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농촌별곡]2018-12-04

  • 첨부파일
  •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농촌별곡]



몹시 슬프다. 아니 서러움인 듯도 하다. 말기암 판정을 받고 4년 동안 혼신을 다해 투병해오던 후배. 끝내 허망하게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창 때, 아까운 나이여서만은 아니다. 참 굴곡진 삶이었고, 어린 딸 하나만 달랑 남겨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오죽 무거웠을까. 의료진마저 그만 내려놓으라할 만큼 예후가 좋지 않았지만 차마 놓지 못하고 초인적 의지로 버텨오던 친구. 그러니 어찌 서럽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숨붙이들의 숙명이라지만 잊을 만 하면 날아드는 또래 연배의 부고는 새삼 인생살이의 덧없음을 일깨워준다. 하여 탐내고 더 누리기 위해 심기일전하기보다는 더 내려놓고 비워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거다.


사실 후배의 비보가 아니었다면 이 글은 눈앞에 펼쳐진 농한기 얘기로 채워질 참이었다. 하지만 첫머리를 이렇듯 비감한 내용으로 장식하고 보니 꺼내기 민망한 얘깃거리가 되고 말았다. 슬픔이란 참 전이되기 쉬운 감정인 모양이다. 후배를 덧없이 떠나보낸 슬픔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슬픔을 불러내니 말이다.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들 가운데 서글픈 듯도 하고 씁쓸한 듯도 한 해프닝 하나.


여러 차례 밝혔듯이 내가 지은 쌀은 생산비에 바탕을 둔 고정가격에 직거래로 공급한다. 때문에 생산비가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쌀값도 그대로다. 올해도 기계작업비와 농자재비가 거의 오르지 않아 4년째 같은 값에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쌀 시장가격이 크게 오른 걸 계산에 넣지 못했다. 아뿔싸! 쌀값 오른 줄만 알았지 그게 생산비 인상요인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


농지 임대료(도지)는 지금도 현물지대다. 다시 말해 “1마지기 당 쌀 1가마이런 식으로 임대료가 책정되고 한번 정해지면 거의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지급방법. 도지는 쌀로 책정하지만 지주가 현물()을 요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해 수확기에 형성되는 산지쌀값을 기준으로 현금지급 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쌀 시장가격이 오르면 임대료도 그만큼 오르는 것이다.


올해 수확기 산지쌀값은 지난해보다 20% 남짓 올랐다. 전체 경비에서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높은 편이라 생산비가 꽤 올랐음은 당연하다. 셈에 밝지 못한 내가 그걸 깜빡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그저 눈물 머금고 안내문이나마 뒷북때리는 수밖에.


그래도 올해산 쌀값은 내년 가을까지 죽 그대로 받겠습니다. 다만 내년(2019)산 쌀은 임대료를 비롯한 생산비 증가분을 쌀값에 반영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이 점 미리 헤아려주시기를...”


농사도 엄연히 밥벌이이니 정신 바짝 차릴 일이다. 드디어 돌아온 농한기에 들떠 올해는 몇 해 동안 쌓인 곰팡내 나는 타성, 모질게 들이치던 미망, 부질없는 집착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물처럼, 구름처럼 떠돌겠노라호기롭게 다짐했더랬다.


이제 와 생각하니 철딱서니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이 추운 계절에 떠돌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 아니던가. 지금은 만행이 아니라 동안거에 들어갈 때가 아닌지. 아니 동안거도 언감생심 아닐는지. 밥벌이를 벌충하는 땀나는 겨울을 맞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이근석의 완주 공동체 이야기] 깽깽매미
다음글
[바닥의 걸어서] 일 잘 하고 싶은 사람, 일 하기 싫은 사람,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의 지도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