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마을로 스며들다] 완주문화재단 예술농사: <글로벌 셰익스피어 드라마스쿨 in 완주>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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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문화재단 예술농사: <글로벌 셰익스피어 드라마스쿨 in 완주>
완주의 소년 소녀, 셰익스피어를 만나다
마을에 활력이 돈다. 예술과 문화가 시골마을 곳곳에 스며들면서다. 어제까지 평범했던 학생들이 배우가 됐고, 마을주민은 문화를 전파하는 이장이 됐으며 허물어졌던 담장은 예술가의 캔버스가 됐다. 완주문화재단이 최근 진행 중인 다양한 프로그램이 그 배경이다. 고산에도 11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했다. 여름의 끝 무렵, 한여름 밤의 꿈처럼 고산의 중학교 2학년생들은 셰익스피어를 만났다.
고산중학교 2학년 11명 드라마스쿨 입학
해외에서 온 배우들 멘토로 함께 소통
10대들의 속 이야기 쏟아내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해피엔딩으로 바꿔놔
지난여름 완주문화재단은 특별한 연극워크숍 하나를 진행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멕시코, 브라질, 이탈리아, 뉴질랜드, 호주 등 7개국 12명의 다국적 배우들과 11명의 중학생 배우들이 ‘연극’을 매개로 새로운 방식의 예술교육콘텐츠를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전북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교육콘텐츠개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글로벌 셰익스피어 드라마스쿨 in 완주>. 메인 무대는 고산청소년센터 고래였다.
8월 26일 첫 만남. 로미오와 줄리엣을 함께 읽고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8월 26일 처음 만난 두 그룹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다. 해외 연극인들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춤을 추며 몸을 풀었고 학생들은 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괜히 먼 산을 바라보거나 바닥을 쳐다봤다. 한 아이에게 다가가 왜 이 구석에 있냐고 슬쩍 물어보니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해요. 나한테 말 걸면 어떡해요.”
# 한 여름날의 만남
이날 완주 글로벌 셰익스피어 드라마스쿨 예술감독 한지혜씨의 진행으로 첫 수업이 시작됐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서로가 연극을 만들어 가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첫 수업의 골자는 질문.
자신의 기분을 종이에 표현하는 고산중 아이들
첫 번째 질문은 지금 현재 자신의 기분을 종이에 그려보는 것이었다. 공포에 떠는 표정, 들뜬 표정, 편안한 표정 등 다양한 사람이 모이니 표정도 제각각이다.
두 번째 질문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 세 번째 질문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잔뜩 움츠려있던 아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낯선 외모의 배우들은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 이야기 조각을 맞추다
무대 위의 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큰 소리로 연기를 해야 한다. 9월 2일 두 번째 만난 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소리를 지르는 게임을 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눈 마주치는 것도 힘들었던 낯선 외국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실컷 소리를 지른다. 한껏 상기된 아이들이 말했다.
“제 몸에서 이렇게 큰 소리가 나온 적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로미오와 줄리엣’ 대본을 한 주 동안 꼼꼼히 읽어본 소감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로미오를 따라 죽은 줄리엣의 행동은 경솔해.’
‘비밀 결혼은 왜 하는 거지? 결혼은 모두의 축복 속에 서로의 사랑을 알리는 거야.’
‘내가 영주라면 “죽음이 두렵다면 물러가라!” 라고 하기 보다는 두 사람의 입장을 들어보고 갈등이 해결되도록 도울 거야.’
2017년 고산에 살고 있는 일곱 명의 로미오와 네 명의 줄리엣이 간절히 원하는 그 무언가, 그리고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나의 로미오, 나의 줄리엣은?
9월 9일 세 번째 만남의 날. 쉬는 시간에는 청소년센터 고래에 있는 노래방에서 해외 연극인들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정도로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브라질 배우 캐롤은 “노래방에 내 친구의 노래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춤추며 노래 부르고 영상을 찍어서 친구에게 보내줬다”며 웃었다.
지난 시간이 이야기를 조각으로 나눠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보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조각들을 모아 한 편의 이야기로 다듬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2017년의 로미오와 줄리엣. 조금씩 연극이 만들어져가고 있었다.
사진찍기 놀이에 열중한 배우와 고산중 아이들
# 우리가 이렇게 진지해질 수 있다니!
9월 16일 마지막 연습은 고래가 아닌 완주전통문화체험장(고산 창포마을 소재)에서 이뤄졌다. 해외 연극인들이 고산 아이들의 멘토가 됐다. 마룻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외국인들도 낯설지만 자뭇 진지한 아이들의 표정도 낯설었다. 영어로 말하기를 두려워하던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며 마지막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클라우디아 선생님이 스파르타식으로 알려줬어요. 뒤에서 제 몸을 잡아당기며 목소리를 크게 내는 방법을 알려줬거든요.” 오효은 양은 공연 때 엄마아빠가 오셨는데 객석까지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며 좋아했다.
뉴질랜드에서 온 배우 진은 만날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놀랐다. “대본을 분석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자신의 생각이 극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으니 마지막 날에는 수줍은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더군요.”
배우와 아이들은 번역앱을 통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
# 2017, 로미오와 줄리엣 by 완주청소년
9월 17일 고풍스러운 한옥. 높은 하늘과 찬란한 가을빛이 무대가 된 마지막 날, 자신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연극을 끝마친 아이들은 상기되어 있었다.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마지막 인사를 한 아이들은 끝나자마자 부모님이 아닌 해외 연극인들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 순간 그들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였다.
이유민 학생이 외국인 배우들에게 롤링페이퍼를 쓰며 고민하고 있다.
해외 연극인에게도 이곳에서 경험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탈리아 연극인 클라우디아는 “완주의 아이들, 정말 놀랍다”고 했다. “나도 열다섯 살에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연기를 배워 본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고산의 아이들이 어떤 기분일지 알 것 같아요. 이렇게 멀리 와서 완주의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다니!”
더 나아가 멕시코에서 온 필라는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명상을 하며 자신 안에 있는 자신과 만나기를, 그리고 Just do it! 자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하라”고.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고산중 아이들과 배우들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 결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연극의 마지막 대사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진짜 말과 마음이 담겨 있다.
“잘하든 못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해.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그거 잘하냐고 물어봐. 잘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을 실컷 하고 싶어. 우리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으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들에게도 계속 다른 문제들이 생기겠지. 그런데 아직 모를 일이지….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놀듯이! 노는 건 또 자신 있지! 우린 중2야! 맞아 우린 무서울 게 없다고!”
△ <글로벌 셰익스피어 드라마 스쿨>이란?
2015년 구성된 다국적 셰익스피어 극단 ‘인터내셔널 액터스 앙상블(International Actors Ensemble)’ 소속 배우들과 완주의 청소년들이 함께 한 새로운 방식의 연극워크숍.
특히 11명의 해외 연극인들이 강사개념이 아닌 ‘예술인’으로 함께하며 학생들이 연극을 완성하고 발표할 수 있도록 제작 전 과정을 밀착 멘토링했다.
완주문화재단 송은정 사무국장은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제작하기 위한 시도였다”면서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언어는 큰 장벽이 아니었다. 연극이란 장르로 청소년들과 외국인들이 소통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프로그램 전 과정을 기록해 지역의 연극인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완주의 연극인들도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