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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13] 풀, 나무 그리고 물 - 산골의 세가지 요소에 대한 보고서2017-10-11

[남현이의 청년일기-13] 풀, 나무 그리고 물 - 산골의 세가지 요소에 대한 보고서

, 나무 그리고 물

- 산골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한 보고서

 


경작과 주거가 쉬운 평야는 이미 부자와 기계의 손에 대부분 넘어가고 있다. 남은 땅은 골짜기뿐이니 산골에서 살 방도를 찾지 않으면 남은 것은 빈털터리 유랑민이 되는 것뿐이다. 너멍굴이라는 골짜기에서 산 지 어언 1, 그곳의 식생과 기후가 골짜기 경륜에 도움이 되는 바, 1년간의 관찰을 토대로 짧은 보고서를 작성한다.


골짜기 경륜에 제 1 요소는 물이다. 산골은 물이 귀하다. 물은 식수와 농수로 이용하기에 아주 중요한데 평지처럼 물이 많지 않으니 이 얼마 안 되는 물을 잘 다스리는 치수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


너멍굴의 경우 물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얻어진다. 첫째는 산골에서 내려오는 실개천이다. 이 물이 농수로 활용되는데, 올해 극심한 봄 가뭄으로 논에 물을 대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한 바, 작은 연못과 몇 개의 보를 만들어 물을 저장해야 한다. 보는 연못을 판 흙을 망에 담아 주위의 돌과 낙엽과 함께 쌓으면 무너지거나 쓸려 내려가지 않는다. 둘째는 안개, 빗물과 같은 하늘의 물이다. 고산과 같이 산이 높고 제법 큰 강을 가진 골짜기는 강의 습기와 산의 찬 공기가 만나 안개가 쉬이 형성된다. 특히 너멍굴과 같이 강 방향으로 골짜기가 향해 있다면, 밤에는 안개와 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습기를 잘 다스려야 쾌적한 생활이 보장된다. 또한 가뭄이 빈번하고 비는 폭풍처럼 쏟아지는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안개는 잘 활용해 볼 가치가 있는 현상이다.


산골생활의 제 2요소는 나무이다. 이 나무란 것들은 우리가 시멘트와 철근을 주된 건설자재로 사용하며 그저 농작물에 그늘을 드리우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하지만 골짜기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산에 있는 나무의 가지를 잘 관리하면 장작이나 농기구의 중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나무를 산 뿐 아니라 농지에도 적절히 심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는 나무가 갑자기 햇빛이나 산골의 찬바람을 중화시켜 미기후를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밤이면 안개의 수분을 잡아 땅으로 내려줄 수 있으니 가뭄에 해법으로 고려해 봄직하다. 아울러 농지 주변에 심는 나무를 과실수로 한다면, 해가 지나 과실이 익으면 새로운 농산물이 생산되니 일거양득이라 하겠다.


골짜기에서 농사와 주거를 행하며 마주하는 마지막 난관은 풀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아주 작은 녹지와 몇 그루의 가로수를 보는 것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골짜기의 풀들은 씨앗이 어디서 날아오는 지도 알 수 없다. 혹자는 풀과 더불어 살자고 제안하는데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자연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위험하다. 풀이 주는 위험은 농작물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집 근처에 풀이 있으면 풀 속에 사는 벌레와 개구리, 뱀들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풀에 대한 해법은 적절히 구역을 나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다. 동네 할머니들의 행동을 관찰한 바, 그들은 구역을 나눠 매년 풀과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자신의 거주지 근처에는 풀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단 한포기의 풀도 정해진 구역이 아니면 용납하지 않는 이 구역은 거주지와 거주지로 침입 가능한 반경이다. 두 번째 구역은 농지인데 그곳에서는 풀과 어느 정도 협상을 하고 있다. 풀이 작물보다는 크지 않게 관리하지만 모두 죽이지는 않았다.


골짜기에 1년을 살았지만 골짜기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너멍굴 지리조사가 얼추 완료되고 이제 이를 토대로 산골의 변화를 시도하니, 골짜기가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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