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노래 ⑳개구리와 슈베르트 낮이 정말 덥게 느껴지던 5 월 언젠가부터 해가 지는 저녁이면 일찍 퍼지기 시작했다 . 낮에 농사를 짓는것도 아니면서 시원한 저녁이면 쇼파에 대자로 누워 핸드폰을 얼굴에 들이밀고 뒹굴거리는 시간이 꽤나 만족스럽다 .
앞뒤로 문을 열어 놓고 바람 솔솔 맞으며 이런 저런 동영상을 둘러보며 의미없는 삼매경에 빠졌다가 , 잠시 정신을 차린다 . 개구리가 울어댄다 . 몇 마리 쯤일까 상상도 안 될만큼 크게 울어댄다 .
이장님댁 앞에 논이 있고 그 큰 논이 청개구리로 가득차 있고 , 그 사각형 논이 내 방의 육각면을 채우고 그렇게 개구리가 다닥다닥 머리 위에서 울어대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서라운드로 울고있다 . 내가 핸드폰만 손에서 놓아도 들을 수 있는 소리인데 , 이렇게 크게 들리는데 , 언제부터 울고 있었을까 ?
분명 얼마 전 마당에서 불멍을 할때는 이렇게 크게 안 들렸었는데 왜 난 못 들었을까 ? 나를 완주에 앉힌것 ,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감탄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며 살았던 것들에 대한 간단한 깨달음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인것 같다 .
내가 들어야 할 소리는 내가 정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지배했었고 , 모든 면에서 그런식이었다 . 지금에야 얼마나 황당한 생각이었는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 .
여기서 만난 할머니들이 시집을 온 집에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사를 가지 않으시는 것을 내가 이해 못하는 것처럼 , 나도 내 고향의 피상적인 삶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을 많지 않다 .
들리는 것들을 듣고 , 열린것을 먹고 , 떨어진 것들을 주워서 어디선가 본것을 기억해 조합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것의 전부 일지도 모른다 . 슈베르트의 가곡 ‘ 음악에 (An die Musik)’ 가 생각났다 .
작곡을 많이 한 음악애호가였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살아서는 빛을 못 보고 , 사후에야 음악성을 인정받은 안타까운 작곡가이다 . 열악한 가정환경 , 제대로 풀리지 않은 작곡가의 인생이 작곡가에게는 가슴아프지만 , 그 댓가로 우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만을 위해 작곡된 작품을 들을 기회를 얻었다 .
그 시대 궁정음악가로써 받은 돈만큼의 기획된 기능음악을 작곡하고 , 사회적 지휘만큼의 작곡 능력을 화려한 기법으로 증명해 내야했던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아무 부담없던 슈베르트는 ‘ 음악에 ’ 처럼 그냥 간단하고 조촐한 선율을 쓰고 그것을 울리도록 놔둘 수 있는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
가사가 붙은 멜로디와 피아노의 왼손반주가 함께 노래하는 듯한 짧은 선율이 반복되는 곡으로 사실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는 곡은 아니고 , 솔직히 말하자면 어릴 적 정말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곡이다 .
하지만 한가지 더 확실한 건 , 나는 이런 간단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곡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 대신 덮어 씌우고 , 복잡한 듯 보이고 , 잘하는 척 하는것처럼 보이는 , 편성이 큰 곡을 쓸 능력이 내게 있다 .
더운 여름날 , 논의 청개구리 울음을 들은 슈베르트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본 작곡가의 비극적인 차이라고나 할까 . 쉽지는 않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진심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 눈만 뜨면 , 귀만 열면 , 나도 듣고 노래 할 수 있다 . 김민경 (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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