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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인심 후한 산골주조장 동상주조장2015-06-27

술 인심 후한 산골주조장 동상주조장

그 집 술 항아리엔 마음이 익고 세월도 익어가네

 

술 인심 후한 산골주조장 동상주조장

 

한 주전자에 20원씩 하던 그 때
막걸리 심부름 기억 선명한데
지금 내가 주조장을 하고 있어

돈은 못벌어도 좋아
일할 공간이 있으니 맘이 좋더라고
마음 비우니 사업도 불어나고

 

마실 거라고는 냉수, 식혜, 그리고 막걸리가 전부였던 시절. 새벽부터 일어나 밭일 논일 하고 새참으로 마시던 막걸리. 그것은 마른 목을 축이는 달디 단 물이고, 허한 배를 채우는 밥이고, 고단한 노동을 잠시 잊게 하는 신비한 약이었다. 그 옛날 완주에는 면마다 주조장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 새로 생긴 주조장들도 있지만 예전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주조장은 상관과 동상 두 곳 뿐이다. 진안, 소양, 동상을 잇는 삼거리. 동상초등학교 옆 작은 주조장. 동상 주조장을 찾아가 보았다.

 

 

욕심을 버린 그 옛날의 작고 소소한 주조장

 

거리의 크고 작은 가게들은 서로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한 색깔이나 조명을 내뿜기 마련이다. 그런데 동상주조장의 간판은 60년 전에 만들었던 작은 나무 현판이 전부다. 신경 쓰지 않고 보면 휙 지나치기 쉽다. 동상주조장 주인장 김호성(60세)씨의 배짱장사일까.

 

“배짱이 아니라, 욕심이 없는 거지. 큰돈은 못 벌어도 마음을 비우고 하니까 그럭저럭 재미있는 거야. 이 주조장이 나랑 나이가 똑같네. 내가 올해로 60살인데 이 주조장이 1955년에 면허가 생겼더라고.”

 

동상 신월리에서 나고 자라며 그 동네의 주조장과 함께 태어나고 현재는 주조장의 주인이 되어 함께 늙어가는 김호성씨의 삶이 궁금하다.

 

“원래는 저수지 물 밑에 우리 마을이랑 주조장이 다 있었지. 1964년 물들어 차서 수물 되기 전까지는 말이야. 수몰 전 마을 모습과 주조장 앞에 사납게 짖던 까만 개, 막걸리 심부름하던 모습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해. 아버지가 막걸리를 참 좋아하셨지. 그때 주전자 주면서 막걸리 좀 받아와라 그러면서 20원씩 줬지. 그때는 주조장 할 거라는 상상도 못했어. 어떻게 살다보니까. 이렇게 주조장을 하게 되었네.”

 

김호성씨가 주조장을 하게 된 것은 아내 신영희씨(51세)의 영향이 크다.

 

 

경상도 아가씨 친구 따라 동상으로 시집오다

 

신영희씨의 고향은 안동.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으며 심지어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산골에?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걸까.

 

“내 친구 백영희 때문이지. 대구에서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인데 그 친구 이모가 이 주조장을 하고 있었어. 그 친구도 이모 곁에서 주조장 일을 도우며 이 동네 살았었고. 친구 만나러 동상에 온 거지. 그때 처음 이곳으로 올 때 완행버스를 타고 왔는데 하루에 3번만 다니는 버스였어. 그걸 타고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야. 전혀 시골 삶을 모르고 순진하니까 여기 와서 산거지. 놀러왔다가 동네 청년 소개해준다고 맞선을 봤는데 그 청년하고 결혼해서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여지껏 살고 있네.”

 

친구 백영희씨의 소개로 눈빛 선량한 남편 만나 산골에서 살게 되었고 친구가 하던 주조장을 인수받아 1990년 12월 20일부터 지금까지 동상주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창 장사가 잘 되던 때도 있었고 대형업체에 밀려 그만둘까도 했지만 김호성씨는 부부가 욕심이 없고 마음이 맞으니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거라고 한다.

 

“주조장하기 전에 내 인생 최대 밑바닥이었지. 패물 팔아서 표고버섯재배 시작했다가 빚을 얻어서 이 주조장을 샀지. 내가 어디 노가다 일 다니는 것 보다 낫겠다 생각해서 인수 해버렸지. 기술자가 한 4개월 주조 기술 알려주고 그 뒤로 쭉 우리 부부가 했지. 돈은 못 벌어도 좋아. 내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까 마음이 좋더라고. 마음을 비우고 하니까 사업도 불어나고 잘 되었지.”

 

 

목마른 나그네에게 베푼 술 한사발이 큰 힘이 되어 돌아와

 

마누라 손이 커서 술독에 술이 남을 일이 없다며 김호성씨는 농담을 한다. 염치없었는지 크게 웃던 신영희씨는 그 간의 술 퍼준 역사를 읊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줘 하여튼 엄청 퍼줬어. 나 때문에 살림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서 다 퍼줘. 우리 시부모님이 장난으로 그랬지. 쟈가 손이 커서 큰일이라고. 내가 만 명이상 술대접 했을 걸. 왜냐하면 우리 주조장을 찾아 온 사람들이 참 감사한 거야. 여기가 차 한 대도 없고 사람도 하나 안 지나갈 때가 있어. 고요하지. 근데 사람이 찾아오면 그냥 신기한 거야. 등산하고 내려온 사람들이 목말라 죽겠으니까 막걸리 좀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거든. 그럼 돈을 안 받고 그냥 줘. 우리 주조장 찾아온 사람이니까 정말 반갑거든. 그래서 아마 지금까지 이렇게 주조장을 이끌어 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 힘들 때문에. 지난 여름에는 따끈한 백설기를 놓고 간 사람도 있었어. 얻어 마신 술값 갚는다고. 그때 술을 너무 맛나게 마셨다고 하면서. 그 뒤로 자주 오셔. 지나던 길에 화장품, 빵, 아이스크림, 딸기, 이런 것들을 놓고 간다니까.”

 

하루에 한 병이 나가더라도 기왕 지금까지 한 주조장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소박한 바람이다. 아들딸 시집장가 보내놓으니 마음도 한결 가뿐해 졌는데 좋으면서도 근심스런 사건이 생겼다고 한다. 올해 초 결혼한 아들며느리가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다고 덜컥 고향으로 내려와 버린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시로 돌아가라고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아들이 ‘친구고 뭐고 다 버리고 왔는데 엄마아빠는 왜 내 진심을 몰라 주냐’며 화를 낸 이후로는 마음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내가 산골로 시집와서 힘들었으니까. 재차 확인하고 물어봐, 참지 말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내 아픈 건 다시 주고 싶지 않으니까. 아직은 아들며느리가 좀 어려... 아이 낳고 나이 좀 먹으면 모르지 주조장을 물려받으려나...”

2대째 대물림하는 산골주조장이라니. 아들내외가 물려받아 운영을 할지 모를 일이지만 김칫국 마시며 상상만 해봐도 참 멋있는 일이다. 소박한 옛날 주조장. 동상주조장 술 항아리에 술 마를 일 없기를 바란다.

 

글.사진=장미경 /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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