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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라리중에 오리지날 농사 날라리 2015-07-10

나는 날라리중에 오리지날 농사 날라리

 

화산 금평마을의 김선희씨

 

영화를 좋아하니 뜬금없이 영화이야기로 시작을 해야겠다. 얼마 전에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일본의 간토 지방과 훗카이도 사이, 동북지역의 코모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젊은 아가씨 농사꾼의 이야기다. 완주에서 지내며 알게 된 다양한 농사꾼들이 생각나는 영화였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주로 귀농해서 사는 소농들이다. 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사는 모습들은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많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삶.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는 다르다. 마냥 게으를 수 없는 농촌의 생활. 토착민들과의 갈등, 때론 화해도 있고 미움도 생기는 어수선한 날들. 결국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것이 좋은 방향이지만 이를 깨우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날을 정신수양하며 보내야 할까. 영화의 기억에 남는 대사 중 하나이다.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것. 코모리(일본의 시골마을)에 산다는 것은 그런 일상을 반복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의 삶은 원이 아니라 나선일지 모른다.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맴도는 것 같지만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부림치고 있다고

 

스스로를 날라리 농부라고 소개하는 김선희 씨(60). 그녀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소농친구들 중 한 명. 일주일에 두 번은 고산의 카페에 나와 그 동안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수다쟁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유난히 낭랑한 목소리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눈을 맞추고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외치는 그녀. 그녀의 텃밭이 궁금해졌다. 과연 날라리 농부가 사는 방식은 어떨까.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여장부

2012년부터 봄. 완주 경천으로 이주, 그해 겨울부터 화산 금평마을에서 살고 있는 김선희씨. 완주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로드무비처럼 파란만장하다.

 

2011년도에 양재동 아트센터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데 그때 생협 한살림 식생활 강사로 수업하러 갔었지. 행사장 구경을 하는데 완주 귀농귀촌 부스가 있더라고. 그때까지 완주가 어디있는지도 몰랐어. 집으로 돌아와서 완주에 대해 컴퓨터로 찾아봤지.”

 

김선희씨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강남에서 피부샵을 오랫동안 운영했다. 돈 꽤나 있다는 사모님들이 주된 손님이었다. 잘 되던 피부샵도 놓아두고 홍천으로 향했다. 지인이 홍천에 펜션을 오픈하는데 매니저 일을 도맡아 하게 된 것이다. 일 년 정도 지나니 펜션도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났는지 무주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지프차 한 대로 무주까지 가서 펜션 오픈 준비 일을 하다가 완주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차 뒤에 수저, 젓가락. 이불, 밥통 싣고 떠났다고 한다. 딸과 남편이 있는 가정주부가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을 테다.

 

난 원래 여군이 되고 싶었어. 남성 기질이 있어. 그러면서 내면에는 아기자기 한 면도 있긴 하지. 내가 다른 여자랑 좀 달라. 촉이 오면 꼭 그곳에 가서 확인사살을 해야 해.”

 

 

 

원도 홍천에서 만난 농사멘토

촉이 발동해서 시작된 홍천으로의 여정. 그곳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김선희씨의 농사멘토 이오남 할머니. 일하던 곳 근처 마을에서 감자농사를 짓던 할머니였다. 일이 끝난 후에도 할머니 댁에 몇 달 동안 머물며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일을 배웠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부정이라곤 없었어. 무조건 긍정이야. 누가 오면 그렇게 퍼주길 좋아해. 서울에 살 적에는 내 것을 누군가에게 주면 또 새것을 사야하니까 돈이 나가는 거잖아. 금전부터 생각하는 거지. 근데 그 할머니는 평생 농사를 짓다보니까 땅에서 나는 것들은 풍족한거야. 자기 먹고도 남으니까 그렇게 남을 퍼줘.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참 풍족해 보이더라고. 편안해 보이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했지. 도시 속에서는 문만 열면 다 돈인데 시골에서는 문 열고 나가면 다 먹을 것 천지야.. 모정 같은데 그냥 앉아 있어도 되고 이쪽 밭을 가면 풍경이 다르고 저쪽 밭에 가면 또 풍경이 다르고. 자연이 나에게 주는 게 많아. 근데 난 자연한테 줄게 없으니까 겸허해 지는 거지.”

 

 

 

날라리 농부여도 농사는 진지하게

김선희씨도 여느 농부들처럼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시골생활 4년차 되니까 지어먹을 밭도 생겼다. 생강, 땅콩, 도라지, 더덕, 감자, 참깨, 들깨, 고추, 수박, 참외, 초석잠, 당귀, 방풍, 우엉, 어성초, 하수오, 수세미, 토마토, 오이, 가지, 상추 등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듯 헌데, 그녀의 혈기는 젊은이 못지않다. 농사일 외에도 생협 한 살림 식생활 강사로 활동하며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매주 화요일엔 완주군 중앙도서관에서 북스타트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농사일로 먹고 사는 토착민들에 비하면 자신은 날라리 중에 오리지널 날라리라며 웃어넘기지만 요즘은 농사일에 제법 진지해진다고 한다.

 

몰랐을 때는 재미있었지. 뿌린 씨에서 싹 나고 그런 것 자체가 신기하기만 했지. 농사를 알고 나니까 일이 버겁고 힘든 거야. 때 되면 뭐 해줘야 하나. 순 쳐줘야지. 줄 매줘야지.. 근데 계속 해보면 재밌어. 농사가 꼭 애 낳고 키우는 거랑 똑같아. 겨울에는 임신기간이야. 삼월부터 밭 갈고 이 밭 저 밭 돌아다니면서 낳을 자리를 닦아 놓는 거지. 지금 여름철은 출산 대비해서 돌보는 과정이야. 가을에 수확 하는 게 아이 낳는 거지. 근데 난 내 자식도 낳아 놓고 막 키웠거든. 그래서 내가 씨는 많이 뿌리는데 관리가 서툴러.”

 

자신을 서툰 날라리 농부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그녀의 밭엔 다양한 작물들이 정갈하게 자라고 있었다. 완주의 곳곳에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해서 사는 농부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고 어깨 너머 구경만 하던 내 자신에게도 농사일에 하루 빨리 입문해보라고 닦달해본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고단한 농사일을 끝내고 해가 지면 그럭저럭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깜깜한 여름 밤. 날라리 농부든 진지한 농부든 이주민이든 토착민이든 되는 대로 모여서 모깃불 피워놓고 한쪽에서는 감자나 옥수수를 삶고 흰 광목천 걸어서 웃기는 영화나 함께 봤으면 좋겠다.

 

 

 


 

글.사진=장미경 /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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