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생각나는가. 누구에게나 솟아오르는 사진 같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좋은 기억, 슬픈 기억, 이해되지 않지만 왜인지 남아 있는 기억, 엄마와 나만이 알고 있는 기억, 나도 모르는 엄마의 기억, 엄마도 모르는 엄마에 관한 나의 기억. 기억들은 분명한 이유들과 분명하지 않은 이유들이 덧붙여져 나의 일부를 구성한다.
전쟁 같은 맛 “전쟁 같은 맛이야.” 분유를 보며 엄마(군자)는 어느새 자신만이 기억하는 어떤 순간으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한국전쟁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리지 않고 먹었던 기억이 전쟁의 맛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후 조현병이 발병한 엄마는 아무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고, 저자는 그런 엄마를 보며 엄마 뒤에 가리어진 한 여성의 역사를 들춰보기로 결심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자 2세 출신의 딸이 자신의 엄마를 박사논문 주제로 삼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마치 엄마와 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불쑥불쑥 기억의 단편들이 제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낸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까지 더듬거리며 흘러가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읽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450쪽 정도의 분량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드니 말이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군자라는 한 사람을 두고 가족들과 이웃들의 이해와 태도도 다르다. ‘들쑤시는’ 여동생이 못마땅한 오빠, 시어머니의 매춘 과거를 전하는 서양인 며느리, 지병이 있는 나이 많은 미군 남편, 어쩔 수 없다는 경찰과 상담기관….
오로지 딸만이 군자라는 사람을 붙들고 한 사람의 뿌리 끝까지 파내어 내려간다. 상흔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오로지 군자만이 기억하고 있는 순간들을 함께 느끼고 나눠 갖기 위해 딸은 기어코 군자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신의 글쓰기로 엄마, 군자의 과거를 바꾸어 낸다.
어쩌면 자신의 역사나 가까운 이의 깊은 일들을 묻어두거나 모른 척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존중이고, 사랑이고, 위로의 또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은 우리가 손에 잡히지 않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비극과 상실, 슬픔은 다 아는 것처럼 금세 끌어안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의 구멍은 지나간다. 마치 없는 것처럼, 못 본 것처럼.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을 통해 거시사 속에 촘촘히 자리한 우리들의 미시사,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딸이 군자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에 다가가는 일이 자유로워질수록 우리 현대사에 자리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구멍들이 조금씩 채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가 양공주의 서사가 아닌, 군자의 생애를 연구 주제로 삼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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