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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 일인교통(一人交通) 2017-02-14

[완주행보] 일인교통(一人交通)


다른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

12-일인교통(一人交通) 



완주로 이사 오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완주행보를 읽었다는 동네 친구를 두 명(실로 엄청난 숫자)이나 만났다. 아이고, 완주 얘기 별로 없는데 미안해라. 완주행보는 독립생활자로 자취 생활 처음 하는, 도시가 아닌 곳에서, 여성가구라 더 특별한, 하지만 어디서나 그럼직한 나의 사는 이야기일뿐 완주라서 특별한 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제목을 그리 달아놨으니 책임감을 느끼고 이번엔 완주살이에 도움되는 얘기를 적어야겠다.

 

얼마 전 중고 자동차를 샀다. 직장생활로 모아놓은 돈은 이로써 탕진. 완주에서 살기 시작할 때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차 없이는 살기 불편할 거라는 많이 들었지만 차를 사고 유지할 돈도, 차를 타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불편하게 살아보지 뭐. 자연과 벗 삼으며 살고자 도시를 떠나오는데 굳이 석유 태워가며 차를 갖고 싶지 않았다. 집과 회사만 오가며 느릿느릿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으니까.

 

주변을 보면 성인 두 명 이상이 사는 집은 빠짐없이 자동차가 있다. 되려 한 대 만으로 부족해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조합으로 1인 교통 시스템을 개별적으로 갖췄다. 1인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 출퇴근하는 데는 별 불편이 없었고 이토록 고요하고 평화로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밖에 나가지도 않던 적응기 6개월 동안은 정말 아무 불편이 없었다. 차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도시 친구들이 물어도 전혀, 라고 대답할 정도로. 그러다 슬슬 답답해졌다.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르니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는 하루에 열 번쯤 오는 버스가 두 대 선다. 10분 정도 걸어나가 큰 길을 건너면 읍내 번화가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여기보다 사정은 낫지만 아무 때고 그냥 나가면 버스든 지하철이든 타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불편하다. 게다가 해만 지면 아무리 읍내여도 깜깜해지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혼자 걸어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서부터는 자전거도 탈 수 없고 해도 빨리 지니까 어디를 다닐 수가 없었다. 걸어가서 만날 만한 거리에 사는 친구도 없고, 적막하고 긴 밤을 혼자 지내다보니 나도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드디어 하게되었다.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긴긴밤 잠만 잘 수도 없고, 아무리 자연이 좋아도 나는 몇 십 년 넘게 도시에서 향락과 유흥생활에 찌든 몸. 좋은 음식 아무리 먹어도 라면이 그리운 것처럼 가끔은 매연도 마시고 도시 음식도 먹고 도시 불빛도 봐야한다. 그래서 차를 샀다.

 

동네는 도로에 차도 별로 없고 다들 자유롭게운전을 해서 부담이 덜한데 전주라도 나갈라치면 바짝 긴장을 한다. 요즘은 전주 신시가지 체육관에 운동하러 다니는데 용진이나 봉동읍내 버스정류장까지 내 차를 타고 가서 주차해놓고 버스타고 나가곤 했다. 그럴려면 차를 왜 샀냐고?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오는 그 캄캄한 길이 무서우니까. 그래도 요즘은 용기를 내어 전구간 차를 몰고 다닌다.

 

나는 지금 도시에서 살 때보다 행복하지만 도시적인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자 지역으로 온 게 아니다. 도시와 다른 면들이 다 좋지도 않다. 다만 내가 살고 싶은 모습, 맺고 싶은 관계, 보고 싶은 풍경들을 찾고 만들면서 차곡차곡 삶을 꾸릴 뿐이다. 완주에서 그렇게 뚜벅뚜벅 걷는다. 그래서 완주행보. (이제 부릉부릉 달리기도 하는구나)

 

이번 이야기도 완주이야기는 아니네. 이런 불편은 대중교통 편리한 도시에서 지역으로 옮겨온 사람들이 어디서나 겪게 될 어려움이니까. 그래도 도움되셨죠? 자가용이 없으면 불편하긴해도 못 살 정도는 아니에요. 저도 1년 넘게 살았잖아요. 지금도 차 없이 잘 사는 친구들도 있고요. 버스 시간을 맞춰 움직이고 어지간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면 되니까요. 시간과 품이 훨씬 많이 들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일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결국 자동차를 사게 될 것입니다)


/바닥 (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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