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향이 좋은 천생 나무꾼 경순씨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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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향이 좋은 천생 나무꾼 경순씨
-용진면 황제참나무장작 임경순
장작패서 아궁이에 불 피우던 기억은 없지만 중학교 1학년 무렵까지는 연탄으로 난방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연탄불 꺼트리던 날은 차디찬 방바닥보다 부모님의 냉랭한 기운이 더 춥고 차가웠다. 형편이 좋지 않을 때는 연탄을 낱개로 사다 놓기도 하지만 가을 어느 날 아침저녁 바람이 바뀌기 시작하면 동네 골목마다 연탄 나르는 집들로 시끌벅적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창고 옆에 까만 연탄을 가득 쌓아 놓으면 그 순간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일 년 먹을 양식을 쌓아놓은 것처럼 아랫배가 뽀땃한 기분. 그날은 고만고만한 골목길 사람들이 부자들처럼 고기 듬뿍 넣어 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짭짤한 조기도 구웠겠지.
도시가스가 생기면서 연탄이나 장작처럼 눈앞에 쌓아놓고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희미해졌다. 그저 서른 개 들어있는 두루마리 휴지 하나 사다놓았을 때 잠시 느끼는 안도감 정도랄까.
불현 듯 몇 해 전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난다. 장례 치르고 집을 정리하다가 창고에 가득 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들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움. 얼마나 오래 됐는지 노랗게 변색되어 먼지가 들러붙어 있었다.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아무래도 장작이나 연탄을 쌓아 놓을 수 없으니 휴지를 쌓아두고 야금야금 즐거움을 느끼셨던 모양이다.
황제참나무장작 가에 입구에 쌓여있는 장작들
일 년 농사 짓 듯 정성스럽게 만든 참나무 장작
그래도 시골 살이 중 쌓아놓았을 때 최상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건 역시 장작이다.
용진 황제참나무장작가게 입구에는 참나무장작이 쌓여 있고 그것이 곧 이 가게의 간판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보기 좋게 쌓여 있는 장작들을 보며 잠시 넉넉한 기분을 만끽한다. 주말을 앞두고 오전부터 캠핑용 장작을 사러 오는 사람들 차량이 분주히 오고 간다.
2017년부터 이곳에서 장작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임경순(67년)씨에게는 가을이 한창 바쁜 계절이다.
“장작 만들어 파는 것도 농사야, 농사. 일 년 농사 짓 듯 정성스럽게 해요. 햇빛에 말려야 상품가치가 있으니까 1년 정도 자연건조해요. 농부들이 일 년 동안 키운 농산물 출하할 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것처럼 저도 그래요.”
덜 마른 장작.
장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뒷산에 올라가 아무 나무나 베어서 쓰면 되는 것 아니냐며 간단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벌목허가를 받은 이가 벌목 가능한 시기에 베어낸 나무들로 장작을 만든다. 봄과 여름에는 나무가 자라는 시기라 벌목이 금지되어 있고 설사 베어서 장작으로 만든다 해도 수분이 많고 벌레 먹은 곳이 많아 상품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가을, 겨울철에 벌목한 나무들이 단단하고 땔감으로 적합하다. 임경순씨는 참나무만 취급한다. 밀도가 높고 단단해서 오래 태울 수 있고 타고 만들어진 참숯도 쓸모가 많다. 진안에서 벌목해온 참나무 통목이 공장 한쪽에 가득 쌓여 있다.
나무꾼 경순씨.
5미터 정도의 통목은 엔진톱을 이용해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다. 큰 나무 다루는 일은 남편 김권태(67년)씨의 몫이다. 적당한 크기의 원통형 나무들을 유압기를 이용해 용도에 따라 잘라낸다. 원통형을 유지한 절단목은 주로 화목보일러 용으로 쓰인다. 쪼갬목도 크기가 큰 것들은 난로형으로 쓰이고 가장 잘게 쪼갠 것이 캠핑용으로 쓰인다. 나무 자를 때 생긴 조각들은 불쏘시개용으로 따로 모아두고 톱밥은 밭, 축사, 곤충 키우는 곳으로 보낸다. 이곳 공장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없다.
“저는 나무가 참 좋아요. 나무 향 맡으며 일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요. 어찌 보면 무거운 장작 패고 나르는 것이 여자들이 하기에 힘에 부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되더라고요. 도끼질을 할 때 참나무가 쫙 쪼개지면서 나무향이 팍 나요. 그때 기분이 참 좋아요.”
돌고 돌아 완주에 정착하다
임경순씨는 바다건너 제주도 빼곤 안 살아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일을 찾아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 예전의 기억들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힘든 건 될 수 있는 한 잊고 지내자, 가진 것 없어도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 잊어지더란다.
나무꾼 경순씨에게 당신 인생의 첫 장작에 대해 물었다. 문경에서 나고 자란 경순씨는 어린 동생들과 뒷산에 올라 소죽 끓이기 위해 땔감을 주우러 다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바쁘니까 여덟 살 때부터 제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한 거죠. 두 살, 세 살 아래 남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제 손으로 밥해 먹였던 거지. 한창 개구 질 때잖아요. 그러니까 맨날 혼나지. 그 겨울에 동생들 외양간으로 쫓겨나면 나도 나가서 추우니까 서로 끓어 안고 함께 자기도 하고 그랬어요. 아궁이에 불 떼면 그 앞에 셋이 옹기종이 앉아 있기도 했고. 엄마가 없으니까.. 내가 보살폈죠,”
인생의 반절을 전라도에서 보내고 있다. 김제를 시작으로 군산, 전주를 거쳐 3년 전에 완주에 정작하게 되었다. 친정인 경상도 문경에 갔다가도 전라도 톨게이트를 지나오면 내 집에 온 것 마냥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한다.
완주 화산으로 장작 배달 준비중인 임경순, 김권태 부부.
“여기 참 좋아요. 우리 부부에게 완주는 연고가 없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왠지 편안하더라고요. 타지라는 생각도 안 들고. 희한하게 편안해요. 처음에 장작장사 시작할 때는 생소한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걱정이 많았죠. 우리 아저씨가 그 전에는 운송업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죠. 잠 못 자고 운전하는 것이 나이 들면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정착해보자는 마음에 완주에서 이 일을 시작한 거죠. 처음 시작하고 일 년은 많이 힘들었어요. 월세 내기도 힘들었지. 잘 알려지지 않기도 했고, 우리가 이 지역에 인맥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장사가 어려웠지. 그런데 일 년 지나고 조금씩 조금씩 우리 집 단골이 늘어나면서 그 분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소개도 시켜주고 그랬죠.”
불멍의 계절이다. 임경순씨는 장작을 팔고부터 불꽃을 보며 명상에 푹 빠지는 맛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고기의 맛도 알게 되었다.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은근하게 구운 고기를 먹고 부터는 가스 불에 구운 고기는 못 먹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조용히 작업하는 사람인거 같아요. 거친 일이지만 나무를 만지고 향을 맡는 게 좋아요. 나무가 참 고맙죠. 정이 가고 마음이 가요.”
나무 곁에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는 임경순씨는 천생 나무꾼이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