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그 따뜻함] 집밖으로 나온 아궁이들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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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장날은 난로에서 인심 난다네
집밖으로 나온 아궁이들
1월4일, 새해 첫 고산장날이 열렸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인다. 겨우내 건조시킨 잘 말린 곶감을 들고 나온 농부부터 겨울용 털신발과 모자 등의 공산품을 파는 아저씨, 겨울철 먹거리인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아줌마, 텃밭에서 키운 작은 푸성귀를 들고 나온 할머니까지. 사람의 온기가 거리를 채운다.
△ 주인 없는 난로
시장 도로변에 놓인 깡통 난로에 이사람 저사람이 모여 추위를 녹이고 있다.
“이건 누구의 것도 아녀. 다 같이 쓰는 거지.”
도로변 깡통 난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른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들 불 앞으로 모여든다. 누군가는 의자를 가지고 난로 앞에 앉는다. 누군가는 잠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불에 손을 녹인다.
“이 난로 내꺼냐고? 아니랑게. 나는 그냥 불 쬐고 쉬고 있는 거여.”
“깡통 끊은 놈에 모닥불 떼는거여. 이사람 저사람 산에서 나무 좀 주어오고 길가에서도 주워오고. 날 추운 날은 사람들 다 여기 둘러싸고 있지.”
여러 물음에도 난로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녹슬고 그을음이 묻은 낡은 깡통 앞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니다’고 대답한다. 주인이 없는 난로, 주인이 없는 불.
“나는 신발 장사를 해요. 고산 장날에 온지도 벌써 10년이네. 나는 난로가 있었던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추우면 이렇게 길 건너 있는 난로 앞까지 왔다갔다해요. 해마다 상인들 사이에 난로가 있는 곳이 있어요. 오늘처럼.”(최윤식·60)
송상우(63)씨도 고산장날에서 장사를 한지 10여년째. 실은 많은 상인들이 모여드는 일명 ‘깡통 난로’는 그가 가져오는 것이다. 매해 겨울이면 그는 새로운 깡통을 구입한다.
“겨울에 불 쓰고 나면 통도 타서 바꿔줘야 해요. 내가 여기서 장사한지 10년 정도 됐으니까 저 깡통도 10번째는 됐겠네. 근데 올해 가져온 건 두꺼워서 내년까지 써도 되겠어요. 내꺼 니꺼가 어딧간요. 여럿이 난로를 쓰니까 다 같이 써야지. 오다가다 동네 사람도 오고 우린 다 친구니까 난로도 같이 쓰는 거예요. 땔감은 저 친구들이 가져와요.”
니것 내것 따지지 않는 그들의 마음씨. 이곳에선 불 앞에 선 그들은 모두 공평해진다.
△ 신박하니 쓰임새도 많구나
고산시장에 구멍이 숭숭 뚫린 스뎅 냄비 난로가 등장했다. 언 몸을 녹이는 난로의 역할도 하지만 음식을 조리할 수도 있다.
화력이 센 버너는 새것이 분명한데 구멍이 숭숭 뚫린 이 정체모를 뚜껑(?)은 딱 봐도 낡았다. 이것이 무엇인고 물으니, 구입한지 한 달 된 버너에 고물상에서 주어온 고철을 엎어놓은 신개념 난로다.
“스뎅 냄비라고 해야 하나, 대야라고 해야 하나. 요강이라고 해야 할라나. 하여튼 고물상에서 그냥 주워온 거예요. 그걸 용접으로 내가 구멍을 뚫은 거지.” (강희구·59)
모양도 신박하니 쓰임도 다양하다. 손이 시려 울 때는 이렇게 고철을 엎어두고 난로로 쓰이지만 어떨 때는 다른 ‘멀쩡한’ 냄비를 올려 물을 끓이거나 음식을 하기도 한다. 밤도 구워먹고 라면도 끓여먹는다.
“이 자리서 장사한지 1년 됐어요. 겨울 되니까 난로가 없으면 안되겠대요. 이 버너는 24만원 줬어요. 석유로 떼는 건데 따뜻하죠.”
△ 객을 위한 두 대의 연탄 난로
(위)고산터미널 남문약국은 시내버스 대합실 같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객들이 난로를 쬐곤 한다.
(아래) 연탄난로 위 주전자 물이 끓고 있따.
고산터미널에 있는 남문약국은 문을 연지 40여년 된 고산의 터주대감이다. 이곳은 늘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따뜻한 난로 때문이다. 이곳은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터미널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문을 연다. 그리고 밤 11시께 문을 닫는다. 터미널을 찾는 객들을 위한 배려다. 그래서 이곳의 난로는 쉬지 않고 돌아간다. 연통이 천장으로 연결된 작은 난로는 낡았지만 세월의 온기를 입어 따스하다.
“장 보려고 비봉서 왔어. 아침에 버스를 급하게 타느라고 셰터(스웨터)를 안 입고 나왔더니만 시상 춥네. 그래서 여기 왔잖어. 여기 약국은 사람이 그렇게 좋아. 말 할 것도 없어.” (김정숙·81)
아직도 오려면 40분이나 남은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김정숙 할머니는 작은 난로에 두 손을 녹이고 있다.
“나는 성당에 왔다가 이제 집에 가려고 뻐스 기다리고 있어요. 밖은 추웅게 이 안으로 들어왔지요. 내가 별로 안 아파서 약을 잘 안 사거든요. 그런데 맨날 차를 여기서 기다리니께 미안할 때가 있당게요. 우리한테는 약국 안이 버스 대합실이어요.(웃음)” (황선자·69)
난로 위 주전자 물이 끓는다. 따뜻한 물이 고픈 객들을 위한 약국의 또다른 배려다. 이곳을 찾은 객들은 따뜻한 온기와 함께 따스한 마음을 가져간다.
약국의 주인은 하루 세 번 연탄을 간다. 그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사람을 향한 ‘정’ 때문이다.
“저 난로도 한 20년 됐을 걸요. 난로 놓는 약국은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가게가 넓으니까 두 대는 있어야죠. 우리는 난로를 24시간 피워놔요. 불 안 꺼치게 하려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 3번은 연탄을 갈아야죠. 안 힘들어요. 터미널 사람들이 와서 이곳에서 쉬고 차 시간도 기다리니까 그게 좋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