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논에서 만난 사람들] 고산들녘 모내기 풍경2015-06-07

[논에서 만난 사람들] 고산들녘 모내기 풍경

고산 남봉마을 유정씨가 이앙기를 몰고 모내기를 하고 있다.

 

땀방울로 완성한 초록 모자이크

 

고산들녘 모내기 풍경

 

6월 4일 오전 7시 봉동 율소리를 지나 고산 어우리 길옆 들녘. 논 한 모퉁이에 모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밤새 모 위에 내려 앉은 이슬이 제법 선명하다. 유정섭(66)씨 부부가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날 유씨는 부인과 함께 새벽 5시부터 집에서 나와 9마지기(1마지기 약 200평)의 모내기를 벌써 끝냈다.

 

“날이 뜨거워서 아침에 빨리 끝내려고 나왔지. 어제 일기예보에는 오늘 낮에도 30도를 넘을 거라고 하는데 들에서 일하면 힘들지.” 유씨의 이앙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오와 열을 맞춘 모들이 반듯하게 심어져 있었다. 이앙기 옆에 갈귀는 다음 진행방향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유씨의 부인은 이앙기가 모를 빼놓을까 쇠스랑으로 논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내기 철에는 고양이 손을 빌릴 정도로 바쁘다는 말이 있는데 진짜 요즘 같아서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것 같아요.” 모내기 뒤 곧바로 양파와 마늘을 캐내고 2모작 모심기를 준비해야 하니 말그대로 손 발이 모자랄 판이다.

 

“저기 새참 온다. 퍼뜩 숭구고(심고) 새참 묵자. 어이~”

 

 

고산면 남봉 신기마을에도 막바지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 쓴 이현식(61)씨는 이앙기에 모판을 날라 주느라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한다. 1200평 논에서 쓰이는 모판은 대략 20여개 정도. 6㎏가 넘는 모판을 들어 이앙기에 올려주는 일이 만만치 않다. 동네에 1대 밖에 없다는 6교식 이앙기는 1번 가면 6줄씩 모가 심어진다. 왕복하면 12줄, 1200평 논의 모내기가 1시간 반이면 끝난다.

 

“모를 심다가 이앙기가 고장이 나든가 아님 진흙 속에 기계가 빠져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여간 낭패가 아니다. 한창 일할 시간에 기계를 고치러 시내까지 가야한다. 바로 고치면 다행이지만 어떤 땐 이삼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애간장이 다 녹는다.”

 

이씨는 이앙기가 모를 심는 동안에도 할 일이 많다. 다 쓴 모판을 깨끗이 개울물에 씻어 경운기에 차곡차곡 쌓아야 하고, 올려줘야 할 모판에는 이앙기 판에 잘 미끄러지게 물도 뿌려놔야 한다. 이렇게 정성들여 모를 심고, 물관리 하고, 한여름에 피사리하면 가을에는 일용할 양식을 선물한다. 이 논에도 80㎏들이 25가마 정도가 나온단다.

 

“모를 심어놓고 논을 바라보면, 내가심은 모가 잘 자라서 가을에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다행히도 모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벼가 되고, 벼는 다시 나락이 되어 창고를 가득가득 채워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한낮의 뜨거운 햇빛이 좀 사그라질 오후 4시. 고산면 원산마을 골짜기 논에선 머리가 백발인 구자옥(81) 할아버지가 맨발로 ‘뜬모(모때우기)’를 하고 있었다. 기계가 지나간 후 제대로 심어져 있지 않거나 기계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손으로 모를 다시 심는 것이다. 사실 이 작업이 어렵다. 기계는 한 시간이면 두어 마지기 금방 심고 나가지만 뜬모는 며칠 동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바닥에서 한 걸음은 길바닥 100걸음 같햐” 거머리가 물 것도 같지만 할아버지는 장화를 신으면 진흙에 걷기 힘들다며 맨발을 고집했다. 할아버지의 논은 농업용 수로가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말 그래도 빗물에 의지해야 하는 천수답(天水畓)인 다랑논이다. 파이프를 3번이나 연결해 양수기로 퍼 올려야 한다.

 

“예전에는 모내기를 하기 위해 논에다 물을 대는 일이 큰일이었다. 기계로 모를 심을 때가 아니어서 모내기 시기가 몰려 있었다. 봄 가뭄이라도 들면 모내기 때맞추어 서로 물을 대려고 하기 때문에 종종 싸움이 일기도 했다.”

 

논 한쪽에는 3단 줄이 쳐져 있었다. 멧돼지 퇴치기다. 멧돼지떼는 모내기를 끝낸 논에 들어가 어린 모를 마구 짓밟고 다녀 벼농사에도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가을철 수확기에 논이나 고구마밭을 엉망으로 만들다가 요즘은 봄철 못자리까지 파헤치고 있어 골치다. 천적이 없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보호만 하다 보니 개체수가 너무 늘어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종일 모내기로 분주했던 들녘은 모자이크를 채워가듯 초록색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서쪽으로 해가 기운 뒤 한 참이 지나서야 농부들의 긴 하루가 끝이 났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책, 책이 좋아라] 책마을 기획한 박대헌 완주책박물관장
다음글
[논에서 만난 사람들] 삼우초 아이들 손 모내기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