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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기 어르신의 엉기덩기 한가락2015-03-09

박명기 어르신의 엉기덩기 한가락

어릴 때 어르신들이 노는 것 보고는 터억 맘이 동했어

 

박명기 어르신의 엉기덩기 한가락

 

옛날엔 마을마다 농악패가 있었어
집집마다 다니면서
장독 부엌 우물에 축원 올렸지

지금처럼 TV가 있었간디?
순 이런 거 하고 놀았지

 

호미와 낫을 들던 농부들, 삼베 삶던 아낙들, 땔감나무 지게 짊어지던 청년들, 허리 굽은 어르신들, 꼬마 녀석들과 동네 개들이 모두 한 패거리가 되어 한 바탕 신나게 굿을 벌이던 때가 있었다. 마을의 큰 행사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하던 일 제쳐두고 마을 구성원들 스스로가 공연자가 되어 굿을 치던 시절.

백과사전에 따르면 농악은 민중의 생활 깊이 스며들어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행하던 민속종합예술이다. 원래는 굿을 가리키는 말로 예전에는 매구(매귀), 풍장, 풍물, 두레 등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농악이라고 불리 우기 시작한 건 일제시대 때부터다. 그 당시 일제는 한국의 민속 문화에 관해 조사하던 중 무속종교가 한국인의 삶에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하고 무속신앙과 공동체를 형성,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마을 굿을 철저히 제지했다.

그러나 1920~33년 사이 농업장려운동의 하나로 두레굿만은 허용하였는데 굿하는 단체들은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해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은 오히려 농악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두레굿, 길굿, 술매기굿이라고 부르고 혹은 ‘한판 놀았다’라는 표현을 하셨다. 완주의 마을마다 농악단이 하나씩 있던 시절을 거쳐 현재는 몇 개의 면단위에서 합쳐진 연합 농악단들이 남아 있다.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화산농악단을 찾아가봤다.

한국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화산농악단’

1999년도 한국에 쿠바음악 열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다. 빔 벤더슨 감독의 음악다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영향이 컸다. 줄거리는 이렇다. 쿠바음악에 심취해 있던 미국의 기타리스트가 쿠바로 향했고 전설적인 연주자들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전성기를 누렸던 쿠바의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들의 평균나이 70세였다. 음악을 계속 하던 이들도 있고 구두닦이를 하던 할아버지도 있었다.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던 이들이 오랜만에 만나 연주를 하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멋있더란 말이다. 쿠바까지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다. 가까운 곳 완주에도 이처럼 멋있는 어르신들이 계시다. 2011년에 다시 뭉친 화산 농악단의 단장 박명기 어르신(73)을 만나 농악단에 대해 물었다.

“2011년 3월에 화산농악단을 재정비했지. 상호마을 상쇠인 유재완이가 농악을 하자고 찾아왔어. 예전에는 마을마다 있었는데 다 사라지고 흩어져 버린 상태였거든. 때마침 내가 그때 주민자치센터에 자치위원장을 했을 때여서 일 꾸리기 수월했지. 그렇게 1년 동안 단원모집하고 때마침 2012년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CB사업 공모를 하더만. 그때 지원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단장을 맡아서 농악단을 꾸리게 되었지. 그때 심사를 받으러 갔는데 기준이 애매했었나봐. 농악을 CB로 할 수 있는가 말이여. 처음엔 안 된다고 그랬어. 심사회의를 하는데 내가 엄청 따졌지. 왜 이것이 안 되냐. 옛날 것을 계승시키고 공동체정신을 되살리데 중요한 농악이 왜 CB가 안되느냐며 따졌지. 다행히 그해 선정이 되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네.”



어린 시절, 마을에서 보고 느꼈던 가락을
평생 기억하다

단원들의 대부분이 젊은 시절 마을에서 어른들이 노는 걸 보고 그 모습을 잊지 못하고 마음이 동해서 지금까지도 농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박명기 어르신도 젊은 시절 마을에서 굿치고 놀던 때를 기억하고 계셨다.

“어린 시절에도 많이 쳤지. 마을마다 농악패거리가 없는 데가 없었거든. 걸립이라고 해서 정초에 마을 집집마다 다니면서 돈을 받아. 그럼 돈을 받아서 공동시설 같은 것 만들지. 두레 걸립이라고 했어. 백중날, 칠석날, 정월대보름, 구정, 추석때 많이 놀았지. 집집마다 다니면서 대문에서부터 굿을 치는 겨. 마당, 마루에다 쌀 갖다 놓고 장독, 부엌, 우물마다 다니면서 축원 올리고 굿을 했지. 마을에서 잘 사는 집에서 점심 준다 그러면 농악치면서 그 집으로 가서 한 바탕 놀고 점심 얻어먹고 놀았지. 늘 배고프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처럼 티브이가 있어 뭐가 있어. 그러니까 순 그런 거 하고 놀았지.”

완주에서는 호남 좌도, 우도가 전수되어 내려오다가 마을마다 진안 중평굿을 사사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우도는 사라지고 현재는 호남좌도만 전수되고 있다. 호남좌도는 빠르고 경쾌한 남성적인 가락이 특징이다. 화산농악단의 단원들의 평균나이는 70세다. 막내 단원이 60세라고 한다. 월요일, 목요일 저녁 8시에 모여 2시간씩 연습을 하신다.
“한 30분치면 겨울이라도 땀이 꼼빵 나버려. 그렇게 1시간 치고 땀나고 힘이 빠지는데 밤참으로 막걸리 먹고 또 함께 놀다보면 2시간이 훌쩍 가버려.”

농악을 겨루는 것 재미없어, 그저 가락을 즐기며 놀면 그뿐

완주에서도 2010년 까지는 완주문화원 주최로 매년 농악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심사기준이 모호해 서로 등수를 인정하지 않고 잦은 분란이 일어나 경진대회가 재현행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농악대회에서 하도 싸워 싸니까 그냥 술매기굿 재현하는 행사를 하지. 곳곳에서 술매기굿 재현을 해. 진안에서도 하는데 우리도 매년 참가해. 규격이나 규칙이 없어. 평소에 서로 합을 맞추지 않아도 놀던 가락이 있으니까 상쇠가 이끄는 데로 치면 되니까. 상쇠가 중요해. 합굿을 할 때는 농악단들이 여러 무리여서 상쇠가 여럿이잖아. 그럼 심사위원이 없어도 스스로 고수를 알아보는 거야. 아 저 놈이 잘 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표상쇠가 생겨나고 그가 이끄는 데로 노는 거지.”
참 멋있다. 억지스러운 규칙이나 기준이 없어도 서로가 알아보고 인정하는 것.

요즘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박명기 어르신은 작년 늦가을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올 초에 퇴원하셨다. 늘 조심하셔야 하지만 여전히 농악단 생각이시다. 어르신에게 화산농악단이 왜 그리 중요한지 여쭈었다.
“잊혀져가는 것을 안 하면 그냥 없어지는 거잖아. 누가 해도 해야 되는 거지 뭐. 우리 농악단이 특별히 내세울 건 없어. 하지만 농악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나라 전통을 살리는 거잖아.”


화산농악단 단원 수시모집

■ 모임장소 : 운산보건지소 건강증진실
■ 모임시간 : 매주 월요일, 목요일 저녁 8시
■ 문의 : 박명기 단장 010-4932-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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