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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34] 비봉면 내월리(內月里)2017-04-03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34] 비봉면 내월리(內月里)

내월리에 유독 재미나는 얘기가 많아 말할 순서 잡기도 어렵다. 첫째, 이름이다. 행정 구역명은 내월리(內月里)이나 원래 우리말 이름은 달실이다. 이 달실을 한자로 쓰면서 월곡(月谷)’이라 했는데, 다 아다시피 달이 ()’이고, ‘은 순수한 우리말 골짜기이므로 바로 ()’을 붙였다. 고산지역엔 밤실, 쇠노실, 진밭실, 숲실, 구라실, 담보실, 골모실이 있는데 여기 은 모두 ()’을 의미한다. 요새 달이실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하여간 같은 마을이다.


이 골짝의 두 번째 특색 종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천주교(천호성지), 기독교(예배당), 불교(요덕암 외), 유교(봉양서원)가 공존한다.

세 번째 묘 얘기도 흥미롭다. 황거중 증영의정 묘와 그 사위 대마도정벌 당시의 중군도총제 유습(柳濕) 묘가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삼치재(황씨), 영모재(유씨)와 창녕조씨 재실까지를 포함하면 종중(宗中) 문화연구에 흥미로운 유산들이다. 근대시인 근정(槿丁) 조두현이 여기 출신이다.


주민과 직손들이 뜻을 모으면 시비를 세울만한 학자요 문인이다.


네 번째, 비석공원은 애국심이 서려있는 곳이다. 열녀각 2기 외에 제헌국회의원 유준상 추모비가 있고, 특히 양정공 유습 사적 빗돌은 완주에서 가장 큰 돌로 알려졌다. 2기의 석장승은 키가 크고 글자가 뚜렷하여 향토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한 눈에 확 들어온다. 일문구의사사적비 앞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그 근처엔 수십만 평 고흥유씨 종산을 알리는 세천비가 서 있다. 문화 유적과 유산이 아무리 많아도 관리를 못하면 고물(古物)에 지니지 않고 해 놓은 공로가 허사(虛事)일 수밖에 없는데 내월리는 좀 다르다. 양재(陽齋) 유해종(柳海鍾:고흥유씨중앙종친회) 고문이 있어 초청, 안내, 설명, 홍보를 잘 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질항(姪行) 운계(雲溪) 유순상(柳淳相) 서실(경로당)을 안내 한다기에 따라가 보니 화산지에 써 쌓은 글씨더미가 천장에 닿았다. 이 고장 인심은 석안유심(釋眼儒心:자비롭고 인애로움)’임은 단번에 알 수 있다.


지상에 처음 소개되는 정보는 고인돌[支石:지석] 이야기이다. 230cm×180cm×90cm 가로 세로 높이 네모가 반듯하다. 여름밤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기에 윤도(輪圖)를 놓아 보니 정북방향이 완연하다. 희한할수록 전설이 넘쳐난다. 전에는 이 바위에 앉아 낚시질을 했다는데 마침 그 앞에 개울이 있어 그럴듯하다. 일행은 돌이름을 중리고인돌이라 했다. 돌도끼 하나를 주어 왔다. 고인돌에서 마주 보이는 재가 서리울재이다. 한자로 상곡(霜谷)’이라 한다는데 이는 후세인이 끌어다 붙인 한자이며 원래는 슬픔과 서러움을 그대로 표현한 데서 유래한 걸로 보인다. 첩첩산중 저 너머로 시집을 보내면 가며 울고 서럽게 넘는 고개라는 절절한 애정에서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능바위, 진바실, 쇠노실, 가루개, 담보실, 수선리는 재 너머 아득한 산골 마을들이다. 전에 면장 교장을 한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주민들은 출향인을 기다리며 연중 비닐하우스에서 푸성귀를 길러낸다. 풀 먹고 사는 사람이 대접받아야 경제민주주의이다. 유희태 금융인은 민들레동산 사장으로 정치 꿈도 크며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귀한 인물이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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