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촌, 다시 마을이 되다] 천등산과 대둔산 품에 안긴 아늑한 두메산골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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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과 대둔산 품에 안긴 아늑한 두메산골
주민들 낡은 주택 고쳐 경로회관 꾸며, 내년엔 신축
옛날엔 화전 일궈 호밀 심고
산두(밭벼) 심어 먹고 살았네
들깨 털고 버섯 따고 곶감 깎고
겨울채비로 가을도 분주
고산촌에 가을이 왔다. 울긋불긋한 천등산과 대둔산 품에 안긴 이 마을은 그 어느 곳보다 가을을 빨리 알아챈다. 낮은 담장으로 누군가의 살림살이가 훤히 보인다. 경계가 없는 담장이다. 텃밭에는 커다란 배추와 상추가 먹을 만큼 심어져있다. 마당에는 가을볕을 기다리는 빨간 고추.
고산촌 마을은 운주면 산북리(山北里)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23호 가량의 주민이 산다.
마을은 올해 큰 변화가 있었다. 인구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1970년대 인근의 평촌마을로 편입됐지만 올해 다시 고산촌 마을로 분리됐다. 그래서 요즘 마을은 시끌벅적하다.
우리 마을 이름은 고산촌이야
(위) 마을 위에서 바라본 고산촌 모습. (중간) 노인회장 부부가 마을 어귀에서 깨를 털고 있다. (아래) 한 어르신이 집앞 마당에서 감을 말리고 있다.
운주 금당리 옥배마을에서 17세에 시집와 이 마을에서 사신지만 벌써 70여년. 이이례(88) 할머니는 마을의 가장 큰 어르신이다. 할머니가 젊을 적, 마을 사람들은 나락, 호밀, 보리 등을 산에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나 첨에 가마타고 이 마을 왔을 땐 이름이 고산촌이었지 시방. 그러다가 내가 서른인가, 마흔인가 됐을 때 평촌마을이 됐어. 사람이 밖으로 나가고 죽어나고 그러면서 사는 사람이 별로 없응게. 근디 마을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다시 오고 그러네. 나 죽기 전에 우리 마을에도 경로회관이 생기나 했더니만 생길라나벼.” (이이례·88)
운주면은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기 위해 몰리는 피서객들로 북적이는 휴가 명당이다. 고산촌 마을 인근에도 물이 좋아 곳곳에 펜션들이 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옛날에 펜션이 있었간요. 여름이면 워낙에 물이 좋으니까 마을 사람들도 다 냇가 가서 수영했어요. 우리 어릴 적엔 냇가에 가재도 있고 새우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그때는 여름 저녁에 바케스(양동이)로 하나 잡고 그랬어요. 냇가에 냄비 걸어놓고 친구들이랑 먹으면 맛이 기가 막혔지.”(김흥덕·69)
마을이 큰 산과 가까이 있다 보니, 산 아래 있는 집에서는 다람쥐를 보는 풍경이 흔하다. 김병수·윤정순 부부 집은 다람쥐 천국이다.
“우리집은 다람쥐 집이야. 사람집이 아니야. 문 열어두면 집에까지 들어와.”(윤정순·72)
“먹이 챙겨주는 것도 없어. 지들이 알아서 참나무 열매도 까먹고 우리가 널어놓은 땅콩이나 밤도 까먹어. 물어다가 숨겨놓고 먹거든. 우리가 여기 살면서 먹을 게 있으니까 이리 오더라고.”(김병수·72)
마을에 가을비가 내린다. 대둔산 허리에 구름이 걸렸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마을의 풍경은 작품이 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살기 좋은 데도 없다’라고 말한다.
주민들 힘 합쳐 고산촌에 살어리랏다
(위, 아래) 마을회관 수리하는 둘째 날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주민들은 내부공사를 했다.
고산촌 마을은 곳곳이 예쁘다. 마을을 둘러싼 산의 울긋불긋함도 어여쁘지만, 주민들이 하나둘 가꾼 작은 흔적들이 참 예쁘다. 담장에는 고산촌의 마스코트를 자청하는 멍멍이 ‘고산이’가 그려져 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세운 시가 있는 조형물, 나무로 만든 정승도 있다. 마을이 분리되면서 주민들이 모두 뜻과 힘을 모아 하나둘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마을회관 역할을 할 회관 공사를 시작했다. 시간이 되는 주민들이 하나둘 힘을 보태 쓰레기를 치우고 보일러 공사를 하고 도배를 한다.
지난 10월25일 오전. 간밤부터 내린 빗줄기가 아침이 되자 더 굵어졌다. 아침 8시께부터 주민들은 전날 하다만 마을회관 공사를 시작했다.
“공치는 날이니까 이런 날 모여서 해야지.”
힘쓰는 남성들을 위해 바지런히 커피와 차를 준비하고 있는 양복순(69)씨의 손도 분주하다. 평균 연령 65세의 ‘장정’들이 나서니 공사가 뚝딱 진행된다. 전날 빈집의 벽을 허물고 돌을 옮겨가며 외부를 정돈한 것에 이어 이날은 장판을 뜯고 벽에 풀칠을 하는 등 내부공사를 진행했다.
고산촌 마을의 마을회관이 들어설 이 빈집은 지어진지 60여년 된 낡은 집이다. 주인 없이 방치된 지 6개월 가량. 마을 사람들이 모금 활동을 통해 집터를 샀다. 땅의 주인도 고향사람인지라 저렴하게 땅을 내놓았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어. 겨울에는 지금 이 집 고쳐서 좀 지내고 내년에는 새로 지어야지. 튼튼하게.”(노인회장 )
비가 그칠 기색 없이 세차다. 여자들은 점심메뉴 국수를 준비하느라 일찍부터 바쁘다.
“부침개를 할라 했는데 비가 와서 안되겠네. 점심은 국수하기로 했어. 먹고 가요.”(최병애·67)
어제오늘 수리한 빈집에서 마을 사람들은 올 겨울을 보낸다. 해가 바뀌고 따뜻한 봄이 오면 튼튼한 마을회관을 새로 지을 예정이다.
“우리 마을의 중심이 될 곳이니까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튼튼하게 지어야죠.”(이기열 이장)
늘 봄처럼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대둔산이 보이는 마당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사이좋은 마을 주민들은 길가의 노란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준다. 꽃보다 그 다정함이 어여쁘다. 한명이라도 더 같이 찍어야 한다며 빈자리를 챙긴다. 카메라 앞이 어색하지만 주민들과의 기념사진 촬영이 싫지는 않다.
“카메라 보고 화이팅이라도 할까요?”
이기열 이장의 말에 쭈뼛대던 주민들이 하나둘 수줍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낸다.
“고산촌 파이팅!”
문득 마을 입구에 세워져있는 주민들의 인사말이 떠올랐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건강은 좋으십니까. 그대와 당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봄처럼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 살기 좋은 고산촌 주민 일동 드림-’
늘 봄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대들이 있기에, 고산촌 마을에 행복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 비회원 2915일 전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