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장미경의 삶의풍경

꿀벌같은 남봉리 나무농부 임형호씨2015-04-05

꿀벌같은 남봉리 나무농부 임형호씨

나무나 사람이나 생명가진 건 모두 소중하다오

 

꿀벌같은 남봉리 나무농부 임형호씨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걷는 계절이 왔다.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오랜만에 보는 고운 꽃들이다. 꿀벌들은 부지런히 꽃을 오가며 열매를 맺게 한다. 이런 벌들이 사라져가니 온 세상이 걱정근심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벌들의 ‘윙윙’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인간 세상에도 꿀벌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아마 농부들이 그런 존재 아닐까.

 

자연에 순응하며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오래 전부터 터득해온 지혜로 농작물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들. 무리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일 한다면 큰 탈이 나지 않는 법이다. 대규모 농업이 아닌 소농의 중요함을 설파하는 남봉리의 농부. 꿀벌처럼 부지런한 사람 임형호씨를 매화향 가득한 그의 집 마당에서 만나 보았다.

 

 

당돌한 청년에서 공부하는 나무박사가 되다

 

고산면 남봉리에 그의 집이 있다. 그의 아내와 3남 1녀를 낳아 키우고 많은 나무들을 돌보고 열매를 수확하며 부지런히 60여년을 살아낸 남봉리는 그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다. 맹랑하고 당돌하단 소리를 듣던 청년시절은 지나고 현재는 블루베리, 초코베리, 블랙커런트 등 각종 베리 묘목을 취급하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이면 예순이 되는 그이지만 여전히 호기심 많고 생기가 넘치는 청년 같은 모습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당돌한 건 있었어요. 내가 농대를 가려고 충남대, 전북대 교수님들과 펜팔을 했었어요. 내가 당신네 학교 갈 테니까 잘 봐주십쇼. 하고 편지를 주고받았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군으로 지원해서 항공기 정비일을 하고 정비사 자격증도 있어요. 제대하고도 자동차정비회사에서 근무를 했지만 도저히 안되겠더라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농업에 종사해서 뭔가 좀 보여주고 싶은 거지. 그래서 일 때려치우고 공부를 하니까 아버지가 호출을 했네. 왜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무슨 공부를 한다고 하느냐. 내가 4남4녀 중 둘째인데 돈을 벌어서 집안에 보탬이 되야 되는데. 그래서 장학금 받고 순천농업전문대에 들어갔어요. 그때도 졸업하고 농림부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았겠지. 쉬웠을랑가 모르지. 근데 나는 실전에서 성공하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지. 그래서 졸업하고 고향으로 들어왔지. 학교에서 배운 농사공부를 실전에서 실천하려고.”

 

대학졸업 후 순천에서 부인을 만나 결혼하고 85년도에 고향 남봉리로 들어오셨다고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자신만의 농사를 짓기 위해.

 

30년 동안 꾸준히 영농일기를 쓰다

 

나무일은 봄과 가을이 가장 바쁘지만 농촌의 삶은 사계절 모두 크고 작은 일이 있기 마련.
그나마 한가한 겨울이 되면 그는 공부를 한다.

 

 

“겨울은 공부를 하는 시기지요. 미국과 중국 아프리카 등 해외 연수도 다녀오고. 내 돈 들여서 다녀와요. 우리나라와 적합한 수종 연구하러. 종종 귀농귀촌 관련해서 강의 제안이 와요. 그럼 자료도 만들어 놔야지. 인터넷이나 책에서 찾은 정보를 내가 정리해서 스스로 자료를 만들어야 내 것이 되요. 연구를 많이 해야 전문가가 되는 거지. 저는 즐기면서 해요. 재미있으니까. 일 끝내고 저녁에 공부하지. 요즘은 중국어 공부를 하지. 이곳이 내가 공부하는 곳이야.”

 

집안 거실 한 쪽에 농사관련 서적과 노트들이 쌓여 있다. 또한 임형호씨는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85년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이면 늘 하는 일이 있다.

 

“지금까지 영농일지를 계속 쓰고 있지. 매일 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습관처럼 쓰게 되요. 그날 한 것을. <처와 함께 화산에 개암나무를 심다가 남은 블랙커런트 심다보니 점심이 늦었다. 모두 심고 점심식사 후 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걸 보면 자연스럽게 지나간 것을 되돌아 볼 수 있잖아요. 좀 특별한 일은 이렇게 별표를 쳐놓기도 하고.”

 

나의 농사 철학은 작은 것을 소중하게

 

그의 집에는 늘 새 생명으로 가득하다. 파종하여 손톱만큼 자라난 블랙커런트 새싹과 지난 가을에 삽목하여 이제 제법 나무 꼴을 갖춘 블루베리 묘목들.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 작년에 무려 17마리의 새끼들을 낳은 것이 화제가 돼서 ‘TV동물농장’이 촬영까지 한 일도 있었다. 올 4월이면 또 고물고물 강아지들이 태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화분의 시들시들한 꽃나무들도 꼭 살려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

 

“나무나 짐승이나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다 존중을 해야 해요. 하찮은 나무를 잘라서 꽂았을 때는 반드시 생명을 살려야 해요. 죽이는 것은 나무한테 죄송한 일이잖아요.”

 

임형호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그의 부인 서영자씨 ‘저 사람한테 한번 걸려들면 밤새야 한다며’ 놀리신다. 그는 귀농귀촌 교육과 상담을 상시로 하고 있으며 온라인 카페를 통해 베리류 묘목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농사철학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별거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하는 거지. 작은 것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자 이거야. 내가 귀농귀촌한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게 그거야. 작은 거라도 수입원이 되는 것을 해라. 큰 거 하나만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것을 여러 개 해라. 노는 땅이 있으면 고구마를 심고 콩이라도 심어라. 작은 수입이 있어야 집 안의 살림에 보탬이 된다. 큰 거 하나만 바라보면 그거 수확할 때 까지 뭐 먹고 살아. 빚 얻어야 하잖아.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연중 자연스럽게 회전이 되는 거지. 어느 하나 무리하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거지.”

 

꿀같이 달디 단 봄비가 내렸고 임형호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좋은 노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작은 빗방울이 세상을 푸르게 하듯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강하게 하듯이
작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필요해>
- 이상은 ‘둥글게’


월드베리베스트팜
cafe.naver.com/worldberrybestfarm
블랙커런트, 초코베리(아로니아), 블루베리,  준베리 등 각종 베리 묘목
문의 농장주 임형호씨 010-5437-6240

 

글·사진=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화산 종리 새만금영농조합 이남학씨
다음글
잔소리같은 타박도 사랑이라... 72년 곰삭은 삶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