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피는 정농마을] 평생을 부지런하게 살아온 오청남-우순례 부부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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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부지런히 살아온 오청남-우순례 부부
"아침에 일어나면 꽃향기에 취해요"
장미, 목련, 수선화, 복숭아, 배꽃...
문을 열면
부부만의 비밀화원
노부부를 만난 것은 평일 아침. 오청남(74) 할아버지와 아내 우순례(69) 할머니는 마을 어귀로 쑥을 캐고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침 9시에 나왔나. 쑥 좀 캐려고 다녀왔어. 아까 새벽에는 로컬푸드에 납품하고 왔고. 이따 오후에는 쑥도 다듬어야지. 우리 바빠.”
부부가 타고 있는 낡은 빨간색 오토바이. 매일 아침 이들을 이곳저곳으로 실어다주는 오토바이는 낡았지만 이들의 두 다리를 자처한다. 한해가 갈수록 내딛는 발이 조심스러워지는 걸음걸이지만 오토바이는 아직 성하다.
“(오토바이를 가리키며)우리집 귀염둥이야. 2만km 탔네. 로컬푸드 매장에도 데려다 주고 쑥 있는데 까지 데려다주기도 하고. 우리는 맨날 이거 타고 댕겨. 다리 같은 존재지.”
부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 대문을 지나 안쪽의 또 다른 문을 여니 이들만의 정원이 펼쳐진다. 단단한 콘크리트로 가려져있던 부부의 ‘비밀의 화원’이다. 장미, 목련, 수선화, 복숭아, 배, 매실, 자두, 단감나무. 꽃을 좋아하는 순례 할머니가 하나둘 심어놓은 것이 어느새 이렇게 자랐다. 겨우내 웅크렸던 나무들은 4월 중순이 되면 망울을 환히 터트린다. 그제야 그들의 정원은 비로소 제 색깔을 입는다. 이때가 되면 정원을 지키는 강아지 달롱이도 신이 난다.
“내가 꽃을 좋아해. 저 장미도 뿌리를 사다 심어놨는데 저렇게 컸네. 장미 심은 지 한 20년 됐나. 가지 쳐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많이 줬어. 예쁜 거 나눠서 보면 좋잖아. 봄에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꽃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여기가 내 정원이지. 배꽃이랑 복숭아꽃이 어우러지면 참말로 멋있어.”
우순례 할머니가 아침에 캐온 쑥을 다듬고 있다. 다음날 새벽에 로컬푸드 납품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도 쉴 틈이 없다.
말을 마친 부지런한 부부는 또다시 일을 시작한다. 아내는 호미를 들고, 남편은 예초기를 맸다. 그리곤 풀을 메기 시작한다.
“풀을 메야 뭣도 심지. 그래야 우리도 먹고 살잖아. 우리는 겨울에도 못 쉬어. 냉이 씨 받아서 뿌려야 되거든.”
살림살이가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넉넉한 부부. 한 달에 3만원씩 해외아동들을 위해 후원을 한다.
“외국 불우이웃돕기인가. 전에 테레비 나오길래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보내고 있어. 한 3년 됐지. 우리도 힘들어서 그만둘까했는데 못 그러겠더라고. 아이들이 가엷잖아. 그 돈도 만만치가 않으니까 더 부지런히 일해야혀.”
풀을 메는 순례 할머니 손이 흙으로 새까맣다. 뜨거운 봄 햇볕이지만 언젠가부터 볕을 가리는 일도 불필요한 일이 됐다.
“아, 다 늙어서 모자는 써서 뭐해. 장갑 같은 것도 필요 없어. 할 일이 태산이야. 이제부터 제대로 바빠지거든. 이번 주말에는 고구마 심어야해. 담주 부터는 배나무 열매를 속아야 되고.”
부부의 집 뒤에는 그들만의 정원이 있다. 4월 중순이면 배꽃, 복숭아꽃 등이 만발해 집 안까지 꽃향기로 가득하다.
낯선 객에게 차려준 정갈한 밥상. 두릅, 나물 등에서 봄향기가 난다.
호미가 지나간 자리에서 지렁이와 벌레가 기어 나온다. 이것은 땅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침 5시에는 일어나야해. 잠 덜 자고 부지런 떨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잖어. 남보다 부지런해야 사는거야. 이 지렁이나 벌레도 부지런하잖어. 땅이 살아있다는 것이지.”
평생을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아온 노부부. 그것이 그들 스스로의 삶을 움직이게 한 동력이자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나저나 점심은 먹었어? 미나리 김치 좀 담갔는데 맛이 참 좋아. 점심 안 먹었으면 먹고 가면 좋은데. 자시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