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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빵은 그 자리에 있었네] 화산 종리삼거리 마지막 점빵 용수상회2015-07-13

[점빵은 그 자리에 있었네] 화산 종리삼거리 마지막 점빵 용수상회

막걸리 심부름 하던 이들은 이젠 술잔을 돌리네

 

화산면 종리삼거리의 마지막 점빵, 용수상회 

 

세월의 풍광을 조용히 관조하듯, 시간이 멈춘 듯한 화산면 종리삼거리. 이곳에는 딱 하나, 삼거리의 마지막 점빵이 남아있다. 용수마을에 있다 해서 이름이 용수상회’.

 

장맛비가 지면을 세차게 때리던 어느 금요일 오후 6시께,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 둘 용수상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화산면에 사는 동네 선후배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꼭 이곳에서 만난다는 이들.

여기가 우리 주막집이지. 여그 주인장 아주매가 얼마나 인심이 좋은지, 돈도 따로 안 받고 우리가 오면 맛난 거 차려주고 그려.”

 

모두 여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친구들이다. 어린 시절 용수상회에서 막걸리 심부름을 했었고, 돈을 모아 군것질을 했었더랬다.

임석태(67)씨의 기억 속 용수상회 역사는 50여 년 정도.

여그 용수상회가 생긴 지 한 50년은 넘었을 거여. 원래 이 근처에 점빵이 3개 정도 있었는데 한 20~30년 전에 나머지는 다 없어졌어. 요새 누가 점빵을 가간?”

그러자 주인장 김오순(59)씨가 거든다. 김 씨가 용수상회의 주인장이 된 지 올해로 딱 20년째다.

참 세월 빨라. 여길 20년 전 언제 시작했는지 날짜도 기억해. 95710일 여기 가게를 내가 하기 시작했어. 나도 잘은 모르는데 여가 옛날부터 있었대. 100년 정도는 됐지 않겠어?”

 

20여 년 전만 해도 종리삼거리는 큰 번화가였다. 점빵만 3, 약방, 이발소, 물레방앗간, 풀빵집, 자전거 포 등이 모여 있는 번잡한 삼거리. 고산면과 경천면, 화산면 3개 면의 중심이 되는 중앙삼거리였기 때문이다.

여그가 위로 가면 대전, 왼쪽으로 가면 논산, 아래로 가면 전주로 통하는 길목이여. 화산면으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지. 그땐 여길 오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

처음부터 이곳이 용수상회라고 불린 것은 아니다. 그 옛날엔 학고방, 점빵으로 불렀지만 언젠가부터 용수상회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정립(61)씨는 우리 국민학교 다닐 적엔 학고방이라 불렀지. 지금이야 번듯하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지 원래는 자갈밭이었어. 이 앞에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었거든. 밑동이 성인 남자 2명만 했을 거여. 근데 그것도 길 내면서 없어졌지라며 잠시 추억에 젖었다.

 

점빵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 얼큰하게 술 한 잔씩이 들어가자 다들 하나 둘씩 아껴놓았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나 국민학교 땐 점빵에 와서 눈깔사탕 하나 사먹는 것이 젤로 좋았어. 돈 모아서 비과(유과)도 사먹었었는데.”

10원 짜리 하나면 족했던, 돌처럼 단단한 독다마를 사서 며칠을 까먹었던 기억, 아버지 심부름으로 점빵에서 막걸리를 사가지고 가면서 얼큰하게 취한 어린 시절도 떠오른다.

나는 요 윗마을에 살았거든. 납떼기 병(주전자) 하나 들고 짤랑짤랑막걸리 사러 자주 왔었지. 근데 내가 그거 들고 가면서 반절은 다 먹고 갔었어. 아버지한테 디지게 혼났지.”

, 여기 점방 앞이 쌈터였어. ‘쌈질도 다 여기서 했지. 사람들이 다 이 삼거리로 모였다니께.”

 

한바탕 어린 시절 추억담에, 이제는 이웃 이야기서 부터 양파값, 조합장 이야기 등 쉴 틈 없이 말들이 오간다.

여기 오면 친구, 동생, 형님을 다 만날 수 있어. 서로 농사 정보를 공유하고 농산물 가격이며 시장 동향이며 다 여서 이야기를 해. 세상 돌아가는 걸 알려면 여길 와야 된당게.”

 

이제는 을 보러 자가용을 끌고 시내나 대형마트로 가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용수상회의 쓸모는 단단하다.

우리도 뭣 좀 사려면 마트가지. 이런 데는 음료수나 급하게 필요한 물건 사러 와. 그것보담서도 친구들 만날 때 많이 오지. 그래도 여 얼매나 좋아. 용수상회가 여기 자리를 지켜주니. 여기는 없어지지 말고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

사라지지 말아 달라는 오랜 이웃들의 한마디 소망. 종리삼거리의 마지막 점빵이 질머진 무거운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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