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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22] 쌀2023-10-18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22] 쌀


세계의 유명한 술은 나라마다 환경적 특성에 맞는 주재료에 따라 결정되었다. 당도 높은 포도가 생산되는 나라의 와인, 보리 재배가 용이한 나라의 맥주, 선인장이 자라는 사막 지역의 데킬라와 같은 술은 알코올 발효 원리를 습득한 인류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발견한 신의 선물이라 하겠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권에서는 쌀로 빚는 술을 발전시켜왔다.

 

우리술의 주재료는 쌀, , 누룩이다. 지역에 따라 옥수수, 조 등으로 빚는 술이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전통주는 쌀로 빚어진다. 주식(主食)인 쌀로 술을 빚다 보니 오랜 역사 속에서 술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시기와 자주 직면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다루왕 11(서기 38)곡식이 여물지 않아 백성들이 사사로이 술을 빚는 것을 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우왕 9(1383) 3월에도 날이 가물자 금주령을 내렸다는 기록을 볼 수 있으며, 조선에서도 흉년에 곡식의 소모를 막을 방편으로 금주법 시행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한국전쟁을 겪고 식량난을 해결해야 했던 1965년에는 양곡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쌀로 술 빚기가 전면 금지된다. 1970년대 벼 품종 개량을 통해 식량난이 점차 해소되어 1990년에서야 쌀로 술 빚기가 허용되면서 우리술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쌀 막걸리 열풍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밀가루 막걸리를 이제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쌀은 멥쌀과 찹쌀로 나뉜다. 외관상 멥쌀은 투명하고, 찹쌀은 불투명한 흰색이 도드라져 육안으로도 구분된다. 쌀의 전분 구조에서 멥쌀에는 아밀로스가 15~30%, 아밀로펙틴이 70~85%로 구성되어 있다면, 찹쌀은 아밀로펙틴이 거의 100%를 차지한다. 아밀로펙틴 전분 구조인 찹쌀은 멥쌀보다 단맛이 강하고 찰기가 오래 유지된다. 멥쌀로 빚은 술이 깔끔하고 드라이한 맛과 은은한 향이 특징이라면, 찹쌀로 빚은 술은 부드럽고 달콤하며 매우 화려한 향을 지니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사케는 멥쌀로 빚는 술이고, 우리술의 압도적인 대다수는 찹쌀로 빚는 술이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개경에 머물며 고려의 생활상을 기록한 <고려도경>(1123)고려는 찹쌀이 없어 멥쌀로 술을 빚는다는 기록으로 보건대 찹쌀로 빚는 술이 보편화 되었던 시기는 조선시대 라고 한다. 제례와 손님 접대를 중요한 가치로 여겨 집집마다 술을 빚어야 했던 조선시대는 찹쌀의 등장과 맞물려 가양주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시기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자가양조 금지로 인한 밀주의 시대, 쌀로 술을 빚지 못하던 오랜 굴곡의 역사를 지나 우리술이 다시 도약한 계기는 바로 쌀에서 찾을 수 있다. 쌀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술도 빚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회포대교에서 산업도로를 올라타면 삼례, 익산, 김제, 군산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호남평야가 드러난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노랗게 채색된 아름다운 호남평야를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 터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이제 곧 수확이 끝나면 저 쌀들은 우리의 밥이 되고, 떡이 되고, 술이 될 것이다. 긴 역사 속에서 생명이 되고, 문화가 되고, 고결한 정신이 되어주었던 황금빛 물결 앞에서 자꾸만 겸허해지는 가을이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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