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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이 없는 곳, 유상마을] 한글공부 3년째 임문자 어르신 2015-12-16

[넘이 없는 곳, 유상마을] 한글공부 3년째 임문자 어르신

살다 보면 우리는 여러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한 순간에 대한 인상과 경험은 때론 무척이나 강렬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만한 힘을 갖게 된다.

 

임문자 할머니(81) 인생에서 강렬했던 순간은 바로 이때가 아니었을까. 78세 되던 해 소양 면소재에서 우연히 먼 동네 동생을 만난 그 순간, 할머니의 인생은 달라졌다.

 

한글공부를 한다는 그 동생을 따라 임 할머니는 소양면사무소에서 하는 한글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동안 공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있었지만, 실천에 옮길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우연히 동생을 만난 그 순간을 계기로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올해로 한글 공부를 시작한지

 3년째. 임 할머니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시다.

 

예전에는 글 배우러 가고파도 어디 갈 시간이 있었간요. 연필 한번 잡아볼 시간이 없었죠. 시집와서 일하고 자식들 키우고, 정신이 없었어요.”

 

 할머니가 늘 가방에 품고 다니시는 각종 필기도구.

 

국민학교 2학년 재학 시절 해방이 되고 집안에 사정이 생기면서 졸업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할머니 평생의 한이 됐다.

내가 학교를 못 다니니 동창생을 만나면 기가 죽드라고요. 꿈을 꾸면 학교 댕기는 꿈을 꿨어요.”

 

학교를 다니는 대신 할머니는 태우려고 모아놓은 폐지에서 손주가 다 쓰고 버린 노트를 주우셨다.

그것이 할머니의 교과서였다. 손주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훌륭한 선생이었다.

 

글 배우고 싶다고 자녀들에게 말해본 일은 없어요. 마음속으로만 생각했지. 글을 모르니까 힘든 점이

많았어요. 은행에 가서 돈을 뽑아야 는데 한글을 모르니 애가 터지드라구.”

 

일주일에 두 차례, 할머니는 집에서 20여분간 걸어서 화심까지, 그곳에서 버스를 10여분간 타고

소양면사무소까지 간다. 팔십 연세에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웬만하면 수업 안 빠져요. 우리 애들도 나 핵교 다닌데니까 응원 해줘요. 딸이 예쁜 책가방도 사줬어요.”

 

 

임문자 할머니의 한글 연습 흔적

 

한글수업에서 처음 연필을 잡았을 때, 그 손의 떨림을 할머니는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에 연필을 잡고 쓰는데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 지금도 손이 떨리긴 해요. 한글교실을 나가니 옛날

국민학교 생각이 나서 벅차더라고. 하는데 까지는 해보려구요. 상원이(손주)가 쓰고 버린 한문 노트도

내가 몰래 빼놨어요. 한글 공부하고 나서 한문 공부도 좀 해보려고. 나 학교 계속 다녔으면 모범생이었을거야.”

 

눈 덮인 임문자 할머니 댁. 할머니를 처음 뵌 날, 김장을 하기 전 배추를 절이고 계셨다. 

 

아는 동생을 만나 한글교실로 향했던 그 순간할머니의 꿈은 이뤄졌다. 동창생들을 부러워하며 꿈에서

다녔던 그 학교를 할머니는 지금, 꿈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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