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의 완주이야기 31] 바위 이야기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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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야기를 하다보면 봉우리(峰), 재(嶺․峙), 골(谷․洞), 바위(岩) 얘기가 재미나게 이어진다.
비봉면 봉산리에 ‘소금바위[鹽岩:염암]’가 있다. 바다와 멀고 소금산(鹽山:염산)이 없는데 웬 ‘소금바위’냐. 그 유래가 궁금하나 이렇다 할 정설을 찾지 못했다.『고산읍지(高山邑誌)』2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있는데 이 책을 보면 군명(郡名) '봉산(鳳山)'이 나온다. 여기 ‘봉산’ 지명과 같아 이곳이 ‘봉산군(鳳山郡)’ 옛터라면 소금과 관련된 이름이 나올 수야 있다. ‘염암(鹽岩)?’ 여기는 후미진 곳으로 ‘바위 보고 속았다’ 해서 ‘속은 바위’가 변해 '소금바위'일 수도 있다. 또 하는 ‘땅속에 바위’ 속이 바위 ‘속은 바위’→‘소금바위’ 가능한 추리이다.
생강 초배지에 ‘봉산’이 나오는데 봉실산 동록(東麓) 여기 ‘봉산’을 주목 해야 한다. 붉은바위[紫岩:자암]는 비봉면 백도리 입구 마을이다. 마을 18호 중 두 집만 빼어 모두 타성인데 4계절 경로당[정자]에서 틈만 나면 먹고 쉬며 가족처럼 지내기에 군수도 들리는 동네란다. 길가 바위 빛이 붉어 ‘자암’인데 잠시 들려 쉬어 갈만한 마을이다.
능바위[能岩:능암․陵岩:능암]는 온섬[百島:백도]에서 더 안쪽에 있는 마음이다. 논․밭은 좁고 성산(城山)이 앞을 가로 막았다. 곰이 살 수 있는 큰 산이다. 그리하여 ‘바위덩어리만 한 곰’을 한자로 쓰면 ‘웅암(熊岩)’이 되고, 여기 ‘곰 웅(熊)’에서 아래 ‘灬’이 떨어져 나가면 ‘능(能)’만 남아 ‘능암(能岩)’일 수 있다.
용바위(龍岩:용암)는 고산면 소향리 신상마을을 이렇게 불렀는데 내 바닥이 온통 바위이다. 들어나는 바위 형상이 이리 구불 저리 구불 마치 검은 ‘용’으로 보인다. 이해서 ‘용바위’이다.
배바위(舟岩:주암)는 운주면 산북리[당마당] 건너 저고리로 들어가는 어귀에 있다. 작은 바위 동산이다. 많은 짐을 실은 배로 보인다. 근래 정자와 경로당을 가까이 세워 바위가 가려져 운치가 전만 못하다.
소바위는 동산면 산천리에 있다. 바위도 중요하지만 그 곁에 1000년 묵은 소나무가 있었는데 사람들의 욕심과 무지로 사라졌다. 나무뿌리를 무시하고 길을 내어 차가 다니자 소나무가 시들시들해지니 어떤 자가 불을 질렀고 그 후 감쪽같이 베어 갔다. 지금은 다른 나무가 서있고 음식점이 곁에 있어 이름만 ‘소바위’이다. 소나무가 있어 ‘소바위’ 였다. △탄금바위는 고산면 서봉리와 원산 사이 낮은 고개 길옆 바위를 말한다. 세월 따라 이리 깎이고 거리 깎여 발로 차면 넘어질 만큼 작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는 물가요 길 위는 절벽이었고, 저 위 남봉 물줄기가 들이받아 소(沼)를 이루어 운치가 좋았다. 원래 조을정(趙乙鼎) 병사가 한가한 때 ‘거문고를 타던 바위’라 ‘탄금(彈琴)바위’라는 해석이 있다. 지금 이름만이라도 남아 있음은 윤재봉 전 고산면장 덕이다.
화산 검단에는 병풍바위 즉 ‘병암(屛巖)’이 있고 글자를 새겨 놀았다. 안수산 바위 봉우리를 계봉(鷄峰)이라 하는데 금년은 ‘닭의 해(丁酉年)’ 문제 해결의 고운 닭소리를 기다린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구이면 ‘거북바위’ 가 자랑거리이다. 아름다운 전설을 지니고 있다. 한가한 때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괭이로 아래 부분 흙을 긁어내어 떠 있으면 분명히 고인돌이다. 확인을 서둘러라. 어려우면 완주문화원에 연락하여라.(063-263-0222)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