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의 무게 - 연재를 마치며 로컬푸드 식이야기는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처음 기사를 기획할 때 취지는 완주로컬푸드 매장에서 팔리는 가공식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
만드는 사람에게는 소비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제품의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 그리고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에게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특별한 애정이 생길 수 있는 인간적인 스토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 제 개인적인 사심도 있었습니다 .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많은 가공업체를 만나면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 2 년 동안 취재를 다니면서 보람있는 순간 , 아쉬웠던 점에 대해 느꼈던 점을 마지막 인사를 하며 회고해 보겠습니다 .
특별하지만 , 특별할 것 없는 생업의 현장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첫회 취재를 나갔던 완주 시니어클럽입니다 . 평소 김부각을 즐겨 먹었던 터라 궁금한 것도 많았습니다 .
먹음직스러운 김부각이 잔뜩 쌓여져 있는 작업대 위의 사진을 찍는데 , 일하시던 할머님께서 “ 한번 잡솨봐 ” 라며 한움큼을 쥐어 주셨습니다 . 김부각 매니아로서 뜨끈하고 바삭하게 튀겨져 나온 김부각을 배불리 먹을 수 있던 그 날 , 성공한 덕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
이 기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돌아가 , 많은 사람들이 고소하고 짭짤한 이 김부각 맛을 알게 되면 좋겠다며 많은 분량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 요즘도 김부각을 먹을 때면 할머니들이 작업장에서 활짝 웃으며 사이좋게 일하시던 모습이 생각나곤 합니다 .
작업장에서 인터뷰 할 때 할머님 한분이 “ 하루에 단 3~4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는 게 고마워 ” 라고 하셨는데 ,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김부각이 맛있는 이유는 이런 마음을 담아 만들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
매번 이런 생생한 스토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도 컸던 것 같습니다 . 완주에 있는 가공식품 업체를 알아보기 위해서 로컬푸드 매장에 다니며 찾았습니다 . 연재 횟수가 늘어날수록 취재처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럴 때는 지인들의 소개를 받아 현장에 나갔습니다 .
평소에 거의 먹지 않던 제품 , 처음 만난 업체인 경우에는 만나서 들은 이야기에 의존해서 기사를 써야 했습니다 . 기사에 그럴듯한 소재가 필요해 여러 질문을 했는데 단골 질문은 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자랑하고 싶은 노하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
가끔 ‘ 먹고 살려고 , 어쩌다보니 시작했다 ’ 는 답을 듣고 난감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진실된 답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한 번쯤은 겪었을 고난과 극복의 스토리를 미화해서 적고 싶은 건 저의 욕심이었던 거죠 .
특별한 사연이 있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장인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
낭만적인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을 올바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면 ‘ 먹고 살기 위해 ’ 일한다는 답을 듣는 순간 , 그 속에 숨겨진 삶의 생생한 이야기를 캐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소소공에서 판매 중인 호두강정.
소소공 이야기 저는 동료들과 함께 소소공이라는 회사를 창업해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 소소공 사람들 3 명은 모두 음식 만드는 일이 처음입니다 . 우연히 만들어 본 호두강정을 주변에 나눠드리자 ‘ 팔아도 되겠다 ’ 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그리고 고산 미소시장 주말 장터에서 조금씩 팔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작년부터 온라인 판매를 하면서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 처음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던 지인들은 점차 떠나고 , 어디에 있는지 ,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고객들 앞에 서게 됐습니다 .
돈을 내고 구입하는 고객은 그 누구보다 냉정한 심판관이었습니다 . 고객이 한번 더 찾아오게 하려고 , 매번 긴장하며 만들고 물건이 배송되고 상품평이 올라올 때까지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
쉽게 낙관하고 겁 없이 도전했던 때가 그리울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 이렇게 느려도 되는건가 싶을만큼 한없이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우리만 힘들다고 느낄 때 , 혹은 우리가 제일 잘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식스토리를 취재하기 위해 만났던 분들을 보며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둘 수 있게 됐습니다 . 가끔 호두강정을 만들며 고된 노동으로 지칠때마다 취재하며 만났던 분들의 일하는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
그리고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답게 일해야겠다고 반성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 요즘은 처음 만나는 분에게 제가 하는 일을 얘기할 때 ‘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 ’ 으로 소개합니다 . 이렇게 말하기까지 꼬박 2 년이 걸렸습니다 .
아직은 스킬이 부족하다며 겸손한 척했지만 , 음식을 만드는 일보다 더 큰 포부와 꿈을 가졌던 게 더 솔직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 이제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고귀한 일임을 깨닫는 것 , 그게 가장 큰 포부이자 꿈입니다 .
감사 인사 할미레시피를 연재했던 1 년이 완주 사람들의 정서를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면 , 식스토리를 연재했던 2 년은 완주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업을 이어가는 분들을 만나고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
더불어 제 삶에 많은 본보기를 찾아볼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많은 분들께서 바쁜 생업의 현장에 초대해 주시고 , 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신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또한 매번 부족한 글솜씨로 겨우 써내려간 글을 예쁘게 다듬어 편집하고 , 2 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해 실어주신 완두콩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완두콩 100 회 축하드리며 , 저희도 완두콩과 함께하는 동안 완주에서 결실을 맺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글·사진= 조율(조율은 2017년 말 완주로 귀촌, 고산미소시장에서 가공품을 판매하는 상점, 율소리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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