드리면서 소주 없소 막걸리 없소 자꾸 찾았싸. 처음에는 없다고 하다가 어떤 사람이 콩이 있으면 두부를 조금 해보라고 그러네. 그래서 친정어머니가 마령서 하던 방식대로 두부를 조금씩 해서 내었지. 여태껏 여름에도 두부 한 모를 버려 보들 안했어. 남아서 내버려 보들 않고. 그렇게 팔았지. 두부를. 텔레비전 몇 번 나오니까 손님이 겁나게 많이 왔어. 거제도, 강원도에서도 오고. 강원도 원주 사람은 요즘도 가끔 와. 두부 사러.”

 

할머니랑 할아버지 두 분이 농사지은 콩으로 찬찬히 두부 팔며 순하게 함께 늙어가려 했지만 편찮으시던 할아버지는 몇해 전 먼저 떠나셨다. 허전한 자리를 큰 아드님 한유상씨(55세)가 채워주고 있다.

“이제는 아들이 나보다 두부를 잘혀.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게 있어서 안 가르쳐도 아주 잘혀.”

 

 

찾아오는 손님들 의리 때문이라도 오래 해야지


할머니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오로지 두부를 먹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다. 예전에 엄마가 해주던 거칠면서도 순한 손두부 맛이 그리워 찾아왔다고 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들은 할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쓸쓸해하고 할머니 다리 불편한 걸 보고는 직접 반찬을 퍼 나른다. 할머니가 힘들어서 장사 안한다는 소리 나올까봐 손님들이 직접 밥상을 차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단골손님들이 일부러 찾아 오더만. 내가 바깥 구경도 못하고 두부 만드니라고 고생한다고. 나 위로해준다고 와서는 평상에 앉아서 저녁 내 먹고 마시고 놀다 갔지. 몸이 힘들지만 좀 더 해야지 안겄어. 혼자 밭으로 논으로 일하고 있으며 두부 달라고 손님들이 거기까지 쫒아와. 그럼 후딱 뛰어와서 두부해서 밥 차려 주고 또 밭으로 달려가는 거 보고는 사람들이 참 할머니 겁나게 용감했는데 그려.”

 

백인자 할머니의 손두부 맛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이것저것 빠르게 생겨났다가 금새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할머니의 손두부 맛은 여전하다. 그 여전함은 순하고 고요하지만 젊은 날 험한 산을 누비며 나물을 캐고, 논밭과 부엌을 오가며 두부를 만들어 낸 삶처럼, 고고하고도 용감하다.

 

 


 

 

한백상회
주소: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531
전화: 063-244-8023
손두부 한모 5,000원 (포장은 4,000원)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묵은 사장에서 햇 사장에게 되물림된 오지게 꼬순 인생
다음글
길고 아득한 시간을 흘러온 오래된 사진관 '뽀빠이 포토' 변성수씨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