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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시장에 피어나는 여름 꽃들2015-08-17

고산시장에 피어나는 여름 꽃들

한 여름 식히는 튜브꽃, 웃음꽃, 사람꽃 

 

우리들은 길어진 해꼬리만큼 들뜨고

진짜 가을은 쉬이 오지 않는다

 

이 여름 다 가기 전에

상인들끼리 닭이나 몇마리 삶았으면

 

 

해마다 여름이면 완주의 여러 골짜기들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핀다. 계곡 근처 식당과 민박집들이 피워낸 파라솔 꽃,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노란색, 파란색의 튜브 꽃, 웃통을 벗어버린 아이들의 웃음꽃이 그 꽃들이다.

 

내 작은 가게(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협동상회 홍홍)가 자리하고 있는 고산시장에도 여름 꽃들이 피어났다. 시장 광장 가운데에는 아주 커다란 튜브수영장 꽃이 피어 있고 그 안에는 동그랗고 네모난 작은 튜브 꽃들이 떠다니고 그 속에는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꽃들이 가득하다.

 

시장 광장에 핀 커다란 여름 꽃 탓에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주변에도 많은 꽃들이 피어있다. 모처럼 방학을 맞아 고산이모에서 알바를 하는 예은씨가 눈에 띈다. 2년 전 아빠와 함께 요거트 가게를 만들어낸 씩씩한 예은씨가 여름 시즌에 특별메뉴로 내놓는 아이스요거트로 광장의 아이들을 유혹하기에 바쁘다.

 

농사와 가게일로 늘 정신없는 신원희 회장님과 베리팜 사장님의 블루베리 열매들은 무사 할까. 얼마 전 태풍으로 열매들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말이다. 약초에 관심이 많으신 힐링스토리(현대약초) 사장님은 초록색으로 잘 익은 여주와 수세미를 산지특별가격으로 가게 앞에 내놓았다. 한시도 쉬는 법이 없는 삼성상회 금순씨는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금방 쪄낸 옥수수를 비닐봉지에 담아내고, 연 날리기 좋은 칼바람이 불지 않는 여름 날씨가 야속한지 그늘에 앉아 무표정하게 다른 꽃 들을 바라보는 부잣집김치 해병대아저씨의 부채질이 한가롭다.

    

 

작년에 문을 연 뽀빠이통닭은 여름 특별메뉴로 슬러시와 닭꼬치를 내놓았고 소소와 마루의 언니들은 주말 특별메뉴로 컵라면과 핫바를 팔려고 매대를 내놓았지만 매출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수다에 더 열심이다.

 

밖에선 보이지 않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가장 많이 팔릴 게 분명한 네발요정, 아띠, 농부의 딸 사장님들이 테이크아웃 컵에 바쁘게 얼음을 담아내는 모습과, 아무리 더워도 늘 불 곁에서 일해야 하는 백옥관, 다미가, 황가네밥상, 백여사국밥 사장님들의 땀 맺힌 얼굴이 눈에 선하다.

 

 

돌이켜보면 완두콩에 내 이름을 달고 한 달에 한 번씩 글을 쓰는 특권을 누린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신문에 실린 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지만 그 글을 매달 한 번씩 빠뜨리지 않고 써야하는 것은 없는 집 제삿날 돌아오는 것처럼 나름 고역이었다. 길 가의 간판과 집들과 마주치는 한 사람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늘 메모하고 기억하고 글을 쓸 준비를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번 호의 삶의 풍경은 세 번의 실패를 맛보고 들여다본 네 번째 풍경이다. 연석산 아래 순두부 할머니는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고, 안수산 아래 고시원과 용진의 미술가 선생님의 삶의 풍경은 구경만 하고 밖으로 내놓기에는 인연이 짧은 풍경이 되고 말았다. 어려움 끝에 이번 호와 인연이 닿은 풍경이 결국 내가 몸담고 있는 고산시장이 되고 말았으니 그 풍경이 아름다운 꽃으로 보이지 않았겠는가.

 

많은 전통시장들이 그런 것처럼 고산시장이 요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라반축제, 주말장터, 상품개발, 상인교육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일들이다. 합심해서 열심히 노력해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일들이다. 갈등과 오해가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풀어가며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란다. 광장에 핀 여름 꽃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상인들끼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닭이라도 몇 마리 삶아서 같이 먹고 그랬으면 좋겠다.

하얀색 이팝나무 꽃이 지고 분홍빛 자귀나무 꽃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 여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들뜬다. 아이들은 곧 다가올 여름방학에, 청춘들은 어딘가로 떠날 여행계획에, 봄 농사를 끝낸 농부들은 한 잔의 막걸리로 사람들은 초여름의 길어진 해 꼬리만큼씩 들뜬다.

 

하지만 여름은 만만치 않은 계절. 초복 중복을 지나 말복을 바라보는 요즘의 여름날은 초여름의 그 들뜬 마음을 싹 잊게 만든다. 8월 달력은 일주일 후면 입추(立秋)라고 작은 글씨로 가을을 알려주고 있지만 진짜 가을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장마와 몇 번의 태풍이 지나고 폭염주의보와 열대야를 몇 차례 견뎌냈지만 진짜 여름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다시 한 번 힘차게 여름을 나보시기 바란다.

 

/글.사진=장미경 /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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