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점빵은 그 자리에 있었네]추억 한 봉지, 기다림 두 봉지...2015-07-07

[점빵은 그 자리에 있었네]추억 한 봉지, 기다림 두 봉지...

농촌의 점빵은 버스가 들어오는 종점이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 등 목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소양 송광사 앞에는 지금 세 곳의 점빵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추억 한 봉지, 기다림 두 봉지...그곳에선 이야기를 판다


눈 깜빡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 시내로 나가고, 대형마트를 찾는다. 그러나 여전히 시골의 길목과 버스 종점 자리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빵들이 있다. 이들은 어찌보면 경쟁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든든한, 세월의 광속을 함께 견뎌온 동반자이다. 

    

# 동상면의 첫 번째 점빵 '동신상회' 

고산에서 동상면 소재지로 가는 방향, 동상초등학교 너머에서 동상면의 첫 번째 점빵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장(84)은 동네 친구를 불러다가 늦은 점심을 막 마친 참이었다.

두터운 검은 먼지가 내린 일회용 카메라, 색 바랜 화투, 쓸모 모를 낚시용품 등이 막 점심을 마친 주인 할매와 함께 새로운 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긴 나 혼자 살어.”

아들이 하던 가게를 이어 수년 째 늙은 어매가 동신상회의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판매용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라는 물건들과 함께.

여기는 오가는 사람들이 거즌 없어. 과자나 살 게 있어야는데 그런 게 없잖어. 봐바. 뭐 살게 있간? 그냥 예전에 아들이 사놨던 것들만 몇 개 있어.”

할매의 침대가 놓인 방에서 바깥 길가가 훤히 보인다. 오가는 사람도 없다지만, 인기척이 들리면 언제라도 뛰쳐나올 수 있게. 담배와 아이스크림 정도가 동진상회에서 가장 잘, 그리고 유일하게 팔리는 물건들이다.

아이스크림 잡쉈지? 내한테 5,000원 줬응게 내가 얼마 냉겨줘야혀?”

객이 계산을 하고 건네받는 양심의 잔돈. 동상면의 첫 번째 점빵에는 객의 셈과 양심을 필요로 하는 늙은 어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 우체부를 기다리는 밤티상회

여름에 많은 피서객들이 몰리는 운일암반일암으로 가는 길목에는 점빵보다 슈퍼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한 가게들이 몇 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외지인들이 찾을만한 물건들을 모두 구비해놨다는 듯 잡화일절이라는 문구를 크게 걸고 지나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 곳을 지나 한참을 더 들어갔다. 황조리 마을을 지나 밤티슈퍼라는 수줍은 이름을 내건 허름한 가게 앞. 1인용 갈색 소파에 앉아 길목을 응시하는 한 할매가 있었다. 내리는 어설픈 비를 보는지, 사람을 기다리는 건지 모를 응시.

슈퍼라는 글자가 드문드문 지워진 낡은 간판을 지나 인사를 건넨다.

아이고, 어디서 예쁜 사람이 왔네.”

처음 보는 객을 어여쁘게 반겨주시는 80살의 송안순 할머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은지 45밖에안됐다며 너스레를 떤다.

전주 살다가 45년 정도 전에 여기로 들어왔어.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동네 점빵은 이거 딱 하나여.”

간만에 들려온 객 목소리가 반가운지 점빵 앞집에 사는 나봉국(80) 할아버지까지 얼굴을 비춘다.

내가 여서 나고 자란 토백이여. 이 점빵에도 소싯적에 많이 갔지. 그때는 친구들이랑 막걸리 먹고 재미지게 놀았어. 지금이야 그 친구들 다 없어져서 심심하지.”

하루 5대의 버스가 지나가는 동상면의 끝자락 밤티마을. 밤티상회는 그 옛날엔 남자 농구화, 빨랫비누, 막걸리, 국수, 성냥통 등 안 파는 게 없던 만물가게였다. 장사꾼들이 맡겨놓은 큼지막한 보따리를 맡아주는 일도 매일, 잠을 청하는 객들에게 빈방을 내주는 것도 일상이었고, 라면에 우거지국에 밥을 차려주는 것도 늘상. 안하는 게 없었고, 못하는 게 없었다.

