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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몸과 마음의 갈등, 화해2024-03-14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몸과 마음의 갈등, 화해


몸과 마음의 갈등, 화해

- 아쟁으로 듣는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Kol Nidrei)



유명한 막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아쟁과 피아노로 재해석해 연주한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브루흐는 바흐 못지않게 기독정신이 투철했던 음악가로 기악보다 합창이나 독창 등 종교적 성악곡을 주로 작곡했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베를린대학에서 신학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식 또한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건한 신앙심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성악곡에도 불구하고 그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이 곡 [콜 니드라이]와 세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과 같은 기악곡입니다.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 관현악, 하프를 위한 아다지오, 작품 47’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히브리 찬송가 선율을 근거로 한 변주곡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곡 중간에 독주악기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부분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래서 연주자에게는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지만,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고 싶어 하는 곡입니다.

이 곡의 원천인 콜 니드레’(모든 서약들)는 원래 유대교의 무거운 속죄의 날 전야의 예배 초반에 부르는 기도 형식의 성가랍니다. 이 기도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행하지 못한 신에 대한 맹세를 모두 없었던 것으로 사해주고 모든 율법의 위배도 용서해주기를 기원합니다. 말하자면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 즉 거듭남을 다짐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것은 아쟁을 독주악기로 끌어올리려 애를 쓰고 있는 중견 연주자 김상훈이 대아쟁으로 재해석한 연주입니다. 피아노는 문신원이 맡았는데 20056월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있었던 실황연주입니다. 곡의 앞부분(단조)만 아쟁에 어울리게 편곡 연주했습니다.

저는 이 연주를 우리들 몸과 마음의 갈등과 화해로 해석해봅니다. 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들이 성공신화에 휘둘려 몸을 함부로 학대합니다. 그러다가 몸살이라도 나면 급하게 술도 줄이고 담배도 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작심삼일! 돈과 출세에 눈이 멀어 다시 몸을 내팽개치기 십상입니다.

처음 화가 난 몸을 달래려는 듯 마음(피아노)이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몸을 부릅니다. 그간 숱한 서약을 팽개친 것에 분이 풀리지 않은 몸(아쟁)이 마지못해 조응을 합니다. 이렇게 서로 어르고 응대하는 가운데 대아쟁의 위세는 점점 더 당당해지고 피아노는 다소곳이 그 뒤를 받쳐줍니다. 오랫동안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는 듯 아쟁의 울부짖음이 차분하면서도 제법 절절합니다. 수틀린다고 갈라설 수는 없는 일, 격한 감정을 다스리려 애쓰는 대아쟁의 울림이 꼭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원래 관현악 반주가 주는 풍성함 혹은 심오함, 작곡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고양된 낭만성그 종교적 분위기까지 이 연주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또 곡 중반 이후,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곤 하는 첼로와 하프, 그리고 대규모 관현악이 조성해주는 신묘한 화성도 물론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와 맞서 당당히 자기 소리를 내는 우리 대아쟁의 품세가 첼로나 콘트라베이스 못지않게 의연하기만 합니다. 서양 고전음악이 이렇게 멋들어지게 우리 악기로 소화 연주되는 모습도 대견스럽고요.

곡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시려면 반드시 야노스 스타커나 장한나 등 첼로의 거장들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들을 챙겨 들으셔야 합니다, 게리 카의 콘트라베이스와 파이프오르간의 협연도 권할 만하며, 정갈한 피아노 반주로 인하여 더욱 살아나는 첼로의 절묘한 음색을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자클린 뒤 프레(첼로)와 제럴드 무어(피아노)의 협연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꼭 비교하며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몸과 마음, 무엇이 먼저고 더 중요한지 따지는 것 부질없는 일입니다. 허한 욕심 때문에 몸이 상하고 상한 몸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홀로 산과 들을 찾아 산책을 나서는 것이 꼭 마음 추스르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허벅지 근육 단련시키기 위한 것만도 아닐 것이고요.

이 찰진 연주 들으시며 몸과 마음 함께 챙기고 푸른 희망의 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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