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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44] 왜 알려지지 않았나?2018-02-05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44] 왜 알려지지 않았나?

왜 알려지지 않았나?



고산면 율곡리 김도련(19332012)은 독학한 한문학의 대가로 국민대학교 교수였다.


“10년간 지병으로 의사소통은 못하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아들 영찬의 말이다.


세상 고문을 단지 낡고 썩은 걸로 보아 궤철을 달리할 때에도 선생은 고문의 참정신이 옛날에 있지 않고, 지금에 있음을 알아 뚜벅뚜벅 그 길을 갔으니, 여말 이제현 선창 이래 농암과 연암을 거쳐 영재 창강으로 이어진 고문 연면한 맥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제자 정민 교수가 지은 묘갈명(墓碣銘)의 한 구절이다. 힘들어도 굴하지 않았고 어려운 환경을 이기기에 자부심을 가진 학자이었다. ‘이런 사람을 왜 완주인은 모르는가?’


고향에 자주 오지 않았다. 온다 해도 슬쩍 다녀만 간다. 모를 수밖에 없다. 이게 완주인의 병폐요, 타성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완주중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했지만 한문 실력이 있어 1968년 국사편찬위원회 고서원에 합격했고, 서울대, 연세대, 국민대 강의를 다니다 1979년 국민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실력을 발휘해 한시를 주제별로 엮은 꽃피자 어데선가 바람 불어와를 냈다. 저서 한국고문의 원류와 성격』 『한국고문의 이론과 전개가 있다. 연합뉴스 황윤정 기자는 고전 문장에 대한 연구가라 썼는데, 2012726일 충남 예산 화산추모공원에 묻혔다.


고산 사람들은 국졸(國卒) 한문학(漢文學)의 대가(大家)’ 이 한 마디라도 기억해 주어야 한다. 지난 이야기지만 고산향교에서 이런 학자 모시고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모른다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국악인 남상일을 봉동에서, 김수태 부부 변호사를 화산에서, 구이에서 이상남 전 완주경찰서장 아는 사람이 드물다. 더러는 자기를 감추고 남이 알까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어느 차관보는 고향 사람 편지에 답장이 없었고, 경주 어느 호텔 사장은 사귐을 끊겼다. 이러하지만 김춘진, 정성모, 유희태, 두세훈은 웃고 다닌다. 알아달라면 알아줘야한다.


김태식 전 국회의원은 어디 사나. 자서전 정치 아리랑군민들 읽어볼 책이다. 독감 걱정하는 철에 전 완주보건소장 태안당(泰安堂) 유효숙 생각이 난다. 구영철 전 완주문화원장이 201212월 종세하여 12일이 5주기였다. 화산, 고산, 비봉면에서 책(면지)을 낸다는데 좋은 얘기를 많이 찾아 써야한다.


봉동읍의 경우라면 윤건중 전 농림부장관의 특집란 생각을 해 두어야 한다. 나보고 급료 받으라하면 당장 그만두리다.대기업 근로자들은 깊이 생각하고 임금투쟁 해야 한다. 경쟁 관계에 있었던 봉동 이〇〇 공적비는 있으나 윤건중은 잊어만 간다. 같은 성격의 <봉동농업협동조합>에서 윤건중 선생을 챙긴다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그 아름다운 사업처럼 장한 업적이 될 것이다. ‘완주정신 정립이 시급하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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