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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4] 소주(燒酒), 차갑고도 뜨거운2023-02-16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4] 소주(燒酒), 차갑고도 뜨거운

소주(燒酒), 차갑고도 뜨거운


술을 잘 빚는 고수의 술장고에는 마실 술이 가득하지만, 술을 잘 빚지 못하는 나의 술장고에는 소주내릴 술만 가득하다. 이 술들을 어찌할꼬. 쓴맛이 강한 술, 시어진 술, 단맛만 나는 술, 알코올도수가 낮아 싱거운 술, 빚은 지 오래되어 느끼한 술 등등 실패의 결과는 다양하기도 하다. 온 정성을 쏟았건만, 술맛과 정성은 정비례하지 않으니 좋은 술은 발효의 과학을 터득한 사람만이 받는 선물임을 깨닫곤 한다. 술빚기는 예민한 과정이어서 잦은 실패가 따르지만, 천만다행으로 실패를 만회할 최후의 방법이 존재한다. 주질(酒質)이 떨어지는 술들을 모아 소주라는 새로운 장르의 술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발효주와 증류주, 즉 청주와 소주는 다른 장르의 술이다. 로맨스 영화와 SF공상과학 영화처럼 다른 범주의 술이다. 과실이나 곡물을 미생물의 활동으로 발효시켜 얻은 알코올도수 20% 이하의 발효주를 증류해 대략 40~50%대를 유지하는 알코올과 증류수, 원주(소주를 내리기 위해 끓이는 발효주)에서 응축된 맛 성분과 향으로 이뤄진 소주를 얻는다. 세계의 모든 증류주는 나라마다 다른 원료와 증류장치로 만든다 해도 발효주를 끓여서 기화되는 알코올을 냉각시켜 얻는 방법적 원리는 같다.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 맥주를 증류한 위스키처럼 쌀이나 곡물로 빚은 청주, 탁주, 막걸리를 증류한 우리나라식 전통 증류주는 소주(燒酒).

 

전통방식의 증류식 소주를 내리기 위해서는 소줏고리라는 증류장치가 필요하다. 옹기로 된 8자 모양의 소줏고리는 하체(솥과 연결된 가열부)와 상체(냉각수 자배기와 연결된 냉각부), 액화된 소주가 모여 내려오는 기다란 귓부로 구성되어 있다. 솥에 청주를 붓고 낮은 열로 뭉근하게 끓이다가 소줏고리를 올려 기화된 알코올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솥과 소줏고리의 틈새를 시룻번(가래떡처럼 늘인 밀가루 반죽)으로 붙여 메운다. 술이 뜨끈하게 데워지면 알코올이 물보다 먼저 증발하여 소줏고리 윗단으로 모여지는데 이때 뚜껑처럼 소줏고리를 덮고 있는 오목한 자배기에 차가운 물을 계속 갈아준다. 기화된 알코올이 차가운 냉각수 자배기에 부딪혀 이슬처럼 액화되어 귓부를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주를 받는다. 1490년 성종 때 세종 때는 사대부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 비용이 막대하게 드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며 고한 조효동의 상소문에서 보듯 15세기 말 조선에서도 소주가 얼마나 사치스럽고 경계하고자 했던 술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처럼 맑으나 응집된 향을 품고, 눈처럼 차가우나 데일 듯 뜨거운 불을 품은 소주는 단연코 겨울의 술이다. 무색투명함 그 어디에 꽃다발처럼 응축된 향을 품고 한 모금 머금으면 부드러운 단맛 속에 뜨거운 불꽃이 폭죽처럼 터지며 목을 타고 내려간다. 이내 가슴에서 뜨거운 불이 솟아오르면 제아무리 영하의 찬바람도 맞서볼 용기가 난다. 봄을 목전에 두고 겨울이 더 매서워지는 즈음, 일신은 자꾸만 노쇠해지고 이제껏 살아온 길에 후회나 주저함이 덩달아 몰려들 때 한 잔의 소주를 마셔보자. 불끈 솟구치는 뜨거움 속에 일체의 망설임을 녹여버리자. 실패한 술들을 불길에 살라내어 재탄생한 소주처럼 실패를 만회할 방법은 누구에게나 있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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