라면이 귀했던 시절이여. 남자들이 쇠고기가 먹고 싶다면 삼양라면 끓여서 내줬지. 그게 쇠고기 국물이니께. 그땐 전기가 없었으니까 성냥통이 제일 잘 팔렸어. 시방 그땐 돈 되는 거라면 다 팔았어. 요새는? 요새는 쇠주가 젤 잘 팔리는 거 같아.”

지금은 송 할머니가 직접 타주는 종이컵 믹스커피와 몇 가지 간식거리, 담배 등을 팔고 있다.

내가 기가 맥히게 커피를 잘 타. 한 잔에 500원인데 실은 돈도 잘 안 받고 줘버려. 지나가는 사람이 목 마르다 치면 기냥 우리집 물 줘버리지, 팔진 않어. 사람이 돈만 보지 말고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해. 목마르면 잡수고 가시오, 하는 게 베푸는 거지 별거 있나. 그게 이웃이야.”

여태껏 직접 사람이 마을을 찾아 세금을 받아갔었는데, 오늘부로 자동납부 변경이 됐단다. 매번 마주하던 반가운 얼굴이 하나 없어졌다.

뭐 별 수 있나. 세상이 변해가는데. 괜찮아. 그러고 저러고 사는거야. 그래도 오는 사람은 계속 와. 지금도 시방 우체부를 기다리고 있는거여. 3시쯤 온다던데, 아즉 안오네. 언젠가 오겠지. 자네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하면 기냥 가지 말고 한번 들려. 커피캔이라도 하나 먹고 가.”

 

 

동상면 밤티마을에 있는 밤티상회.

  

# 송광사 앞 사라진 종점, 그 곳에 점빵은 여전히 있네.

시골 점빵들을 살펴보면 공통된 점이 하나 있다. 이들이 위치한 곳이 사람 왕래가 많았던 길목과 버스 종점 인근이라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고 지나가는 곳. 점빵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곳에 말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수년 전엔 버스 종점 자리였던 소양면 송광사 인근에도 점빵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한마음 슈퍼, 대광슈퍼, 한마당 슈퍼가 그것. 

대광슈퍼에는 40년도 더 된 파란 ‘돈통’이 하나 있다. 이 돈통이 나름 굴곡진 사연을 담고 있다.

“나 밥 먹고 있을 적에 마을 애들이 이 돈통을 훔쳐갔었어. 돈은 다 빼가고 돈통만 어디 논인가에 버려놨더라고. 내가 그걸 다시 찾아와서 퐁퐁으로 다시 씻어서 쓰고 있는거여.”

왜 새 걸 사지 않으시고, 라는 질문에

“뭐더러 사. 이게 좋아” 하고 말을 던지는 주인장(78).

그 옛날엔 이 마을 앞이 송광사 행 838번이 다니던 시내버스 종점 자리였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종점이 없어진지 대략 10년 정도 된 것 같단다.

“옛날엔 온통 자갈밭이었어. 종점이 이젠 없어졌지 시방. 옛날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릉부릉하고 다녔는데 요샌 그 소리가 안 나니 조용하긴 혀.”

종점행 버스는 이제 오지 않지만 이들 점빵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바쁘게 변화하는 세월에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

“여그 없으면 이제 심심해서 안뎌. 점빵이 사랑방이라니께. 심심하면 다 여기로 나오거든. 내 자식만큼 여 점빵도 나이를 많이 먹었어.”


어찌 보면 시골 점빵에 ‘이름’이나 ‘간판’이 필요 없는 이유가 있다. 그때 그때마다 쓸모가 생겨나고, 이름이 생겨나기에. 없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는 공간이기에. 이름이 없어도 ‘거그’하면 ‘척’ 하니 알아듣고, ‘거시기’하면 ‘탁’하니 알아채는 신박함.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 어디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점빵’이라 간명하게 부르는 이유가.

 

송광사 앞 대광슈퍼 내부(위), 40여 년 된 대광슈퍼 돈동(아래).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논에서 만난 사람들] 고산 귀농인들의 스승 송광섭씨
다음글
[점빵은 그 자리에 있었네]그 흔한 간판 하나없이 견딘 반백년 세월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