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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고독한 영혼의 울림2024-02-20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고독한 영혼의 울림

고독한 영혼의 울림

호페의 [기다림]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정호승님의 [또 기다리는 편지] 일부입니다. 기다림에는 눈이나 비가 동반되어야 하는가 봅니다. 허기는 맨 하늘 뙤약볕에서의 기다림은 따분할 것 같기도 합니다. 무료하고 지루해서 가슴속에 허허로운 먼지만 풀풀 날릴 것이고요.

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이거나 비라도 내려야 기다리는 데에는 어울릴 듯합니다. 눈이나 빗줄기를 통해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절절해질 것입니다.

이런 기다림의 절절한 마음, 그 미묘한 상태를 감성적으로 그려주고 있는 곡이 있습니다. 호페(Michael Hoppe)<기다림>("The Waiting")이라는 곡입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려 괜히 울적해질 때,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차분하게 안으로 가라앉을 때, 듣기에 안성맞춤인 곡이 아닌가 합니다.

깊은 영혼을 뒤흔드는 첼로 소리와 불현듯 들려오는 빗소리와 천둥소리, 그리고 이를 감싸주는 키보드의 독특한 음이 빚어내는 감성적 화음이 일품입니다. 뉴에이지 음악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곡 또한 편안한 서정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다가 슬픔은 어느덧 사라지고 감미로운 서정만 그윽이 남아 기다림에 지친 우리들의 고독한 영혼을 어루만져 줍니다. 누구의 표현대로, "뼈에 사무치는 낭만적" 정서를 맘껏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곡입니다.


기다림은 홀로 하는 일입니다. 기다리는 대상과의 순일한 만남, 그 혼연의 하나됨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이를 방해하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신중하면서도 진지한 자기 성찰과 정화의 고독한 여정입니다.

기다림은 과정입니다. 희망과 믿음만이 그 지속성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삶의 원동력인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결과가 효용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과정은 미적 판단의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취의 결과와 무관하게 아름답고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 삶 자체가 그러한 것처럼 말입니다.

기다림이 없다는 것은 꿈과 희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오아시스 없는 인생 나그네, 그 힘겨운 사막을 아무런 기약도 없이 홀로 터덕터덕 걸어가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 팍팍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다릴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기다릴 거리를 스스로 마련해 둔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관계없는 것을 막연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막연한 기다림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허허로울 수 있습니다. 부조리한 일이 되기 십상입니다. 로또와 같은 횡재를 기다리는 것은 덧없는 일입니다.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그 헛헛함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횡재(橫財)가 횡재(橫災)가 되어 그 이후의 삶을 더욱 먼지 나게 할 것입니다.

스스로 마련하기가 어렵다면 자연스럽게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의 비책(祕策)일 수 있습니다. 봄 되면 꽃피길 기다리고 여름 되면 비 오길 기다리고. 매실나무 심어놓고 꽃피고 열매 여물기를 기다리고 매실주 담가놓고 익어가길 기다리고. 그 술 함께 나눌 벗을 또 기다리고.

나름으로 기다릴 거리를 마련해둔 사람은 여유로울 수 있습니다. 초초해하며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조급하게 굴다가 스스로의 성정을 강퍅하게 해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바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인간만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야말로 바로 기다림인 것이다.” 공자님 말씀을 주문처럼 되새기며 이런 음악에 자주 귀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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