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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같은 타박도 사랑이라... 72년 곰삭은 삶2015-05-03

잔소리같은 타박도 사랑이라... 72년 곰삭은 삶

잔소리같은 타박도 사랑이라... 72년 곰삭은 삶

 

화산 정자마을 최순관-신현녀 부부

 

음력 12월 24일에 스무살 화산 총각과 열일곱 여산 처녀가 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72년이 지났다. 신현녀 할머니는 인터뷰하러 사람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욕실에서 꽃단장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머리감는 사이 방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사라지셨다. 집 이곳저곳 찾아봐도 할아버지는 안 계셨다. 손전화도 없고 어떻게 찾을까, 다음에 다시 와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태연하게 머리를 빗어 넘기던 할머니.

 

“씨레기(쓰레기) 태우러 나갔을 거여.”

 

할머니는 보행기에 의지해 할아버지가 있다고 확신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셨다. 동네를 벗어나 논밭으로 가까워지니 무언가를 태우는 연기가 먼저 보인다. 그곳에 할아버지가 계셨다. 72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전화로 찾지 않아도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상대를 찾아낼 수 있는 것. 묵묵히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노부부의 삶이 궁금하다.

 

화산 정자마을 고샅길, 봄날의 고양이들처럼 순한 햇빛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각자 자전거와 보행기에 의지해 몸을 움직이지만 실상 이들 부부의 든든한 버팀목은 묵묵히 곁을 지켜온 서로였을 것이다.

 

잔소리들을 때가 좋을 때여

 

수줍던 처녀총각이 만나 7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최순관 할아버지는 92세, 신현녀 할머니는 89세가 되었다. 그 세월 안에는 전쟁이 있었고 배고픔이 있었고 혹독한 노동이 있었다. 그 세월을 무던히도 살아낸 노부부에게는 삼남사녀의 자녀가 있고 그 자녀들이 아기를 낳고 그 아기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아기를 낳았다. 72년이다. 할아버지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우리 둘이 내외간에 무학자끼리 만나 근근이 살아남아서 아들딸이 잘 자라고 후손 생겨난 거 보면 과히 잘 못 되진 않은 거지. 중간은 가지.”

 

최순관 할아버지는 너무 오래 산 것이 죄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혼자 힘으로 걸어 다니는 것이 힘에 부치는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의지해 걷는 게 편하다고 하신다.

 

“저 자전거가 굉장히 좋아. 저것이 평지에는 드문드문 한번 씩만 비벼도 잘 나가고 오르막길 갈 때는 몸뚱이를 의지하지, 지팡이처럼. 썩 좋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소재지 갈라면 할멈을 자전거 뒤에 때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힘들어서 못혀.”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옆에 두고 장난 섞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할멈이 잔소리가 심혀. 옛날에는 꼼짝 못했는데 말이야. 엊저녁에는 나가서 요양원에서 살까 했다니께…. 하도 할머니가 잔소리를 했싸니께….”

 

할머니가 빽 소리를 지르신다.

 

“어디 가면 누가 잘 해주가니! 나나 되니까 수발들지. 그냥 말만해도 쏜다고 뭐라고 했싸!”

 

다시 피식 웃는 할아버지.

 

“그래도 큰 복이야. 할머니랑 지금껏 같이 사는 것이. 할멈이랑 72년째 사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켰어. 내가 잘못해가지고 고생시켰지. 한때 돈을 많이 벌었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돈 빌려주다 보니까 힘들었지…. 내가 피부가 좋다고?(웃음) 삼시세끼 좋은 거 얻어먹어서 그렇지. 할멈은 새벽 4시면 일어나서 밥부터 혀. 밥하고 빨래하고 다해. 아직까지도. 세탁기가 빨아도 그걸 또 물에 행구는 사람이여, 이 사람이.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여. 할멈이 노인대학 대학생이여. 우습게보면 안되야.”

 

할아버지는 은근히 할머니 자랑을 하고 할머니는 이를 말리지 않으신다.

 

 

아픈 아내 위해 집터를 옮기다

 

신현녀 할머니는 서른 즈음에 갑자기 몸이 아파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그때는 병원, 약국 같은 것이 있었간디. 그냥 맥없이 배도 아프고 안 아픈 디가 없었어.  빽쟁이 뿌리(질경이 뿌리) 캐다가 빻아서 즙내서 먹고 쑥도 빻아서 먹고 그랬지.”

 

화산 창곡마을에서 쭉 살았던 할아버지는 결혼 15년 후 이사를 감행하기로 한다.

 

“창곡부락이 고향이지. 거기서 살다가 마누라가 하도 아팠싸니까. 근데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 집터를 바꾸면 더러 낫는 사람들이 있다네. 그래서 지금 이 집터로 온 거지. 시들푸들 아프던 사람이 이사 오니까 몸이 거짓말처럼 낫더라고.”

 

집터 덕분이었을까. 적잖은 연세이심에도 두 분 모두 건강하시다. 보행기에 의지해 걷는 그들이지만 오랜 세월 몸이 기억하는 일들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집 안 소일거리를 하며 하루를 보내신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살림솜씨를 칭찬한 것이 말뿐은 아니었다. 앞마당에는 잡초하나 없고 뒤꼍의 장독대는 정갈하게 윤이 난다.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단단해 보였다. 마당 한 쪽에는 쉽게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것들이 있다. 큰 며느리가 혼수로 장만해왔던 이미 낡은 자개장롱 안에는 그들 삶의 무기였던 호미와 단출한 농기구들이 걸려 있었다.

 

든든한 울타리 같은 내 새끼들

 

늘 궁금했다.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사다준 것들을 안 쓰고 장롱 속에 넣어 두는지. 사는 동안 편하게 쓰다가 가시면 좋을 것을.

 

“아끼느라고 그러지. 아까워서 못써. 그 동안 자식들이 가져다 준 것이 장롱에 꽉꽉 찼어. 이불. 두루마리 바지, 저고리…. 맨 그릇 천지여. 우리 손자며느리가 둘 인디 오면 니들 필요한 거 있으면 살림살이 가져가라 그러지. 살림살이 늘어 나는 게 귀찮아. 이제는 필요없어. 송장되면 누가 가져가려고 하겄어. 그러니까 살았을 때 다 내쏴버리는 거지.”

 

할아버지는 시집장가 안간 모든 젊은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옛날에는 자식 없이 늙으면 굉장히 괄시했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여. 자식이 속 썩이기는 해도 늙어서는 의지가 되는 거야. 자식은 말이여, 사람 집짓고 사는데 울타리 같은 존재 단 말이여.”

 

글.사진=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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